[스프]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관리자의 업무지시 권한을 막고 있다고?

심영구 기자 2023. 12. 1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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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한 오피스] (글 : 이진아 노무사)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 업무 스트레스도 만만찮은데 '갑질'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갑갑할까요?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와 함께 여러분에게 진짜 도움이 될 만한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해드립니다.
 

"일머리가 없으면 배우려고라도 해야지. 실력도 안 되면서 자세도 안 되어 있어, 넌"

팀장이 팀원 A를 불러서 세워놓고 한 얘기였다. A는 실제로 팀 내 어린 축에 속하는 직원이었고, 팀 업무에서 늘 가장 업무량과 성과가 낮은 사람이었다. 팀별로 업무량이 떨어지는데 A가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다른 팀원들의 업무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이었다. A는 다른 팀원들과 다르게 야근을 절대 하지 않기도 했다. 팀장은 그런 A의 모습이 내내 탐탁지 않았다.

팀장은 A에게 하루에 하는 업무를 시간순으로 전부 기록해 오라고 했다. 딱히 업무를 하지 않는다거나 문제가 되는 모습이 확인되지가 않았다. 팀장은 더욱 촘촘하게 기록을 요구했다. '전화를 했으면 어디랑 몇 분 동안 통화했는지, 업무를 했으면 어떤 내용을 했는지 더 구체적으로 써와.'

덧붙여 팀장은 A를 불러 하루에 마치기 어려운 업무량을 주면서 오늘 내로 무조건 마치고 보고까지 하고 가라는 지시들을 하기 시작했다. A가 처음으로 야근을 하는 날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팀장이 A의 야근을 기다리지 못하고 A에게 내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본인이 확인할 수 있도록 책상 위에 보고서 놓고 퇴근하라고 하며 퇴근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어느 날, A는 정시퇴근 시간에 맞춰서 하루 일지와 함께 업무 보고서를 들고 팀장 자리로 왔다. 업무는 약 절반가량만 이뤄진 상태였다. "오늘 내로 무조건 마치라는 말 잊었어? 이게 다 마친 거야?" 팀장 말에 A는 이미 주 12시간을 다 채워 연장근로를 한 상태고, 하루 일지 작성으로도 시간을 많이 쓰게 되어 업무시간 자체가 줄어들어 있으며, 그런 상태에서 퇴근 시간까지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반박했다. 팀장은 "넌 팀에 미안하지도 않냐?"라고 하며, 일머리가 없으면 배우려고라도 해야 하는데 실력도 자세도 안 되어 있단 말을 덧붙였던 것이었다.


A는 팀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였다. 차별적인 마이크로매니징과 과도한 업무지시, 폭언이 괴롭힘의 구체적 내용이었다. 팀장은 마이크로매니징은 업무를 가르쳐주려는 목적이었고, 업무의 부족한 점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고 했다. 과도한 업무지시에 대해서는 과도하지 않았으며, 업무지시는 본인의 역할이라고 반박했다. 폭언은 다소 과도한 발언이 이뤄진 것은 맞지만 합당한 업무지시 범위에서 이뤄진 것이라고도 했다.

A는 야근을 이미 주 12시간 이상 해서 또 야근을 한다면 연장근로 등록이 사내 시스템상 되지 않는 상태였고, 이 때문에 야근을 하지 않는 게 자세가 안 되어 있는 거냐고 했다. 본인이 일 수행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야근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세가 되지 않은 직원으로 평가받는 건 부당하다고 했다. 업무일지는 매 순간마다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했고, 그런 업무 일지를 본인만 쓴다는 것도 억울하고 수치스러웠다고 했다. 업무 일지를 바탕으로 업무 관련 피드백을 팀장에게 받은 적도 없다고 했다.

팀장의 행위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되었으며, 경징계가 이뤄졌다. 마이크로매니징 자체가 문제는 아닐 수 있으나, 모든 업무를 일지로 작성하도록 한 것은 업무 수행에 도움이 되지도, 업무 피드백을 위한 자료로 쓰이지도 않아 A에게 적정범위를 넘어서서 근무 환경을 악화시키는 지시사항이었다고 판단이 이뤄졌다. 과도한 업무 지시 역시 하루 내에 마치지 못할 양을 일부러 줬다는 팀장의 발언을 근거로 이러한 업무를 특정하여 지속적으로 수행하도록 특별지시를 한 것은 업무 적정범위를 다소간 넘었으며, 폭언 역시도 다른 직원들이 다 듣는 자리에서 모멸감을 느끼는 발언이었을 것이라고 하여 종합적 판단의 결과,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인정된 것이다.

유사한 사례들이 빈번하게 조직사회에서 이뤄지고 있다. 관리자들은 이런 사건들을 접하면서 이런 식이면 관리자가 어떻게 재량껏 팀 내에서 업무를 지시하고 관리자 역할을 할 수 있냐며 곤란해한다.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관리자의 재량을 축소시키고 정당한 업무지시까지도 방해하고 있다고까지 한다.

단연코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관리자의 적정한 업무지시였음에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하는 경우들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은 적정한 업무지시에 대하여 하나의 요건으로서 직장 내 괴롭힘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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