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처럼 거친바람을 끌어안는다면

한겨레 2023. 12. 19.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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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김용규의 숲과 지혜]

픽사베이

포월(包越) : 바람을 껴안아 마침내 꽃 피는 나무들

맹렬한 바람

맹렬한 바람이 무시로 불어오는 땅이 있다. 바람이 거역할 수 없는 숙제가 되는 땅. 삶은 너무도 신비로워 그 험한 땅에서도 어떤 씨앗의 싹은 뒷일 걱정 없이 터진다. 그리하여 일생 그곳을 제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 나무들. 매서운 바람의 땅을 사무치도록 끌어안고 자신의 숙명을 극복함으로써 어떻게든 꽃피고 열매 맺고, 그렇게 삶을 이어가야 하는 존재들. 이들은 앞서 살핀 숲 가장자리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사는 존재들과는 확연히 다른 여건에 산다.

바람 없는 땅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바람이라고 다 같은 바람이 아니다. 섬의 해안이나 산맥의 가장 높다란 능선 주변에 오도카니 서보라. 그곳으론 앞서 본 숲 가장자리의 오동나무나 대나무, 물가의 갈대나, 언덕배기 위의 억새, 혹은 논바닥의 벼를 향해 부는 바람과는 다른 바람이 분다. 대개 숲 가장자리에 사는 식물이 극복해야 할 바람은 한시적인 바람이다. 주로 장마와 겹치거나 그것을 뒤따르는 태풍에 국한되는 바람이다. 사철 불어대는 바람이 아니고, 주로 그들의 치열한 생장기에 집중되는 바람이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그 한시적인 바람을 제 줄기 내부를 비워내는 지혜로, 바람에 적당히 흔들릴 수 있는 유연함의 지혜로 극복했다. 하지만 섬이나 산맥 고지대라는 공간으로 불어대는 바람은 그 성질이 다르다. 강도가 세고 때로 맹렬하며 지속적이고 간혹 편향적이다.

섬잣나무. 사진 김용규 괴산여우숲생명학교장

제주의 바람과 팽나무

‘바람’하면 떠오르는 섬 제주. 제주를 가장 입체적으로 소개하는 책 중 하나인 ‘신비 섬 제주 유산’(고진숙, 블랙피쉬, 2023)의 작가가 제주의 바람을 언급하는 대목을 읽어보자. “태풍이 아니더라도 제주는 사흘에 하루는 바람이 거세게 분다. 제주 사람에게 바람은 ‘막젱 여도 막지 못곡, 심젱여도 심지 못는(막자고 하여도 막지 못하고 잡자고 하여도 잡지 못하는) 것’이다.(99쪽) “제주의 바람은 거칠게 보이지만 일관성이 있다. 겨울엔 북서풍이, 여름엔 남동풍이 줄기차게 분다.”(101쪽) 이렇듯 제주의 바람은 일상적이고 편향적이다.

제주의 바람과 생명과 삶과 정신을 탁월한 솜씨로 표현한 화가가 있다. 제주가 낳은 소중한 화가 노야(老野) 강요배 선생. 나는 선생의 글과 그림을 좋아한다. 특히 1996년 작품인 ‘팽나무와 까마귀Ⅰ’을 너무 좋아해서 온라인 화상 수업 때 배경 화면으로 쓰기도 한다. (작품은 https://www.hani.co.kr/arti/PRINT/200054.html 참조. 또는 강요배, ‘풍경의 깊이 : 강요배 예술 산문’, 돌베개, 2020, pp. 132-133. 참조) 이 작품에는 제주로 부는 바람이 서럽고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백송. 사진 김용규 괴산여우숲생명학교장

작품 속에는 멀리 눈 덮인 한라산이 있고, 가까이 ‘폭낭’(제주 사람들은 팽나무를 폭낭이라 부른다) 한 그루와 까마귀 한 마리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허공은 바람으로 가득하다. 그림 속 폭낭에는 북쪽을 향하는 가지가 거의 없다. 다만 나무는 “남쪽으로 쏠린 뼈가지를 하고, 마치 바람을 닮은 거대한 새처럼 바람을 타고” 서 있다.(같은 책, 21쪽) 뭐랄까? 오랜 세월 한쪽에서 불어댄 세찬 바람이 이 나무에 고스란히 새겨진 모습이랄까? 아니면 폭낭이 자신을 향해 줄기차게 불어댄 맹렬한 바람과 기막힌 모습으로 화해하며 그 역경을 끌어안고 사는 모습이랄까? 그도 아니면 나무가 편향성을 띤 바람과의 관계에서 찾아낸 절묘한, 또는 눈물겨운 평화의 지점이랄까?

그림 속 까마귀는 팽나무 왼쪽 아래에서 동쪽으로 짐작되는 먼 한라산 방향으로 몸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북쪽을 바라본다. 그곳은 폭낭의 나뭇가지가 뻗어간 방향과 반대쪽이다. 깃 부근의 털이 바람이 몰려가는 방향을 따라 날리듯 들려 있다. 살짝 목을 움츠린 듯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몸을 일으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자태와 눈이 자꾸 시선을 끈다. 작고 사소해 보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보면 볼수록 그 눈빛이 특별하다.

이 그림을 보며 나는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섬사람들도 까마귀의 저 눈빛으로 몰아치는 바람을 응시하며 살아냈을까? 폭낭의 저 자태로 맹렬한 바람과 맞서면서 자신을 지켜내고 또 꽃 피우며 살아낸 것은 아닐까?’ 새도 나무도 사람도 모두 다 몰아쳐 오는 맹렬한 바람을 그렇게 극복하며 살아내는 것이 아닐까? 응시하며, 기막힌 모습으로 끌어안으며…….

백송. 사진 괴산여우숲생명학교장

울릉도와 섬잣나무

바람이 맹렬하기로는 우리 바다 동해에 독도와 함께 솟아 있는 섬 울릉도도 마찬가지다. 울릉도에는 그곳을 향해 무시로 불어대는 맹렬한 바람을 하루하루 이겨내며 살아온 특별한 나무가 산다. 강요배 선생이 포착해서 그림으로 담아낸 제주의 팽나무는 한 개체, 그러니까 한 그루의 나무가 바람을 극복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울릉도에서 바람을 극복하며 살아내고 있는 이 나무는 아예 바람에 특별히 적응하여 군락을 이뤄낸 별도의 종이다. 그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여 얻게 된 그의 이름은 ‘섬잣나무’다.

섬잣나무는 분류학적으로 소나무과(Pinaceae)의 소나무속(Pinus)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흔하게 볼 수 있는 소나무속의 하위 종에는 소나무, 곰솔(예전에는 해송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곰솔로 공식화),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섬잣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등이 있다.(그 외 중국 원산인 백송도 있지만, 수목원이나 일부 정원에 드물게 심겨 관리되고 있는 수준이라 흔하지는 않다. 북미 원산의 스트로브잣나무도 백송과 처지가 비슷하지만 조금 더 흔하다) 소나무속의 나무를 종으로 구분하는 방법에 열매나 나무껍질 말고, 잎의 개수를 관찰하는 방법이 있다. 이들의 잎은 여러 장이 함께 뭉쳐나는데, 그 개수를 세어 구분하면 된다. 소나무는 잎 2개가 하나로 뭉쳐나고, 백송과 리기다소나무는 3개로, 잣나무는 5개로 갈라진다.

리기다소나무. 사진 김용규 괴산여우숲생명학교장

잎 5개가 함께 뭉쳐서 나는 나무는 일단 모두 잣나무류다. 섬잣나무 잎도 그렇다. 하지만 섬잣나무의 잎은 잣나무나 스트로브잣나무의 잎에 비해 대략 절반 정도 길이로 매우 짧다. 이것이 다른 잣나무류와 구분되는 섬잣나무만의 중요한 특징이다. 섬잣나무는 우리나라 울릉도에 군락으로 자생하며 일본열도에도 분포한다.(지금은 내륙에서도 어렵지 않게 조경수로 만날 수 있다) 섬잣나무가 그 잎을 이토록 파격적으로 짧게 해서 사는 이유를 이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일생 수시로 자신에게 부딪고 더러 할퀴어대는 섬의 맹렬한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서다. 제주 어느 바람 센 자리의 팽나무가 북쪽의 가지를 모두 내어주고 남쪽의 가지를 지키는 것으로 사나운 바람을 이겨냈을 때, 울릉도의 섬잣나무는 아예 잎 전체의 길이를 짧게 함으로써 모질디모진 바람에 대한 저항을 줄임으로써 기어코 그것을 넘어서며 살고 있다.

잣나무 잎. 사진 김용규 괴산여우숲생명학교장

산맥과 눈 나무들 : 눈향나무, 눈주목, 눈잣나무

이제 산맥으로 부는 모진 바람을 맞으러 가보자. 기어가듯 살며 그 모진 자리를 사수하고 있는 ‘눈향나무’나 ‘눈주목’, ‘눈잣나무’의 처지가 되어서. 우선 소백산으로 가보자. 소백산의 능선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를 북과 남으로 가르며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지형상 단양은 높고 영주는 낮다. 소백산은 능선을 기점으로 단양이 속한 북쪽은 상대적으로 완경사고 풍기와 영주로 내달리는 남쪽은 급경사다. 겨울철 시베리아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어마어마한 찬바람이 단양 쪽 완경사를 타고 도약하며 주저 없이 내달린다. 이 바람은 동서로 뻗은 능선을 후려친 뒤, 남쪽 급경사를 타고 급격히 쏟아져 내린다.

그 강력한 바람길 위에서 제 삶을 부여받고 사는 생명이 있다. 바로 눈향나무다. 이 나무는 향나무와 같은 속이다. 그런데 다른 향나무들과 구분하여 ‘눈향나무’라 칭한다. 이름만 듣고도 이 존재의 꼴을 연상할 수 있는가? 내가 이 나무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이름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다. 눈꽃도 얼마나 예쁜 말인가. 이 역시 아마 쏟아지는 눈과 관련이 있어 눈향나무겠거니 예상했다. 완전히 빗나간 예상이었다. 눈향나무의 ‘눈’은 ‘누운’의 줄임말 표현으로 ‘눕다’를 형용한 것이다. 눈향나무는 향나무는 향나무인데 눕듯이 자라는 특성을 가진 향나무다.

소나무. 사진 김용규 괴산여우숲생명학교장

눈향나무는 소백산 능선처럼 고산 정상 부근, 주로 바위틈에서 살아가는 상록침엽수다. 그의 원줄기는 바위 밑으로 처지거나 땅을 기듯이 자란다. 줄기에서 비스듬히 자라는 많은 가지는 기껏 자라야 50cm를 넘지 않는다. 일반 향나무의 크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키를 낮추고 바닥을 기듯이 사수하며 사는 꼴을 갖추었다. 왜 그럴까? 엄청난 바람 때문이다. 산맥을 넘나드는 바람과 맞서야 하는 자리를 서식지로 부여받은 존재. 그의 꼴 전체는 그 혹독한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빚어진 것이다. 어마어마하게 몰아치는 매서운 바람을 겹겹의 세월을 거치며 껴안고 또 껴안음으로써 완성해낸 모습이 바로 ‘눈-’이다. 5월경에 2mm 정도로 피는 눈향나무의 도드라질 데 없는 꽃이 그의 사정을 아는 이의 눈에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울 것이다.

강원도 설악산 고산지대에는 또 다른 바람의 역경을 극복하고 살아가는 ‘설악눈주목’이 있고, 키를 낮추고 잎 의 길이도 대폭 줄여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하고 있는 눈잣나무도 있다.

눈향나무. 사진 괴산여우숲생명학교장.

맹렬한 바람이 무시로 불어오는 땅에서, 태어나자마자 바람이 거역할 수 없는 숙제가 되는 땅에서, 삶의 신비를 따라 태어난 섬잣나무, 눈향나무, 눈주목, 눈잣나무…. 그들의 삶에서 나는 초월(超越)을 생각했고 포월(包越)을 배웠다.(포월은 야스퍼스에게서 빌림)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세계를 끌어안음으로써 마침내 그것을 넘어서는, 그래서 이미 씨앗 속에 심어 준 신의 뜻을 구현해 내는 것이 바로 포월이다. 하지만 초월은 자신이 경험하며 발 딛고 사는 세계 밖에 서는 것을 의미한다. 거대한 깨달음에 이른 극히 드문 이들은 그것이 가능한지 모르지만, 우리 보통의 생명에게 초월은 요원하다. 아니, 불가능하다. 그러나 차라리 삶에 들이닥치는 모진 바람들을 모두 끌어안음으로써 그 바람을 넘어서는 삶은 가능할 것이다. 제주도 그 까마귀의 눈빛으로 닥쳐오는 바람을 응시하고 섬에 사는 팽나무와 섬잣나무, 그리고 산맥에 사는 ‘눈-’ 나무들의 자세로 바람을 끌어안는다면, 당신에게도 반드시 역경이 꽃이 되는 날 올 것이다.

김용규(충북 괴산, 여우숲 생명학교 교장)

*이 시리즈는 대우재단 대우꿈동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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