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반성문 써야 하나”… 예상보다 빠른 연준 ‘비둘기’ 피벗에 증권사들 끙끙
2주일 만에 매(통화 긴축 선호)에서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로 돌아선 미국 중앙은행의 태도 변화에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이 말 못 할 고민에 빠졌다. 상당수 증권사가 10~11월 일찍이 2024년 증시 전망 보고서를 발간한 탓이다. 내년 시장의 최대 변수라 할 수 있는 금리 환경이 ‘조기 인하‘로 급변할 경우 증권사 전망도 크게 엇나갈 수 있다. 증권사들은 작년에도 연간 전망을 현실과 동떨어지게 내 시장을 실망하게 한 바 있다.
1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최근 개최한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재의 5.25~5.50%로 유지했다. 여기까진 예견된 결과였다. 예기치 못한 상황은 회의 이후 이어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기자회견에서 벌어졌다.
이 자리에서 파월 의장은 “기준금리가 정점이나 그 근처에 도달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연준 위원들과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달 초 한 좌담회에서 “우리가 통화 긴축 정책을 충분히 완수했다고 단정하거나 통화 완화 정책을 언제부터 펼칠지 예측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말했던 그가 불과 2주일 만에 피벗(통화 정책 전환) 의사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여기에 연준이 내년 말 기준금리를 지금보다 0.65~0.90%포인트(p) 낮은 4.6%(중간값)로 예상한 점도표(금리 전망치를 점으로 나타낸 도표)까지 공개되면서 전 세계 주식시장은 뜨겁게 환호했다. 내년에 0.25%p씩 세 차례 금리 인하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인데, 이는 두 차례 인하(최종 금리 5.1%)를 제시한 지난 9월 점도표보다 더 완화한 전망치이기 때문이다.
들뜬 시장과 달리 국내 주요 증권사들은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예상 밖의 FOMC 결과가 나오기 전인 올해 10~11월 내년도 증시 전망 보고서를 미리 발간한 리서치센터가 많아서다. 당시 대부분 증권사는 2024년 증시 움직임을 결정할 최대 변수 중 하나로 금리를 꼽았다. 물론 금리 추가 인상을 점친 증권사는 없지만, 인하 기조가 이렇게 강하게 드러날 것으로 관측한 증권사도 없었다.
증권사들은 연준이 내년 상반기까지는 ‘고금리 장기화(Higher for Longer)’ 정책을 고수하다가 하반기부터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봤다. 그러나 이번 FOMC 이후 시장에서는 “연준이 상반기부터 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금리 인하가 상반기부터 시작되면 각 증권사가 내놓은 지수 전망치도 크게 빗나갈 수 있다. 국내 증권사 15곳의 내년 코스피 예상 밴드는 평균 2218(하단)~2753(상단)이다.
주요 리서치센터는 시장 상황을 좀 더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갑작스러운 연준의 비둘기적 면모가 놀랍긴 하지만 증시 전망 보고서를 대폭 수정할 만큼 실체로 다가온 변화는 없다는 이유에서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FOMC 이후 나온 각종 지표를 토대로 우리가 낸 전망치를 점검해 봤다”며 “큰 흐름에서 어긋난 부분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증권사 내부적으로는 긴장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반성문까지 썼던 작년의 씁쓸한 기억 탓이다. 2021년 말 주요 증권사들은 2022년 코스피 예상 범위를 2610~3600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지난해 코스피 지수는 일찌감치 2600선을 내주고, 2236으로 한 해를 마쳤다. 2021년 말(2977)과 비교해 무려 24.9%나 하락한 수치였다.
작년 12월 29일 신영증권 리서치센터는 ‘2022년 나의 실수’라는 반성문 느낌의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에서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올해 범한 결정적인 오판은 중앙은행의 긴축 장기화 가능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짚었다. 2021년 말 증권사들은 연준이 금리를 0.25%p씩 세 번 정도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연준은 지난해 금리를 7차례나 인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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