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화상 탓에 ‘은둔 생활’하던 키르기스스탄 소년, 한국서 미소 되찾아

권대익 2023. 12. 1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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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절반 3도 화상···열악한 현지 의료 환경 탓 수술하지 못해 낙담
서울아산병원 의료봉사단 도움으로 한국서 이마 피판 이용 코 재건술
알리누르 아버지(왼쪽부터)와 알리누르,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성공적인 얼굴 성형 수술 치료를 기념해 기념 촬영했다.서울아산병원 제공

얼굴 절반에 화상을 입어 ‘은둔 생활’을 해오던 키르기스스탄 소년이 해외의료봉사를 떠난 국내 의료진을 만나 한국에서 안면재건술을 받았다.

화상으로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방 안에서 세계지도를 보며 혼자 노는 게 유일한 재미로 여기던 소년은 해맑은 미소를 되찾고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얻게 됐다.

서울아산병원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의료 봉사를 하던 중 만난 어린이 안면 화상 환자 알리누르(8)가 서울아산병원에서 화상 흉터를 제거하고 이마 피부를 이용해 코를 재건하는 2차례에 걸친 대수술을 성공리에 마쳤다고 19일 밝혔다. 알리누르는 건강한 모습으로 20일 귀국한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 동북부에 위치한 나라로 80%가 고산지대여서 교통이 불편한데다가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2021년 6월,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지역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던 알리누르 가족은 집 보수에 쓰일 화학용 액체를 끓이고 있었다. 가족들이 잠깐 방심한 새 아무것도 모르는 6살 알리누르는 장난삼아 아궁이에 돌을 던졌다.

팔팔 끓고 있던 뜨거운 화학용 액체는 사방으로 튀며 알리누르의 코·이마·눈 등 얼굴 전체를 덮쳤다. 사고로 인해 알리누르는 얼굴 중안부에 3도 화상을 입었으며, 화상으로 인한 부기로 사흘 간은 눈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또한 화상 후유증으로 코 모양이 영구적으로 변형됐다.

알리누르가 사는 마을에서 급히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병원은 집에서 40㎞ 정도 떨어져 있었다. 화상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은 아니지만 알리누르 가족은 희망을 안고 급히 병원을 찾았다. 10일간 입원 치료를 받으며 다행히 시력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열악한 의료 환경 탓에 병원에서는 흉터가 더 커지지 않게 간단한 치료만 해줄 뿐이었다. 알리누르 가족은 월급 3분의 1에 해당하는 큰 비용을 매번 부담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알리누르의 얼굴 흉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현지 의료진은 14세가 넘어야 흉터를 치료하는 수술이 가능하다며 8년 넘게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전신마취로 4번에 걸쳐 수술을 받아야 하는 큰 수술인 만큼 의료진은 수술에 자신이 없다고 덧붙였다. 얼굴을 뒤덮은 화상 흉터를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알리누르 가족은 낙담했다.

알리누르는 화상 부위가 햇볕에 닿으면 매우 가려운 데다가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돼 점차 외출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이젠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하며 외부 세상과 벽을 쌓았다.

그렇게 2년가량을 지내던 중 지난 7월 한국에서 온 의료진이 무료 진료를 한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아산병원 해외의료봉사단이 7월 16일부터 3일간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 지역으로 의료 봉사 활동을 온 것이다. 이번 키르기스스탄 의료봉사에는 의사 15명, 간호사 22명 등 46명의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참여했으며, 3일간 2,500여 명의 환자를 치료했다.

이곳에서 알리누르를 진료한 서현석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화상 부위가 얼굴인 만큼 기능·외형·심리적 부분까지 고려해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한 번 수술로 끝나지 않는 고난도 수술인 만큼 한국으로 이송해 치료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평생 얼굴의 흉터와 함께 살아야 한다며 절망했던 알리누르 가족은 세계적으로 의료 기술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고민도 하지 않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지난 11월 9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알리누르는 수술에 필요한 정밀 검사를 받았고, 수술이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11월 13일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팀은 알리누르의 이마 피판(皮瓣)을 이용해 코를 재건하는 1차 수술에 성공했다. 화상 흉터 조직을 제거한 뒤 얼굴과 가장 비슷한 색깔과 재질을 가진 이마 피부를 이용해 코를 재건하는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이후 3주간 생착 기간을 거친 뒤 12월 6일 이식한 피판과 이마와 연결 부위를 분리하는 2차 수술을 성공리에 마무리했다. 이식한 피판이 3주간 생착돼 화상을 입은 피부에서도 정상적이고 독립적으로 혈액이 흐를 수 있게 된 것이다.

8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도 큰 수술을 무사히 이겨낸 알리누르 얼굴에는 얼룩덜룩한 흉터 대신 해맑은 미소가 가득했다. 알리누르의 치료비 전액은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알리누르는 “화상을 입은 후로는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는 게 싫었다. 방 안에서 세계지도를 보며 혼자 노는 게 유일한 재미였다"며 "서울아산병원 선생님들이 예쁜 얼굴을 다시 찾게 해주셨으니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과 실컷 놀고, 어른이 되면 세계지도에서 봤던 나라들을 여행하고 싶다”고 했다.

알리누르 수술을 맡은 최종우 교수는 “어린 나이인데도 알리누르가 큰 수술을 잘 버텨주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 재건 부위가 더 자연스러워질테니 화상 아픔은 잊고 건강하게 멋진 어른으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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