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화상'에 은둔해온 키르기스스탄 소년, 한국서 미소 되찾은 사연은
서울아산병원 의료봉사단 만나 한국행···이마 피판 이용해 코 재건
얼굴 절반에 화상을 입은 후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해오던 키르기스스탄 소년이 미소를 되찾았다. 해외 의료봉사를 떠난 국내 의료진을 기적적으로 만난 후 한국에서 안면 재건술을 받으면서다. 화상으로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방 안에서 세계지도를 보며 혼자 노는 게 유일한 재미였다던 소년은 해맑은 미소를 되찾고 세계여행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졌다.
서울아산병원은 키르기스스탄에서 의료봉사를 하던 도중 만난 안면화상환자 알리누르(Alinur, 남, 8세)가 한국에서 화상 흉터를 제거하고 이마 피부를 이용해 코를 재건하는 대수술을 2차례에 걸쳐 성공적으로 받았다고 최근 밝혔다. 알리누르는 건강한 모습으로 이달 20일 본국으로 돌아간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북동쪽에 위치한 국가로, 토지의 약 80%가 고산지대로 이뤄져 있다. 지형이 복잡해 교통이 불편한데다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해 주민들이 적절한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졌다.
2021년 6월,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지역의 시골 마을 허름한 집에 살고 있던 알리누르 가족은 집 보수에 쓰일 화학용 액체를 끓이고 있었다. 가족들이 잠깐 방심한 사이, 아무것도 모르는 6살 알리누르는 장난삼아 아궁이에 돌을 던졌다. 팔팔 끓고 있던 뜨거운 화학용 액체는 사방으로 튀며 알리누르의 코·이마·눈 등 얼굴 전체를 덮쳤다.
사고로 인해 알리누르는 얼굴 중안부(눈썹~코 끝)에 3도 화상을 입었으며, 화상으로 인한 부기로 첫 3일간은 눈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또 화상 후유증으로 코 모양이 변형되는 영구적 기형이 생겼다.
알리누르가 사는 시골 마을에서 급히 치료받을 수 있는 유일한 병원은 집에서 40㎞가량 떨어진 곳. 화상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병원은 아니지만 알리누르 가족은 희망을 안고 급히 병원을 찾았다. 10일간 입원 치료를 받으며 다행히 시력에는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열악한 의료환경 탓에 병원에서는 흉터가 더 커지지 않게 하는 간단한 치료만 해줄 뿐이었다. 알리누르 가족은 매번 월급 3분의 1에 해당하는 큰 비용을 부담하며 치료받았지만, 알리누르의 얼굴 흉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게다가 현지 의료진은 만 14세가 넘어야 흉터를 치료하는 수술이 가능하다며 8년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또 전신마취 하에 총 4번 수술받아야 하는 대규모 수술인 만큼 의료진은 "수술에 자신이 없다"라고도 덧붙였다. 얼굴을 뒤덮은 화상 흉터를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사실에 알리누르 가족은 낙담했다.
알리누르는 화상 부위가 햇볕에 닿으면 매우 가려운 데다가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돼 점차 바깥으로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이젠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은둔 생활'을 하며 외부 세상과 벽을 쌓아 나갔다.
그렇게 2년가량을 버티던 중 지난 7월 한국에서 온 의료진이 무료 진료를 한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아산병원 해외 의료봉사단이 7월 16일부터 3일간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 지역으로 의료봉사활동을 온 것이다. 이번 키르기스스탄 의료봉사에는 의사 15명, 간호사 22명 등 총 46명의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참여했으며, 3일간 환자 2500여 명을 성공적으로 치료했다.
키르기스스탄 의료봉사에서 알리누르를 진료한 서현석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화상 부위가 얼굴인 만큼 아이의 기능적·외형적·심리적 부분까지 고려해 치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번의 수술로 끝나지 않는 고난도 수술인 만큼 한국으로 이송해 치료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평생 얼굴 흉터와 함께 살아야 한다며 절망했던 알리누르 가족은 세계적으로 의료기술이 뛰어나다고 알려진 서울아산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고민도 하지 않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11월 9일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아산병원을 찾은 알리누르는 수술에 필요한 모든 정밀검사를 받았고, 수술이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11월 13일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최종우 교수팀은 알리누르의 이마피판을 이용해 코를 재건하는 1차 수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했다. 화상 흉터 조직을 제거한 뒤, 얼굴과 가장 비슷한 색깔과 재질을 가진 이마 피부를 이용해 코를 재건하는 4시간에 걸친 대수술이었다.
이후 3주간의 생착 기간을 가진 다음 12월 6일 이식한 피판과 이마와의 연결 부위를 분리하는 2차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식한 피판이 3주간 생착돼 화상 입은 피부에서도 정상적이고 독립적으로 혈액이 흐를 수 있게 된 것이다.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도 큰 수술을 무사히 이겨낸 알리누르 얼굴에는 얼룩덜룩한 흉터 대신 해맑은 미소가 가득했다.
알리누르의 치료비용 전액은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알리누르는 "화상을 입은 이후로는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는 게 싫었다. 방 안에서 세계지도를 보며 혼자 노는 것이 유일하게 재미있었다. 서울아산병원 선생님들이 예쁜 얼굴을 다시 갖게 해주셨으니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친구들과 실컷 놀고 싶고, 어른이 되면 세계지도에서 봤던 나라들을 여행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알리누르의 수술을 집도한 최종우 서울아산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알리누르가 큰 수술을 잘 버텨줬다. 시간이 지날수록 재건 부위가 더 자연스러워질 테니, 화상의 아픔은 잊고 건강하게 멋진 성인으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아산병원 해외 의료봉사단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설립 이념 아래 의료환경이 열악한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펼쳐왔으며, 그동안 14개국에서 봉사활동을 53회 시행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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