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종합] "심장이 쿵, 과호흡까지..심장 아팠죠"…전여빈, 꺾여도 해내는 뚝심(청룡영화상)

조지영 2023. 12. 19.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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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전여빈이 7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3.12.07/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중요한 것은 꺾이더라도 그냥 하고야 마는 용기와 숭고한 정신, 그리고 간절한 마음이다. 위기의 한국 영화가 버티고 나아가는 이유는 바로 '중꺾그마' 정신으로 똘똘 뭉친 뚝심 있는 배우 전여빈(34)이 있기 때문이다.

전여빈은 지난 11월 24일 개최된 제44회 청룡영화상에서 블랙 코미디 영화 '거미집'(김지운 감독, 앤솔로지 스튜디오·바른손 스튜디오 제작)으로 감격의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1970년대, 다 찍은 영화 '거미집'의 결말을 다시 찍으면 더 좋아질 거라는 강박에 빠진 감독이 검열 당국의 방해와 바뀐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와 제작자 등 미치기 일보 직전의 악조건 속에서 촬영을 감행하면서 벌어지는 처절하고 웃픈 일들을 그린 '거미집'에서 전여빈은 재촬영을 밀어붙이는 신성필림 후계자이자 재정 담당을 맡은 신미도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온갖 역경과 장애물 속에서도 작품을 향한 열망을 꺾지 않는 김 감독(송강호)을 유일하게 신뢰하는 인물이다. 믿음 하나로 불도저처럼 뚫고 직진하는 신미도 그 자체로 완벽히 젖어든 전여빈은 스토리 전반 텐션을 화끈하게 밀어붙이며 자신만의 매력과 색깔로 '거미집'의 재미를 끌어올렸다.

제44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전여빈이 7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3.12.07/

스포츠조선을 만난 전여빈은 "축하 연락을 정말 많이 받았다. 상을 받아 기쁘기도 하지만 이렇게 주변에서 모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줘 수상 이상으로 행복하더라.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닌데 다들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마음을 받으며 참 따뜻한 날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내게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 시간이었다. 내가 걸어온 이 시간이 결코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진 게 아닌 모두의 도움과 응원, 지지로 만들어진 결과인 것 같다"고 되새겼다.

그는 "스스로는 아직 신인이라 생각하는데 어느 순간 지금보다 더 연차가 쌓이고 선배라는 호칭이 부끄럽지 않을 때가 됐을 때 동료들에게 힘이 되는 좋은 친구이자 선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나를 아는 동료와 동지들이 내 존재만으로 조금이나 위안이 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됐다"고 웃었다.

제39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제42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후보 이후 세 번째 도전 만에 첫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 전여빈은 예상치 못한 수상의 순간 밀려왔던 떨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전여빈은 "내가 그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인 줄 몰랐다. 물론 원래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지만 청룡영화상에서 그렇게 울 줄 상상도 못했다"며 "정말 한 마리의 양처럼 바들바들 떨었다. 내 이름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 하며 철렁 내려앉았고 너무 놀라서 과호흡이 오더라. 무대 위로 걸어가는 중에도 심장이 너무 떨려 걸음을 멈추기도 했다. 그래서 무대 수상 소감으로 '심장이 아프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은 심장이 진정됐지만 그때는 정말 내 인생에서 가장 떨리고 놀랐던 날이었다"고 곱씹었다.

제4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24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배우 전여빈이 여우조연상 호명을 받고 있다. 여의도=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2023.11.24/
제44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24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전여빈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고 있다. 여의도=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3.11.24/

화제를 모은 '중꺾그마' 소감도 빠질 수 없었다. 전여빈은 "평소 나의 소소한 마음이었는데 수상을 통해 너무 거창한 모습으로 나가서 민망하기도 했다. 솔직히 여우조연상을 너무 받고 싶었는데 수상을 예상하지는 못해서 (소감에 대한) 준비를 전혀 못 했다. 조금이라도 수상을 예상했다면 좀 더 멋있는 수상 소감을 했을 텐데 개인적으로는 좀 아쉬웠다. 그래도 팬들과 시청자가 내 소소한 이야기에 공감해 주고 좋아해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때 밀려오는 감동이 더 컸던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소감으로 '중꺾그마'를 이야기 한 바람에 몇몇 분은 내가 만든 신조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이 신조어를 만든 원작자는 박명수 선생이다. 박명수 선생이 한 프로그램에서 '중꺾마'를 이야기 하다 '중요한 것은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인 거야'라며 버럭했다고 하더라.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 나 역시 머리가 띵해졌을 정도로 가슴에 와닿았다. 힘이 들더라도 내가 좋으면 하는 그 마음이 정말 중요하고 좋지 않나? 그게 MZ 세대 사이에서 밈이 됐고 '거미집' 무대인사를 하면서 '중꺾그마'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우리도 사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거미집' 무대인사 때만 해도 박명수 선생의 어록인 줄 몰랐다. 요즘 MZ 세대 신조어인 줄만 알고 마구 썼던 것 같다. 박명수 선생께서 꽤 오래전에 '중꺾그마'를 이야기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몇 수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이 뛰어난 분이신 것 같다. '중꺾그마'는 단연코 박명수 선생이 원조다"며 "이런 좋은 단어를 알게 해줘 감사하다. 그만큼 요즘 꺾이고 좌절할 일이 많아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이런 말이 와닿을 정도로 현재 우리들은 굳은살을 길러야 할 일들이 많구나 싶어 마음이 애잔하기도 했다. 외로운 이들에게 소소한 위로를 전하고 싶어서 그 단어를 선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인생작, 그리고 인생캐를 만들어준 '거미집'을 향한 애정도 특별했다. 전여빈은 "거미집은 스코어와 상관없이 스스로 뜻깊고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나고 싶었던 영화였고 그 현장과 순간들이 나를 각성 시켜주고 일깨워준 부분이 많아 너무 고마운 작품이다. 특히 다른 작품이 아닌 '거미집'의 신미도로 청룡영화상을 받을 수 있어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고 답했다.

그는 "신미도는 정말 멋진 인물이다.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달려 나가는 추진력 있는 사람이다. 특히 신미도는 자신을 믿는 동시에 타인을 믿어주는 사람이다. 힘을 주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멋있는 사람 그 자체다. 신미도라는 인물로 상을 받았고 그래서 수상소감도 신미도와 어울리는 수상 소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신미도의 일부분 중에는 전여빈화 된 부분도 있다. 나도 늘 열정과 의지를 내 안에 국한되게 하지 말고 타인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 부분이 나와 신미도가 굉장히 닮지 않았나 싶다"고 설명했다.

청룡영화상 심사위원들의 심사평 역시 전여빈에게 특별했다. 심사위원들은 "'거미집'의 전여빈이 나올 때마다 숨통이 트였다"며 "'거미집'의 여러 캐릭터와 앙상블을 이뤄가는 지점에서 전여빈의 역할이 중요했다. 초반 확실하게 기세를 잡고 끌고 가는 전여빈은 송강호라는 큰 기둥 곁에서 조연이지만 주연 이상의 영화적 완성도에 크게 기여했다. '리틀 송강호'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충무로의 대표 여배우로 자리매김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심사평을 보고 감동이 선물처럼 배가 됐다. 청룡영화상이 더 좋은 게 투표 결과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보여주고 심사위원들의 평가 역시 정리해 주는데 수상 이후 보는 그러한 평들이 수상자에게 또 다른 선물이 되는 것 같다. 마치 배우에게 은밀하게 던져진 연서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거미집'과 그 안의 신미도를 예쁘게 봐주셨다는 느낌이 들어 너무 감사하고 뿌듯했다"고 곱씹었다.

제44회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전여빈이 7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3.12.07/

마지막으로 전여빈은 청룡영화상의 의미에 대해 "'거미집'의 신미도로 받은 상이다. 앞으로 내 가능성과 기회가 또 열려 있고 새로워질 전여빈을 기대해달라는 다짐하게 되는 상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거미집'의 신미도가 영원히 잊지 못할, 소중하게 남을 수 있는 추억으로 만들어줬다. 청룡영화상 무대 위로 올라가는 순간의 떨림과 설렘, 벅차올랐던 마음까지 모든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관객들이 여태껏 잘해왔으니 그다음의 전여빈도 잘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담긴 상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마치 김 감독을 믿었던 신미도처럼 말이다. 훗날 다시 관객의 마음을 터치할 수 있는 좋은 역할을 만나고 하늘의 운도 닿아 다시 한번 수상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울지 않고 씩씩하고 기쁘게 받고 싶다"고 고백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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