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초선도 구태가 되는 현실… 여야 ‘권력의 홍위병’ 퇴출이 혁신과제[Deep Read]

2023. 12. 19. 09: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이현우의 Deep Read - 정치와 혁신
여야 초선, 공천 눈치 보느라 反혁신 일관… 역대 국회 엄청난 물갈이에도 정치 달라지지 않아
혁신으로 포장된 중진 희생론은 ‘회칠한 무덤’… 당 지도부 공천권 전횡이 한국정치 위기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이 앞다퉈 정당 혁신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김은경 혁신위원회와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가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중도 퇴장하고 제시한 개혁안은 무산됐다. 양당이 혁신위 활동을 빌미로 리더십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속셈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현 상황에서 양당의 정당 혁신 담론은 주로 ‘다선·중진 의원 용퇴와 희생 요구’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는 여야의 젊은 초선들조차 권력의 홍위병으로 만들고 ‘구태’로 몰아가고 있다. 정치인들의 명줄을 쥔 여야 지도부의 공천권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어떠한 정당 혁신도 성공할 수 없다.

◇정당 혁신이란

모든 조직은 외부 환경과 내부 요인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적응해야만 존속할 수 있다. 정당도 예외는 아니다. 정당 혁신이란 정당 내부의 속성을 의도적으로 단기간에 바꾼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할 정당 변화의 특별한 형태다.

하지만 정당 개혁을 단일 정당 내부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춰 평가하는 건 충분치 못하다. 개별 정당은 정당들 간의 관계인 정당체계, 그리고 한 단계 상위인 정치체계와 상호 연관성을 갖는다. 정당 혁신은 정당뿐 아니라 정당체계와 정치체계의 민주화 수준 향상에 기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우리의 현대 정치사를 보면 각 정당은 독재와 권위주의 시절 이후 민주정치에 조응하는 정당 조직과 규범의 변화를 추구해왔다. 대표적으로 2004년 17대 총선 때부터 상향식 공천제도를 도입한 것은 정당 민주화를 위한 획기적인 변화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제도 개선이 실질적 정당 운영의 기반이 돼 정당 민주화에 기여했는지 여부다.

현재 양당 모두 인적 청산을 정당 혁신의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국민의힘은 중진·지도부 불출마나 험지 출마를, 민주당 역시 당의 중심으로 자리 잡은 586 운동권 출신 퇴진론을 내세우고 있다. 두 정당 공통적으로 다선 의원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셈이다. 명분은 다선들이 누려온 부당한 기득권을 청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래된 것=구태=악’이라는 인식과 맥을 같이한다. 그럼 이러한 인적 청산의 대상은 구체적으로 몇 명이나 될까. 또 이들을 교체하면 정당 혁신을 완성하고 정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걸까.

◇문제의 공천 시스템

그동안 정당과 국회 운영이 정상적이지 못하고 국민의 비난 대상이 된 이유가 일부 다선·중진 의원들 때문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중앙선관위 통계에 따르면 2020년 21대 총선에서 당선된 초선 의원 비율은 50.3%(151명)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집권 열린우리당이 대승했던 17대 총선에서 초선이 188명 당선된 이후 가장 많은 숫자다. 20대(42.3%), 19대(49.3%), 18대(44.8%) 등에서도 초선 비율은 40%가 넘었다.

정당들은 이처럼 매번 총선에서 높은 현역 교체율을 유지해 왔지만, 초선의 정치 신인들이 국회에 대거 진출하면서 국회가 개선됐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초선들이 당과 국회 및 정치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화한 일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공천 때문이다.

국회의원에게 공천 티켓은 필수적이다. 일단 지역구에서 정당 조직의 지원과 지지를 기본적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선거에서 공천을 받으려면 공천권을 쥔 당 지도부에 잘못 보이면 안 된다. 게다가 최다득표자 1명만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에서 거대 정당의 공천은 후보자들에게는 당선을 위한 절대적 필요조건이다. 정치인이 지도부에 쩔쩔매는 이유다.

정당은 원칙적으로 경선을 통한 후보 공천을 주장하지만, 실제 경선에 따른 공천 비율은 50%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21대 총선에서 경선에 의한 공천은 민주당 43.9%, 미래통합당 44.7%에 그쳤다. 나머지는 단수공천이나 전략공천에 해당한다. 정당 지도부가 절반 이상을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셈이다.

◇회칠한 무덤

민주당의 초선 중 이탄희·오영환·홍성국·강민정 의원 등 4명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강 의원을 제외한 3명은 영입 인재로 민주당에서 모신 인물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정치 발전의 희망을 볼 수 없다는 좌절을 토로했다.

그나마 국민의힘에서는 그러한 결기를 보이는 초선들도 없다. 정치 혁신은커녕 지난 3월 전당대회에 앞서 나경원 후보를 비난하는 연판장을 돌리는 등 ‘윤심 받들기’에 몰두했다. 얼마 전까지도 윤심이 김기현 체제 옹호에 있다고 착각하고 ‘김기현 사퇴’를 요구하는 의원들을 강하게 비난하는 등 용산의 앞잡이 행세를 했다. 결국 초선들 상당수가 친윤이라는 우산 아래서 공천을 보장받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거대 양당이 이러한 고질적인 문제는 숨긴 채 혁신으로 포장된 물갈이론만 내세우는 건 ‘회칠한 무덤’일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정당 권력자의 자의적인 공천 배제와 공천 불복으로 인한 혼란이었다. 정당들은 아직도 권위주의 시절 정당 운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정당 지도부는 여전히 공천이라는 고삐를 쥐고 의원 자율성을 옥죄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과 원팀’을 슬로건으로 삼고 있고,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권력 공고화를 위해 친명 체제 구축에 혈안이 돼 있다. 어느 조직보다도 민주적이어야 할 정당들이 그 어떤 곳보다 다양성을 죽이고 일사불란을 기치로 삼는 게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다.

◇권력의 홍위병

당내 결속만 강조하는 정치는 정당을 망칠 뿐 아니라 정당 간 타협의 여지를 낮추고 필연적으로 국민의 갈등 수준을 높인다. 강한 대여 투쟁을 내세우는 야당 지도자가 득세하고, 대통령에 의존하는 종속적 여당 지도부가 구성된다. 여당의 일방적인 대통령 추종과 야당의 무조건적인 비토 정치가 양보와 타협을 기본 규범으로 하는 정상적인 국회 운영에 장애가 된다. 국민 갈등 해소라는 정치의 본래 기능은 사라지고 갈등을 증폭시키는 역할만 하게 된다.

정치의 위기는 정당 내적 요인, 정당체계의 요인, 그리고 정치체계의 요인이 중층적으로 작동하면서 심각해진다. 현재 한국 정치는 그러한 위기들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심각한 위기에 놓인 상태다. 정당 내부는 자율성이 사라졌고, 정당 간에는 적대적 갈등만 존재하며, 정치체계는 국민의 냉소와 외면을 받고 있다. 진정한 정당·정치 혁신을 위해서는 권력의 홍위병을 양산하는 요인의 혁파와 체계의 개혁이 절박하다.

서강대 정외과 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 용어설명

‘상향식 공천’은 당원과 국민이 참여하는 경선을 통해 후보자를 정하는 것. 국민참여경선, 완전개방형 국민경선, 여론조사 등이 있음. 대비되는 개념은 후보자를 단수로 추천하는 ‘전략공천’.

‘회칠한 무덤’은 겉은 깨끗하고 경건하나 내면은 아무렇게나 매장한 무덤. 순례자들에게 봉분 없는 일반인의 무덤임을 표시하기 위해 회칠한 데에서 유래. 겉과 속이 다른 위선적 모습을 비유.

■ 세줄 요약

정당 혁신이란 : 한국의 정당 혁신은 주로 선거를 앞둔 중진·다선 의원 퇴진론으로 모아져. 하지만 진정한 정당 혁신은 정당 내부의 속성을 바꾸는 것을 넘어 정치체계의 민주화 수준 향상에 기여하는 내용을 담아야.

공천 시스템 : 역대 국회마다 50% 안팎에 이르는 엄청난 물갈이를 해도 크게 개선되는 건 없어. 초선들조차 공천권을 휘두르는 지도부 눈치를 보느라 反혁신으로 일관. 한국 정치는 젊은 정치인조차 구태로 내몰아.

권력의 홍위병 : 거대 정당들에 내재된 고질적인 문제를 숨긴 채 혁신으로 포장된 중진 물갈이론만 내세운다면 이는 ‘회칠한 무덤’일 뿐. 진정한 혁신을 위해서는 권력의 홍위병 양산하는 요인을 척결하고 시스템을 고쳐야.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