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남성중심 벗고… 전 지구적 미술사 쓸 것”

유승목 기자 2023. 12. 1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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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미술은 지나치게 서구적이고 남성 중심이었죠. 이걸 틀렸다고 말하기보단, 그럼 새로운 대안은 무엇인가 생각하다 보니 '전 지구적 미술사'를 써야겠단 생각에 이른 거죠. 경제나 다른 사회 분야에서도 글로벌이란 말을 쓰는 전환 기점이 있었는데, 미술에도 그런 시점이 온 건 아닐까 하는 제안을 던지는 겁니다."

그는 "단순히 단편적인 미술사나 작가 중심이 아닌 글로벌 시대에 맞는 미술관의 역할을 보여주자는 게 비전"이라며 "방직 산업이 발전하며 노동자가 등장했고 식민지 역사와도 연결된 맨체스터의 장소성과 지구적인 미술사와 맞닿는 지점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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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 첫 유럽 미술관 수장… 이숙경 英 휘트워스 미술관장
아프 클린트 영화 홍보대사 방한
역사에 묻혔던 변방 女작가 소개
21C 미술 화두는 잊힌역사 발굴
배타적·천재성 좇는 미술은 안돼
유럽에 동양미 소개 크로스 오버
韓미술 대한 유럽 인식변화 한몫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장. Roger Sinek 촬영. 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가 아는 미술은 지나치게 서구적이고 남성 중심이었죠. 이걸 틀렸다고 말하기보단, 그럼 새로운 대안은 무엇인가 생각하다 보니 ‘전 지구적 미술사’를 써야겠단 생각에 이른 거죠. 경제나 다른 사회 분야에서도 글로벌이란 말을 쓰는 전환 기점이 있었는데, 미술에도 그런 시점이 온 건 아닐까 하는 제안을 던지는 겁니다.”

인류는 ‘미술’이란 이름으로 무수한 이야기를 쌓아왔다. 그러나 이를 기록한 미술사는 편협하다. 서유럽·백인·남성의 시각에서 전개돼 온 그간의 미학과 담론들은 단선적이고 배타적이다.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이야기들은 배제되고 ‘잊힌 존재’가 됐다.

21세기 글로벌 미술계 화두 중 하나는 잊힌 미술사의 발굴이다. 유럽 르네상스에서 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줄기만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피카소의 그림만이 미술의 전부가 아닌 만큼 미술사를 총체적으로 다시 쓰자는 것이다.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장은 주류 미술계에서 ‘전 지구적 미술사’를 외치며 이 흐름을 이끌고 있다. 지난 13일 자신이 홍보대사를 맡은 영화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 시사회장에서 만난 그는 “인류 문명의 산물로서 예술은 더 발굴할 게 많다”며 “배타적이고 천재적인 것만 추구하는 그런 미술 서술은 시대에 뒤처진 방식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로 활동하다 지난여름 영국 맨체스터 휘트워스 미술관장으로 자리를 옮기며 한국인 첫 유럽 미술관 수장이 된 그는 스웨덴 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를 소개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칸딘스키, 몬드리안과 함께 추상미술을 처음 선보인 선구자지만 변방의 여성 미술가란 이유로 100년 가까이 잊혔던 아프 클린트를 조명하려는 미술계의 움직임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다. 이 관장은 “아프 클린트에 대한 파장은 아직도 발굴하지 못하고, 원래 가치를 보여주지 못한 작가가 얼마나 더 많을까 하는 질문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유럽에서 활동한 이 관장은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이 발전시킨 동양의 미학을 소개하며 미술사 ‘크로스 오버’를 시도해 왔다. 최근 한국 실험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등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을 두고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제가 한몫했다고 자부한다”며 “유럽 미술관의 인식과 관점이 더 열리면서 기존의 한계를 인정하고 새로운 미술을 찾으려는 동력을 갖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휘트워스 미술관의 관장을 맡은 것도 지구적 관점에서 미술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보려는 실험적 도전이다. 그는 “단순히 단편적인 미술사나 작가 중심이 아닌 글로벌 시대에 맞는 미술관의 역할을 보여주자는 게 비전”이라며 “방직 산업이 발전하며 노동자가 등장했고 식민지 역사와도 연결된 맨체스터의 장소성과 지구적인 미술사와 맞닿는 지점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년에는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관 큐레이터로 작업을 한다. “일본관은 1950년대 처음 시작한 역사가 긴 국가관인데, 첫 외국인 큐레이터로 초대받아 감사한 마음”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갈등과 외면할 수 없는 역사적 관계가 있는데, 굳이 옆으로 제쳐 두지 않으려 한다. 굉장히 다른 역사를 가진 큐레이터와 작가가 만나 의미 있는 작업이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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