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간 봉인됐던 ‘추상화 거장’… 1000만 유럽 애호가들을 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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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한 여성 화가의 그림을 보러 무려 60만 명이 몰렸다.
그가 고안한 큼지막한 추상화 역시 여자는 작은 화면에 풍경이나 정물을 그려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했던 당시로선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살아선 여성 추상화가란 이유로, 죽어선 변변한 개인전 경력조차 없다는 이유로 그가 남긴 작품들의 전시는 미술관에서 거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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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한 여성 화가의 그림을 보러 무려 60만 명이 몰렸다. 커다란 종이에 마치 꽃 같은 기하학적인 조형미와 풍부한 색채를 바라보던 관람객들은 눈물을 터뜨렸고, 미술계에선 “이전에 본 적 없던 그림”이라는 극찬이 이어졌다. 그림들은 이듬해 런던·파리·베를린 등 유럽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1000만 명의 미술애호가들을 매료시켰다. 주인공은 바로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사진). 재밌는 점은 정작 대다수가 이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신진 화가인 줄 알았던 아프 클린트가 실은 ‘추상화 선구자’ 칸딘스키, 몬드리안보다 먼저 유럽에서 추상화를 그렸다는 사실에서 미술계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20일 개봉하는 할리나 디르슈카 감독의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은 100년간 잊힌 존재였던 아프 클린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한 번도 제대로 조명된 적 없었던 그의 예술적 위대함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간의 미술사가 얼마나 성기게 쓰였고, 은폐돼 있었는지를 고발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미술평론가 율리아 포스는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역사가 생겼다. 시장에도 없고, 보관 작품도 없는 한 여자를 중심으로”라고 말했다.
아프 클린트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백인 여성으로 왕립미술학교를 졸업했지만 미술계에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영국이나 프랑스가 아닌 변방 스웨덴의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고안한 큼지막한 추상화 역시 여자는 작은 화면에 풍경이나 정물을 그려야 한다는 인식이 지배했던 당시로선 경악스러운 일이었다. 살아선 여성 추상화가란 이유로, 죽어선 변변한 개인전 경력조차 없다는 이유로 그가 남긴 작품들의 전시는 미술관에서 거부됐다.
“사후 20년간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는 그의 유언에선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고독이 느껴진다. 다만 아프 클린트가 추상화를 발명했다는 영화의 평가에선 여전히 유럽 중심의 미술사적 사고가 느껴진다. 이숙경 영국 휘트워스 미술관장은 “추상화는 오래전 이슬람 문화권에선 회화의 기본 형태였다”며 “추상화의 선구로 아프 클린트를 말하는 건 또다시 서구적 시각을 강화하는 것이다”고 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사진=마노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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