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영웅은 추락마저 장엄하다
[골프한국] 12월 17~18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리츠 칼턴GC(파72)에서 열린 PNC챔피언십에 출전한 타이거 우즈는 '살아있는 시지프스'였다.
PGA투어 메이저대회 우승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 가족과 한 팀을 이뤄 경기를 펼치는 이 대회는 새 시즌을 앞두고 열리는 이벤트성 대회다. 그동안 큰 관심을 끌지 못하다 2020년부터 타이거 우즈가 아들 찰리 액셀 우즈(14)와 함께 출전하면서 골프 팬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찰리 우즈를 동반선수로, 딸 샘 알렉시스 우즈(16)를 캐디로 삼아 대회에 나선 우즈는 아직은 우승을 겨룰 준비가 덜 된 듯했다. 그러나 그의 복안대로 준비를 잘 해 한 달에 한 번 정도 대회에 출전한다면 승리를 추가하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즈는 지난 4월 발목 수술을 받은 뒤 재활 끝에 8개월 만인 지난달 초 특급 이벤트대회 히어로 월드 챌린지에 출전, 출전자 20명 중 18위를 차지했다. 간혹 통증을 참는 듯했으나 카트를 타지 않고 4라운드를 완주했다는 것으로 자신감을 얻었다. 전문가들도 여전한 그의 장타력과 정교함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었다.
히어로 월드 챌린지 대회에 이어 출전한 PNC챔피언십에서 우즈 부자는 최종 합계 19언더파 119타로 공동 5위에 올랐다. 독일의 베른하르트 랑거와 제이슨 부자가 25언더파 119타로 우승을 차지했고 데이비드 듀발과 브래디 부자가 2타 차로 준우승, 비제이 싱과 카스 부자가 22언더파 122타로 3위를 차지했다.
우즈 부자는 처음 참가한 2020년 7위, 2021년 준우승, 2022년 공동 8위에 올랐었다.
대회 내내 우즈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마치 찬란한 석양을 받은 얼굴처럼 밝고 환했다. 스스로 만족한 경기를 펼쳐서가 아니라 아들의 경기력에 마음을 앗긴 아버지의 미소가 넘쳤다.
아들이 몇 번의 미스샷을 내기도 했지만 2라운드 9번 홀(파4)에서 그린 주변에서 칩샷으로 버디를 잡아낸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치자 우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더없이 흐뭇한 표정으로 아들을 지켜보았다.
평소 자신의 스윙이 아닌 로리 맥길로이의 스윙을 터득하라는 우즈의 가르침대로 아들 찰리는 거의 로리 맥길로이의 복사판 같은 스윙을 보여주었다. 드라이브샷으로 350야드짜리 14번 홀(파4) 그린에 공을 떨어뜨리는 등 300야드를 넘나드는 비거리는 14세 청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우즈는 아들과 딸을 동반한 경기 그 자체에 흡족해 마지않았다. 13년 전 이혼한 전처 엘린 노르데그렌(43·스웨덴)도 대회장에 나와 아들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타이거 우즈가 다시 한번 PGA투어에서의 우승을 꿈꾸며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는 시지프스를 닮은 노역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재기보다는 아들의 경기를 옆에서 지켜보겠다는 부정(父情)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타이거 우즈는 골프대회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미디어들과 골프팬들을 흥분시킨다. 이름 없는 대회라 해도 그가 나타나면 시청률이 껑충 뛰고 미디어들의 스포트라이트가 쏠린다. 우즈와 같은 골프영웅이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알기 때문이다.
세계의 골프팬들이 우즈의 재기 몸부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영웅의 면모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서녘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처럼 '지는 해' 타이거 우즈는 아들 찰리 우즈를 통해 환생하는 꿈을 꾸는 듯하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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