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대장동 자금에 ‘이재명’ 꼬리표 붙였다 [+영상]
● 판결문에 ‘이재명 경선자금’ 적시
● 재판부 “유동규 진술 신빙성 있다”
● 이재명·김용에 불리한 증언 수용
[+영상] "나는 이재명이 버린 돌이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20년 1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출판기념회에서 남긴 말이다. 김 전 부원장은 그야말로 이 대표의 분신이었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 과정에서 김 전 부원장의 이름은 고비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이 대표가 재판에 넘겨진 것처럼 측근들도 재판을 받고 있다. 김 전 부원장을 비롯해 정진상 전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 등이 대표적이다.
김 전 부원장의 1심 판결이 가장 먼저 나왔다. 판결은 유죄. 2023년 11월 3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조병구 부장판사)는 김 전 부원장의 정치자금법 위반·뇌물 혐의 선고 공판에서 징역 5년에 벌금 7000만 원을 선고하고, 6억7000만 원 추징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김 전 부원장을 법정구속했다. 같은 재판에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은 무죄를 받았다. 정치자금과 뇌물을 마련한 남욱 변호사는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김 전 부원장이 낸 책 제목은 '김용 활용법, 세상을 바꾸는 용기'. 그가 세상을 바꿨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그의 1심 판결이 이 대표 재판에는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부원장의 1심 판결문에는 이 대표가 자주 등장한다. 148쪽 분량의 판결문에서 이 대표의 이름은 120회 등장한다.
김용 받은 6억 원은 정치자금
"피고인 김용은 이재명의 대선 경선을 위한 조직 구축, 지지세력 확보 등 대선 경선 준비와 그에 따른 정치활동을 전개함에 있어 정치자금이 필요하게 되자 유동규에게 이재명의 대선 경선을 위한 정치자금을 요구하였고, 유동규는 피고인 김용의 요구를 남욱에게 전달하였으며 남욱은 정민용(대장동 개발 참여한 민간업자)을 거쳐 유동규를 통해 피고인 김용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하기로 하였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김용은 세 차례 나눠 돈을 받았다. 2021년 5월 3일 유동규로부터 1억 원, 6월 8일 3억 원, 그리고 6월 하순경이나 7월 초순 남욱으로부터 2억 원을 받았다.
김용은 재판 내내 이 자금이 경선 자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판결문이 언급한 피고 측 주장 요지는 다음과 같다.
"유동규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 피고인이 정치자금을 교부받았다고 공소사실에 기재된 2021년 5~6월경에는 이재명의 제20대 대선 경선준비와 관련하여 광주나 전남뿐 아니라 전국단위의 조직이 이미 완성된 상태였고, 그 준비과정 역시 자원봉사자들의 자원봉사나 각출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방대한 조직을 관리하기 위한 비용은 별도로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피고인은 대선 경선과 관련하여 정치자금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재판부는 이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각 범행 시기는 대선 경선 조직 구성과 준비 등을 위하여 정치자금의 필요가 있었던 시점으로 판단된다. 20대 대선과 관련한 공식적인 예비경선 후보자 등록일인 2021년 6월 28일 이전부터 이미 '서울 영등포 국회대로 A빌딩 B호' 및 '서울 영등포구 국회대로 C빌딩 D호' 등은 대선 경선준비를 위한 사무실로 이용되어 왔고 위 사무실에서 대선 경선준비를 위한 회의 등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위 사무실의 임차와 사용 등에는 필수적으로 보증금이나 월세, 사무실 유지비용 등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피고인은 임차관계나 그 비용은 정확히 모른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으나 위 사무실들이 아무런 대가 없이 그 소유자나 임차인에 의해 무료로 제공되었다고 볼 정황은 보이지 아니하며, 경선준비 등 정치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상당한 기간 대가 없이 무상으로 제공된 경우라면 정치자금법에 의하지 아니한 방법으로 재산상 이익이 기부된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
자금을 받기 전에 이미 두 곳의 선거 사무실을 운영 중이었으니, 정치자금이 필요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자원봉사자가 대부분이라 인력 비용이 들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피고인으로부터 압수한 USB 내부 문서파일 중 '경선 대응 전략 구축 필요'라는 제목의 파일에는 '원활한 경선 준비를 위한 경선준비팀 필요'라는 내용이 있다. 이 내용이 일반론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관련자들은 서로 경선준비를 위해서는 비용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기타 경선 대비 문건을 보아도 지속적으로 권역별 관리나 홍보를 담당하는 등의 상근 조직담당자들이 있는 것을 전제로 하는 내용이 다수여서 자발적 자원봉사만으로는 경선 준비를 하였다고 보기 어렵고, 인원 및 비용이 필수적으로 소요되는 상황으로 볼 수밖에 없다."
대장동 결정권자는 김용 아닌 이재명
나머지 7000만 원은 김용이 남욱 등 대장동 민간개발업자에게 2013년경 받은 돈이다. 유동규가 남욱 측에게서 돈을 받아 김용에게 전달했다. 유동규는 2023년 7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이 돈의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위례 및 대장동) 개발 준비를 하며 돈이 좀 필요했다. 사람 만나서 쓰는 술값만 해도 부담이었다. 정진상 전 실장과 10억 원 정도 자금을 만들어 운영비로 쓰기로 했는데, 정 전 실장이 그 중 3억 원가량을 남욱 변호사에게 받아오라고 하더라."
남욱과 유동규의 법정 증언에서는 더 자세히 묘사된다. 남욱은 김용 정치자금법 및 뇌물 혐의 관련 재판에 출석,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2013년 3월경 유동규가 처음 돈 이야기를 꺼내면서 3억 원을 요구했다. 같은 해 4월 2일 서울 강남구 선릉역 부근 유흥주점에서 현금 7000만 원을 건넸다. 유동규가 '너(남욱) 믿고 본인(유동규)도 약속을 했는데 이 약속이 깨지면 내 입장이 뭐가 되냐'며 화를 내서 돈이 상납된다고 알고 있었다."
유동규는 이 돈을 김용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유동규도 해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용이 살고 있는) 성남 분당구 이매동 소재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만나 (7000만 원이 든) 쇼핑백을 그대로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김용 측은 혐의를 부인했다. 판결문에서는 김용 측 주장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피고인은 성남시의 도시개발 정책결정에 직접 영향을 미칠 지위에 있지 않았으므로 돈을 받을 이유가 없다. 이 사건 각 금품과 관련하여 유동규가 피고인과 무관하게 남욱 등을 상대로 마치 정치자금이나 뇌물을 피고인에게 전달할 것처럼 기망하여 돈을 편취한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은 유동규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는 취지로 다투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유동규의 금융 및 부동산 자산의 변동추이 등을 보더라도 남욱에게 받은 금품을 모두 가져간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며 유동규의 증언대로 이 돈이 김용 측에 갔을 것이라 봤다.
"돈을 받을 이유가 없다"는 김용의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뇌물죄에 있어서 직무라 함은 공무원이 법령상 관장하는 직무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직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행위 또는 관례상이나 사실상 소관하는 직무행위 및 결정권자(이재명)를 보좌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직무행위도 포함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범행 배경인 대장동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가 이재명이라는 사실도 시사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뇌물을 수수하기는 하였으나, 그 전후 의정활동에서 특별히 민간업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적극적 행동을 하였다기보다는 소속 정당의 당론을 따르거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며 "각종 개발사업의 인허가와 관련된 직접적인 업무는 공사와 성남시에서 결정하여 추진한 것이어서 그 과정에 직접 권한을 가지고 개입하거나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대장동 사업 관련 최종 결정권자는 당시 성남시장이었던 이재명"이라는 검찰 주장을 인정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거짓말쟁이는 유동규가 아니라 김용
"(유동규는 돈을) 건네주기까지의 시일의 간격 등에 관해서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범행의 주요 부분과 시간대 및 범행현장과 당시 상황에 관해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기타 법정진술 및 검찰조사 시 진술한 내용과 다소 차이가 있는 부분만으로 범행과 관련한 진술의 주요 부분에 일관성이 없다거나 객관적 자료와 배치되어 신빙성이 없다고 볼 정도는 아니며, 1년 이상 지난 일에 대하여 기억을 더듬어 진술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본질적 차이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김용의 증언이 사실과 다름을 지적했다. 2021년 5월 3일 유동규는 검찰 조사에서 "해가 내리쬐는 늦은 오후 무렵 경기도 분당구 소재 사무실에서 김용에게 1억 원을 줬다"고 진술했다. 유동규, 김용의 동선을 고려했을 때 두 사람이 만났을 가능성이 있는 시간은 당일 오후 3시 50분~4시 30분 사이, 그리고 오후 6시 이후다.
김용 측 변호인단은 햇살이 내리쬐는 시간이었다고 증언했으니 6시 이후는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용은 당일 오후 3시에 차를 타고 수원컨벤션센터를 방문, 4시 50분까지 그곳에서 업무 협의를 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일 컨벤션센터 주차 기록을 확인한 결과 김용 차의 출입 기록이 없었다.
유동규 증언의 세부 내용을 문제 삼는 일은 다른 재판에서도 있었다. 2023년 11월 17일 이재명 관련 재판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재명 측 변호인단은 증인으로 나선 유동규를 검찰이 심문하는 과정에서 "검찰이 질문하지도 않은 배경까지 설명한다" "증언 내용이 사실과 일부 다르다"며 수차례 이의를 제기했다. 당시 판사는 "세부 내용은 오랜 시간이 지난 일이니 다를 수 있다"며 "다른 재판이나 검찰 조사와 일관된 증언을 하고 있으니 지켜보자"며 변호사 측 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동규는 이날 재판 직후 기자와 통화하면서 "(변호인단이) 자꾸 사실과 다르다고 하니까 길게 배경을 설명하게 된 것"이라며 "(변호인단이 계속 증언 세부 내용을 문제 삼으니) 내 증언이 오염되지 않으려면 사건의 배경까지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방자치 민주주의 우롱한 범죄
"유동규에 대한 추가적 수사나 궁박한 처지를 이용한 검사의 협박이나 회유 등이 행해졌다고 볼만한 사정은 보이지 아니하므로 관련 진술의 증거능력 등이 곧바로 부정된다고 볼 수는 없다."
대장동 의혹 수사 및 재판의 결과를 가를 핵심 변수로 평가되는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도 일부 인정됐다. 이 녹취록은 대장동 핵심 인물인 정영학(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민간업자·회계사)이 김만배, 남욱, 유동규 등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것이다. 재판부는 "김만배는 자신이 (녹취록에서) 했던 다수의 발언이 허언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영학의 녹음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한 발언이고 장기간에 걸쳐 같은 취지와 맥락 아래 발언이 반복됐다"며 "다소 과장이나 거짓이 섞여 있을지언정, 단순히 허언이라고 치부할 수는 없어 보인다"고 판단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판결문만 보면 더 이상 변호인단이 '검찰이 유동규를 회유해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지는 못할 것"이라며 "이재명, 정진상, 김만배 등 대장동 및 성남시 관계자들 재판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도 다른 재판과의 연관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개요를 제외하고 판결문의 첫째 장 제목이 '대장동 민간업자등과의 관계 형성 경위'다. 이 대목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대장동 개발을 추진하던 남욱이나 김만배 등 민간업자들은 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성남시에서 추진하는 대장동 등 개발사업에 지속적으로 관여하기 위해서는 이재명이 성남시장에 재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SNS에 이재명에 대한 우호적인 글을 남기거나 평소 아는 기자를 통해 선거 직전 상대 후보 측에 관한 부정적인 보도를 부탁하는 등 이재명 성남시장의 재선을 위해 노력하였다. (…) 이러한 민간업자들과 지방자치단체 개발사업 인허가 관련자들 사이의 뿌리 깊은 부패의 고리는 지방자치 민주주의를 우롱하고 주민의 이익과 지방행정의 공공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병폐이다."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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