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로 타인 통제’…그러지 말라고 예수가 이 땅에 왔다
[세상읽기]
[세상읽기] 한승훈│한국학중앙연구원 종교학전공 교수
2019년 청와대 앞에서 열린 태극기집회에서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전광훈의 발언이 논란이 된 일이 있다. 이것은 극우 종교인의 나르시시즘이 폭주한 신성모독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2천년 전 종교지도자들이 자신들에게 까분다며 신을 죽인 사례가 있다. 후대 반유대주의에서는 예수의 십자가형을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죽인 사건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예수 자신도 유대 전통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를 잡아끌고 가 로마제국의 손을 빌려 반역죄로 처형되도록 한 것은 자기 종교의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이었다.
종교가 신을 죽인다는 이야기는 모순 혹은 역설처럼 보이지만 현실 종교의 어두운 면을 잘 보여주는 전형이다. 많은 종교 경전에는 인간 생활의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규정하는 법률 형태의 교리들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 대부분은 특정한 시대, 특정한 집단 내에서 적용되던 것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종교들은 그 가운데 일부를 취사선택하고, 때로는 추가하는 방식으로 끊임없이 교리를 수정한다. 그래서 신분제나 성차별을 정당화하는 전통적 교리들은 오늘날 상당 부분 유명무실해졌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레위기에서 “가증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삼겹살과 오징어무침과 선지해장국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문제는 어떤 교리를 지속시키고, 만들고, 강조할 것인지 결정하는 권한이 소수 종교지도자에게 독점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권위를 강화하고 집단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사회적 조건에 따라 변화하기 마련인 몇몇 교리 조항을 절대화, 우상화한다. 그것이 경전이나 교조의 가르침과 충돌, 모순되는 지점에서도 교권주의자들은 전통적인 교리 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예수는 자신들이 만든 교리로 타인을 지배, 통제하기 위해 사람을 사랑하라는 신의 절대적인 명령을 저버리는 이들을 준엄히 비판하였다.
퀴어문화축제에서 성소수자들을 위한 축복기도를 했다는 죄명으로 종교재판에 넘겨진 이동환 목사에게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출교 결정이 내려졌다. 이것은 지난 20여년간 이어져온 한국 개신교의 ‘반동성애 총력전’의 일환이기도 하다. 같은 시기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는 동성결혼 합법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성소수자의 성직 임명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교파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에서 이런 이슈들은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몇몇 주요 교단은 “동성애를 지지, 옹호”하는 것만으로도 목회자나 신학교 교직원이 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헌법을 신설하였다. 목사 후보생들에게 반동성애적 입장의 논문을 제출하게 하는 방식의 사상 검증을 시도하거나,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지지하는 신학생들을 징계한 사례도 있다.
성적 지향과 성 정체성이라는 개념은 그리스도교가 형성된 고대, 중세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하나의 종교가 총동원되어 ‘반동성애’를 자신들의 사활을 건 핵심적인 가치처럼 다루고 있다. 한국 개신교는 신자 단속에 그치지 않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줄이려는 사회 일반의 노력에 대해서까지 극렬히 반발하고 있다. 성소수자의 법적 권리와 사회적 인정이 가장 확대되어 있는 곳이 미국과 서유럽 등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국가들이고, 개신교인 활동가들도 그런 움직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분명 예외적인 현상이다. 20세기 내내 분단국가의 반공주의에 기생하여 강력한 영향력을 누려온 한국 개신교는 이 ‘새로운 공산당’을 먹잇감 삼아 내부 결속을 다지고 이탈자들에게 잔혹한 처벌을 가하고 있다.
네권의 복음서가 증언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예수는 종교 권력이 죄인으로 규정한 이들에게 편견을 갖지 않았다. 예수가 신 자신이라고 믿는다면, 신은 그런 하찮고 시시한 교리 따위에는 관심 없는 분인 것 같다. 세상에는 특정한 사람들을 죄인이라 부르며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리려 노력하는 종교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그런 방식으로 종교를 팔고 있는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간판으로 달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의 삶과 죽음은 종교가 아무리 누군가에 대한 배제와 증오를 선동하더라도 인간을 그 자체로 사랑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해준다. 다가오는 성탄을 맞아 박해 속에서도 예수의 길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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