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에 관대한 나라[오늘을 생각한다]

2023. 12. 1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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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이 연일 화제다. 12·12 군사반란의 면면에서 신군부에 맞서 스러져 간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관객의 마음에 울림을 준다. 전두환과 신군부가 군인의 본분을 잊고 쿠데타를 일으키고, 집권하고, 권력의 아귀다툼을 벌이던 암울한 시대의 뒤편엔 자기 몫을 다하기 위해 불행한 삶을 감내한 이들의 눈물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피눈물을 기억하는 이는 드물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명을 다해 세상을 떠났다. 따르던 이들도 여전히 떵떵거리며 산다. 영화에 나오는 전두광 역의 대사 중에 12·12 군사반란의 결과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있다.

“혁명의 밤은 짧지만 영광의 밤은 오래 갈 겁니다.”

전두환과 노태우는 연이어 12년을 권좌에 앉아 있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에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반란수괴들을 기소유예 처분했다. 특별법이 제정돼 재수사가 이뤄져 각기 구속 수감됐지만 2년여 만에 사면됐다. 전직 대통령 예우가 취소되긴 했으나 여전히 이들은 무궁화대훈장 수훈자로 남아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 지칭하는 이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전두환을 위한 추모식을 열고, 합천에는 그의 호를 딴 일해공원이 버젓이 남아 있다. 어두운 영광의 밤이 이토록 길고 오랜 건 이 나라가 쿠데타에 관대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탄핵 촛불 당시 12·12 군사반란과 비슷한 일을 꾸미던 이들이 있었다.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을 위시한 계엄령 문건 관련자들이다. 이들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둔 2017년 2월 기무사에 TF를 구성하고 계엄령 선포를 전제로 한 수십 페이지의 작전 계획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 작성 과정에서 12·12 군사반란 당시에 쓰였던 계엄선포문 등의 자료를 갖다 놓고 참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실행에 옮겨지진 않았지만, 국회와 통신·언론을 장악하고 수사·사법 권한을 손에 넣는 등 40여 년 전 전두환이 세웠던 계획을 쏙 빼닮은 문건은 그 자체로 전 국민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문건 작성의 주범인 조현천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미국으로 도주했다. 수사기관이 소환하자 아예 잠적해 버렸다. 그렇게 장장 5년을 도주하며 지명수배범이 됐다. 그사이 계엄문건 작성에 관여한 부하들만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러던 조현천이 지난 3월, 돌연 귀국했다. 검찰은 그를 구속 수감하고 중지돼 있던 계엄문건 수사를 이어갔지만 별다른 결론을 내지 않고 있다. 별건 수사로 알게 된 정치개입 혐의로만 기소했을 뿐이다. 내란음모, 군사반란음모죄 혐의는 계속 뭉개고 있다. 그사이 법원은 구속돼 있던 지명수배범 조현천의 보석 신청을 인용해 자유의 몸으로 풀어줬다. 탱크로 시민들을 밀어버리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법원과 검찰 눈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모양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검찰이니 실패한 쿠데타는 당연히 처벌하지 않으려는 걸까.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은 쿠데타에 관대하다. 죗값을 치러야 할 이들이 빠져나간 틈으로 누군가에겐 영광으로 수 놓일, 그러나 누군가에겐 끝없이 어두울 밤이 다시 스며들지도 모른다.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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