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즈업 필름]10년을 지탱한 그 연기…'노량:죽음의 바다'
[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영화 '노량:죽음의 바다'(12월20일 공개)는 배우 김윤석에게 크게 의지한다.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프로젝트 마지막 영화인 이 작품은 전작의 방식을 답습한다. 러닝 타임을 두 구간으로 나눠 전반부에서 해전(海戰)으로 가기까지 기반을 쌓고, 후반부를 대규모 전투 시퀀스로 채워넣는다. 이야기가 허술하고 캐릭터가 빈약한 건 이 시리즈의 좋지 않은 공통점이었고, 김 감독은 이 치명적 단점을 이순신을 연기한 배우와 대규모 액션 장면으로 돌파해왔다. 다만 '노량:죽음의 바다'엔 '명량' '한산'과 달리 이순신의 죽음을 담아내야 하는 특별한 임무가 있다. 이 핵심 과제를 해결해주는 게 김윤석이다. 이 작품의 조악한 각본만으로는 관객에게 이순신의 마음을 설득하지 못하겠지만, 김윤석은 각본을 넘어선 연기로 기어코 이순신의 정신을 관객이 느끼게 한다.
약 100분 간 벌어지는 바다 위 전투 장면은 세 번째 반복되는데도 여전히 강렬하다. '노량:죽음의 바다'는 해상 전투의 스펙터클 뿐만 아니라 수많은 전투를 거치며 어떤 경지를 넘어선 지혜를 갖게 된 이순신의 지략을 보여주는 데 공을 들인다. 영화는 수 차례에 걸쳐 이순인이 왜 장수 시마즈, 명 장수 진린을 뛰어 넘는 전략·전술을 갖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이순신과 용맹한 조선 수군의 활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100분은 견딜 만하다. 그러나 이 세 번째 이순신 영화의 액션이 이전에 볼 수 없던 창의적인 것이라거나 시각적으로 충격을 준다고 할 순 없다. 지난해 여름에 나온 '한산:용의 출현'과 개봉 간격이 넓지 않아 한계효용이 체감하기도 한다.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에 익숙한 일부 관객에겐 '노량:죽음의 바다'의 액션 시퀀스들이 썩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시리즈 최대 약점이던 스토리는 이번에도 얄팍하다. '한산:용의 출현'이 조선과 왜 사이에서 벌어지는 첩보전을 보여주려 했다면, '노량:죽음의 바다'에선 조선·왜에 더해 명을 끌어들여 7년 간 이어져온 전쟁의 마지막을 좀 더 복잡한 외교·정치 함수로 내보이려 한다. 여기에 이순신의 삼남(三男) 이면이 아산에서 왜군에 살해당한 내용까지 더한다. 아들을 잃은 이순신의 마음을 수 년 간 왜군에 도륙당한 조선인의 심정과 같은 선상에 놓고 반드시 끝을 봐야 하는 싸움이라는 명분을 노량 해전에 부여하려는 것처럼 보이나 파편화 된 에피소드가 이어질 뿐 이 이야기 안으로 관객을 온전히 끌어들이지 못한다. 성긴 스토리가 1시간 가량 이어지다보니 일부 관객에겐 이 시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고, 이야기 자체에서 별다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김윤석은 이런 '노량:죽음의 바다'를 지탱해준다. 김윤석의 이순신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차가우면서 동시에 뜨겁고, 건조하면서도 절절하다. 전략을 세우고 전투에 임할 때 김윤석의 이순신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아 그 속을 알 수가 없는 반면 그 전투의 역사적 필요불가결함에 관해 역설할 땐 들끓는 속을 드러내 보인다. 동료와 부하들 앞에선 한 치도 흔들리지 않는 이순신이지만, 죽은 아들 앞에서 그는 애달픈 부정(父情)에 속절 없이 무너지고 만다. 김윤석은 시종일관 무표정하지만, 공인으로서 이순신과 사인으로서 이순신을 미묘한 차이로 표현해내며 관객 마음을 흔든다.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는 대체로 딱딱하고 건조한 기록 속에서 종종 격한 감정을 드러낸 글이었다. '노량:죽음의 바다'에서 김윤석 연기는 마치 <난중일기>를 체화한 듯하다.
이 작품 뿐만 아니라 이 시리즈 통틀어 가장 결정적이라고 해도 무방한 장면은 이순신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다. 이 시퀀스는 김한민 감독의 연출력과 김윤석의 연기력이 더해져 흔하지 않은 품위를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역시나 돋보이는 건 김윤석의 이순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개다.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는 극적인 대사로 이 역사를 알고 있는 대부분 관객에겐 '노량:죽음의 바다'의 최후 시퀀스가 자칫 예상과 달리 단조로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김윤석은 이번에도 표정이 거의 없는 얼굴에 조선이 왜에 7년 간 당한 수모를 말로 다하지 못할 감정으로 담아내는 연기로 관객을 설득한다. 이같은 김윤석의 연기와 함께 이 영화가 보여주는 이순신의 마지막 모습은 흔히 성웅(聖雄)으로 표현하는 이순신과 잘 들어맞아 보인다.
2014년 '명량'을 시작으로 지난해 '한산:용의 출현'을 거쳐 '노량:죽음의 바다'에 이른 김한민 감독 이순신 프로젝트가 10년만에 끝난다. 이 작업은 한국영화계에 새 이정표를 여럿 세웠다. '명량'은 1761만명을 끌어 모으며 다시 나오기 힘든 흥행 기록을 세웠고 '한산:용의 출현'은 코로나 사태 후유증 속에서 726만명을 불러 모으는 저력을 보여줬다. 두 영화 합계 약 2480만명. '노량:죽음의 바다'가 일정 수준 이상 흥행하면 세 편 합계 3000만 관객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특정 인물을 세 편의 영화에 담아내는 작업도 다시 나오기 힘들 것이다. 김한민 감독은 이순신 영화를 만든 건 "운명"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이런 김한민 감독이 앞으로 어떤 작품을 만들게 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그는 '한산:용의 출현' 인터뷰 때 이순신 드라마를 기획 중이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jb@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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