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2기 출범 쇄신은 어디에?
최근 두 달 사이 윤석열 대통령과 용산 대통령실에는 ‘대형 이벤트’가 두 개 있었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2030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이다. 전혀 다른 성격의 두 이벤트 속에는 대통령실의 역량과 정략이 짙게 묻어 있었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주도했기 때문이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참패했다. 엑스포 유치는 불발됐다. 결과에 따른 후폭풍과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다. 화살은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을 향했다.
국민의힘은 당초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을 계획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8월 광복절 특별사면 직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 5월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로 직을 내려놨던 김태우 전 강서구청장이 3개월 만에 사면 복권됐다. 김 전 구청장은 곧바로 재출마를 시사했고 대통령실은 침묵했다. 무공천 방침이던 국민의힘은 당의 후보로 그를 내세웠다. 구청장 하나의 선거에 대통령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전국 선거로 확대됐다. 결과는 17%포인트 격차 패배였다(〈시사IN〉 제840호 ‘총선 모의고사 어떻게 풀었나’ 기사 참조).
2030 엑스포 유치를 둘러싼 ‘대국민 희망고문’ 논란에도 대통령실이 있었다. 올해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순방 과정에서 엑스포 유치를 위한 활동을 특히 강조했다. 9월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앞서 60개 이상 정상회담을 해온 것과 관련해 “그런 정상은 100년간 외교사에 없을 것이다”라고 치켜세우는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의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관가와 기업 일각에서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던 보수적 전망과 대패 우려가 대통령실을 거치면 ‘유치 가능성이 있다’는 메시지로 바뀌었다. 투표 결과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119표, 부산 29표로 대패였다.
실패가 잇따르면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여권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제 제기의 핵심은 대통령실의 극단적 전략이었다. 엑스포 유치 총력전은 ‘국익’을 위한 일이고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총선을 앞두고 수도권 민심이 드러나는 만큼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승부였다는 점을 고려해도, 실패할 경우 정치적 부담이 고스란히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로 향하도록 스스로 판을 키워 몰아넣었다는 게 골자다.
대통령실의 정보와 보고 체계에 대한 지적도 뒤따랐다. 이미 새만금 잼버리의 총체적 준비 부실을 파악하지 못하다가 뒤늦게 수습에 나서면서 드러난 문제가 이번 잇따른 실패로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엑스포 유치전 판세를 잘못 읽었다면 정보 역량이 부실한 것이고, 알고도 모른 체했거나 강행했다면 보고 체계에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이번 대통령실 인사와 개편에 관심이 쏠린 건 이 때문이다. 계기는 내년 총선에 참모진이 대거 출마하면서 생긴 공백이지만, 교체 규모가 커서 사실상 ‘용산 2기’ 체제가 출범하게 되는 데다 앞선 실패에 대한 후속 조치가 필요해진 만큼 인적 쇄신의 모양새를 띠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통령실 주도 이벤트의 잇따른 실패
11월30일,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조직을 개편했다. 핵심은 ‘정책실’ 신설이다. 기존 2실(비서실·국가안보실) 6수석 체제에서 3실(비서실·국가안보실·정책실) 6수석 체제로 몸집을 키웠다. 앞서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무와 정책을 모두 총괄해왔다. 앞으로는 신설된 정책실이 김대기 비서실장 산하에 있던 경제수석실과 사회수석실을 관장하면서 정책 업무를 전담한다. 국정기획수석 자리가 없어지고, 그 밑에 있던 국정기획·국정과제·정책조정·국정홍보·국정메시지비서관실이 정책실장 직속으로 이동했다. 연말 또는 내년 초 신설되는 과학기술수석실도 정책실 아래에 배치된다. 각 분야 정책 기능까지 정책실로 일원화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김대기 비서실장은 정무, 인사, 홍보 분야에 집중한다.
조직 개편과 함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급 전원을 교체하는 인사도 단행됐다. 신임 정무수석은 한오섭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이, 시민사회수석은 황상무 전 KBS 앵커, 홍보수석은 이도운 대변인이 맡았다. 경제수석은 박춘섭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사회수석엔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임명됐다.
이번 인사와 조직 개편 모두 쇄신과 거리가 멀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한과 역할이 큰 정책실장 자리를 내부 승진으로 채웠다.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이 임명됐다. 지난해 8월 국정기획수석에 임명되며 대통령실에 합류한 이관섭 실장은 국정 기획과 국정 과제 조정, 메시지와 공보 등의 전체적 조율을 맡아오면서 관가에서 이미 ‘왕수석’으로 통하고 있었다. 사실상 같은 인물이 그간 하던 일의 권한을 키워 이어나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이 실장의 승진 임명은 대통령실의 정부 부처 장악력을 키우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수석보다 상위 직급이 된 이 실장을 통해 대통령실이 정부 부처 등에 대한 ‘그립’을 더욱 세게 쥘 것이란 관측이다. 다만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초기 “장관에게 권한을 위임하겠다”라며 내각 중심 국정 운영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일부 부처가 발표한 정책을 대통령실이 뒤집었다. 혼선이 생기고 장관들의 힘이 빠졌다. 대통령실 소속 참모를 부처 차관으로 임명하는 등 부처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시도를 꾸준히 해왔지만, 교육·노동·연금개혁 이른바 3대 개혁 등 국정 과제는 진전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새만금 잼버리 사태와 엑스포 유치 불발의 사례에서 드러났듯, 진짜 문제는 부처 장악력에 있지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이관섭 실장은 지난해 10월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보낸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아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이관섭 실장이 받은 문자는 대통령실과 독립기관인 감사원이 유착관계라는 의혹을 받았다. 부처 장악 측면이든 쇄신 측면이든 이관섭 실장 임명은 모두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이던 한오섭 정무수석도 내부 승진이다. 한 수석에게 정무수석을 맡긴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 수석은 과거 뉴라이트전국연합 기획실장을 맡아 뉴라이트 운동을 주도했다. 정치권은 육사 내 홍범도 흉상 철거 등 윤석열 정부 뉴라이트 행보의 배경으로 한 수석을 비롯한 대통령실 내부 뉴라이트 인사들을 지목한다. 인사는 메시지인 만큼, 윤 대통령이 한 수석 임명으로 기존 방침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신호를 준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쇄신 필요했던 대통령실
한 수석은 정무수석으로 드물게 의정 활동 경험 없이 막후에서 활동한 ‘0선’ 수석이다. 역대 정부 정무수석은 주로 중진 국회의원이 맡아왔다.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힌 여야 사이 조율이 필요해서다. 이 때문에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야당과 협치가 전무한 상황에서 한 수석이 임명된 데 대해 우려가 나온다. 황상무 시민사회수석과 이도운 홍보수석은 언론인 출신이다. 편향적인 언론관 논란이 여러 차례 제기됐다.
경제학계 안팎에서는 박춘섭 경제수석 임명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박 수석은 대통령실 합류 직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었다. 그동안 박 수석과 함께해온 다른 금통위원 판단에 대통령실 입김이 들어가는 등 한국은행의 독립성을 직간접으로 훼손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고금리·가계부채 문제와 직결되는 한국은행의 결정은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어 이같은 우려에 힘이 실린다.
박춘섭 수석은 12월1일 이임식에서 “금리는 한은에 맡긴다”라면서도 “금리를 내릴 기회가 있었을 텐데 동결만 하다 간다. 어제도 용산에서 동결만 하다 왔다는 얘기를 들었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을 떠나면서 대통령실 의사를 간접적으로 전한 셈이다. 현직 금통위원이 경제수석으로 직행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 수석은 행정고시 출신(31회)이지만 사법고시 공부도 했는데, 이때 윤 대통령과 알고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 참모진 개편 직후 개각을 단행했다. 현직 장관과 차관들이 출마하면서 이뤄진 총선용이다. 12월4일 1차 장관 인선은 기획재정부·농림축산식품부·국토교통부·해양수산부·중소벤처기업부·국가보훈부 등 경제 관련 부처 중심으로 이뤄졌다. 수직적 체계에 익숙한 관료 출신 인선이 도드라졌다. 대통령실 인사와 마찬가지로 근본적 인적 쇄신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상현 기자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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