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연이틀 미사일 무력시위…‘안보 딜레마’ 탈출구 안 보인다

길윤형 2023. 12. 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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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핵실험·미사일 발사]

북한이 17∼18일 연이틀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이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쏘아 올린 가운데 일본 도쿄의 한 시민이 관련 뉴스가 나오는 텔레비전 화면 앞을 지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한·미가 북한의 핵위협에 더 강력히 대응할수록 북한도 이에 맞서 대결 수위를 높이는 ‘강 대 강’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처럼 한·미의 억지 시도가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치명적 오판을 저지르면 한반도 전체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북한은 한·미가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핵협의그룹(NCG) 2차 회의를 통해 앞으로 진행되는 양국 연합훈련에 ‘핵작전 시나리오’를 포함하는 등 획기적인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힌 직후 한·미·일 3개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대담한 도발에 나섰다. 17일 밤 평양 일대에서 동해 쪽으로 사거리 570㎞에 이르는 단거리 탄도미사일에 이어, 18일 오전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추정되는 미사일을 쏘아 올린 것이다. 미야케 신고 일본 방위성 정무관은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이 미사일이 73분 동안 비행했으며 최고 고도는 6000㎞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사정거리가 1만5000㎞ 이상일 수 있다. 이 경우 미국 전역이 사정권 아래 포함된다”고 말했다. 한·미가 북핵 위협에 맞서 더 일체화된 대응을 하겠다고 선언하자, 17일 밤 단거리 미사일로 한국을 견제한 뒤, 10시간 뒤인 18일 아침 태평양 건너 미국을 향해 ‘워싱턴이나 뉴욕을 내주고도 서울을 지키겠는가’라고 물은 셈이다.

북한은 17일 밤 담화를 통해 자신들의 전략적 의도를 비교적 솔직히 공개했다. 북한 국방성 대변인은 현재 한·미의 대응을 자신들에 대한 “핵무기 사용을 기정사실화하고 그 실행을 위한 작전 절차를 실전 분위기 속에서 검토하려는 노골적인 핵대결 선언”이라고 규정하며 “적대 세력들의 그 어떤 무력 사용 기도도 선제적이고 괴멸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핵추진잠수함(SSN) 미주리함의 17일 부산 입항 등 “(미)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을 한층 증진”시킨다는 지난 4월 워싱턴 선언을 문제 삼으며 “이런 위태한 상황은 우리 무력으로 하여금 보다 공세적 대응 방식을 택해야 할 절박성을 더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이 △미 핵잠수함의 부산 기항(7월·12월) △미 전략폭격기 한반도 상륙(10월)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미니트맨3 시험발사 참관(11월) 등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를 위한 움직임에 나설수록 자신들도 계속 공세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의 전략자산 투입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이전의 ‘수세적’ 모습에서 180도 달라진 것은 지난해 9월 핵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열어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무력 정책에 대하여’란 이름의 ‘핵 교리’를 법제화한 뒤다. 그 직후인 지난해 9월23일 미 항모 로널드 레이건이 한-미 연합 해상훈련을 위해 부산에 입항하자 북한은 25일부터 10월1일까지 네번이나 탄도미사일을 쐈다. 나아가 10월4일엔 8개월 만에 4600㎞를 날아간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했다. 지난 7월 전략핵잠수함(SSBN)인 미국 켄터키함이 42년 만에 부산항에 입항했을 때도 다음날인 19일 새벽 순안 일대에서 동해 쪽으로 단거리 미사일을 쏘아 동해에 떨어뜨렸다. 미사일의 비행 거리는 순안에서 부산까지 거리와 정확히 일치하는 550㎞였다. 미국의 잠수함을 직접 노리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은 것이다.

결국, 북핵 위협에 대응하려 한·미가 협력을 강화하자 북한은 더 공세적으로 대응하며 남북 모두가 이전보다 더 큰 안보 위협에 짓눌리게 된 모습이다. 한반도 전체가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한 나라가 자신의 안보 강화를 위해 군사력을 늘리면 불안해진 상대도 이에 대응하면서 결과적으로 모두의 안보가 취약해지는 역설적 현상)에 빠진 셈이지만, 북-미, 남북 간 대화의 채널이 모두 닫혀 있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길윤형 기자, 도쿄/김소연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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