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타타타 울린 심장" 여전히 두근…뉴진스 '디토' 공개 1주년
연말 각종 음악시상식서 '올해의 노래' 선정
"창작자들, 다양한 '음악적 실험' 가능하게 한 공간 확보"
"신기루 같은 작은 추억을 촉발해 폭죽처럼 터트리는 힘"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라-타-타-타(Ra-ta-ta-ta) 울린 심장"
신드롬 걸그룹 '뉴진스(NewJeans)'가 울린 심장이 여전히 두근거리고 있다. 19일 공개 1주년을 맞이한 뉴진스의 첫 싱글 '오엠지(OMG)' 선공개곡 '디토(ditto)'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1위곡은 있지만 히트곡이 없던 시대에 유행가(流行歌)가 됐고, 특히 연말연시를 책임질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해나가고 있다.
올해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 '톱100' 차트 역대 최장기간 1위를 차지한 '디토'는 '멜론 뮤직 어워드 2023'의 '올해의 베스트송', '2023 마마(MAMA) 어워즈'의 '올해의 노래', '2023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AAA')의 '올해의 노래' 등 최근 주요 연말 음악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쓸었다. '디토'는 여전히 멜론 톱100에서 20위권을 오가고 있다. 심지어 일본작곡가협회에서 주최하는 전통과 권위의 음악시상식으로, 오는 30일 일본 TBS를 통해 생중계되는 '일본 레코드대상'에선 대상 후보인 '우수 작품상' 10개 작품 중 하나로 선정됐다.
'디토'는 미국 볼티모어 클럽 댄스 뮤직 장르를 재해석했다. 미국 DJ 겸 프로듀서 로드 리(Rod Lee)의 '댄스 마이 페인 어웨이(Dance My Pain Away)' 등으로 대표되는 볼티모어 댄스 뮤직은 터프한 볼티모어 지역에서 생겨난 특유의 아련함과 애틋한 두근거림이 있다. 이런 특징으로 '디토'는 지난해와 올해 음악계 흐름이던 미드템포·칠링 댄스곡의 선두주자가 됐다. 프로듀서들 중 가장 좋은 음악을 많이 찾아 듣는 것으로 알려진 민희진 어도어(ADOR) 대표의 선구안이 빛을 발한 대표적인 곡이다.
'하이프 보이'와 '어텐션' 등이 실린 뉴진스의 데뷔 EP '뉴 진스'에 대거 힘을 실은 DJ 겸 프로듀서 이오공(250)이 속한 레이블 '비스츠앤네이티브스'(Beasts And Natives Alike·BANA·바나)에게 특화된 장르이기도 하다. 역시 이오공과 '뉴 진스'에 함께 힘을 실었던 스웨덴 작곡가 일바 딤버그(Ylva Dimberg)가 '디토'에도 참여했다.
아련함과 상실을 표현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싱어송라이터 검정치마·우효가 '디토' 작사에 힘을 보탰다. 뉴진스 멤버 민지도 작사에 힘을 실었다. '디토' 뮤직비디오 속에서 희수에게 전화를 거는 친구가 민지라는 점이 연관성을 만들어낸다
지난해 초 이오공이 명반 '뽕'을 내놨을 당시 그는 볼티모어 지역에서 생겨난 댄스음악의 정서에 대해 톺아봤다. "위험하게 사는 사람들의 댄스음악"이라는 것에 끌렸다는 이오공은 '댄스 마이 페인 어웨이'에 대해 제목 그대로 '나의 고통을 춤으로 날려버리는', 우리나라 시(詩)로 치면 (조지훈의) '승무' 같은 정서라고 했다.
슬프지만 슬픔을 붙잡고 울고 있기 보다 뭐라도 해야 하는, 털어내기 위해서 추는 춤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팬덤 버니즈와 독립적인 관계를 은유한 '디토' 뮤직비디오도 그런 정서를 가지고 있다. "라-타-타-타" 울리는 심장을 가지고 불안하지만 그럼에도 나아가야 하는 우리들 삶의 아련함이 배어 있다.
영화, 광고 스튜디오 돌고래유괴단의 신우석 감독이 참여해 1, 2부로 연결한 '디토' 뮤직비디오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감성 영화를 즐겼을 이들이 좋아했을 일본 감독 이와이 슌지의 영화 느낌이 가득하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 등은 '러브 레터'와 '하나와 앨리스'처럼 '화이트 이와이' 영화에서 출렁이는 장면들이다. 미스터리한 풍경은 '릴리슈슈의 모든 것'처럼 '블랙 이와이' 영화에 담긴 고독한 정경들이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은 '디토' 뮤직비디오에 계속 등장하는 캠코더로 찍은 듯한 느낌도 준다.
무엇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새천년을 앞두고 어른 되기의 불안함 혹은 어른의 상실감을 주로 그렸다. 신 감독은 깨끗한 이미지의 도화지 같은 뉴진스 멤버들로부터 이런 아련함을 스케치해낸다. 여기에 한국 학원 공포물 '여고괴담'를 변주한 반전은 단순한 낭만을 넘어 슬픈 기억 너머의 근원적인 존재를 더듬거리게 만든다.
뮤직비디오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 뉴진스 다섯 멤버들의 모습을 항상 캠코더로 담는 인물 '반희수'다. 그는 바라보고 응원하는 자인 뉴진스의 팬덤 '버니즈'를 뜻한다. 반희수와 버니즈 단어 사이엔 묘한 언어유희도 있다. 드라마 '작은 아씨들'의 배우 박지후가 희수 역을 맡았다. 희수는 팬덤과 스타가 단순히 서로를 응원하는 걸 넘어 "미로 안으로 들어가"(Walk in this 미로) 때로는 상실도 겪을 수 있다는 걸 은유한다.
이런 부분들이 슌지 등으로부터 어린 시절의 정서를 지배당했던 3040을 뒤흔들어놓았다. 그리고 3040 중엔 이탈리아어인 '디토'라는 단어에서 데미 무어·패트릭 스웨이지의 영화 '사랑과 영혼'(Ghost·1990) 속 명대사인 '디토'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동감'이라는 뜻의 이 말은 사랑한다는 말에 공감하는 표식 같은 거다.
김성환 대중음악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뉴진스'의 디토'는 기존 아이돌 팝/K팝에 열광하는 1020세대를 넘어 그 이상의 대중에게 더 크게 어필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직조된 곡"이라면서 "'볼티모어 클럽'이라는 한국 대중에겐 조금 생소했던 장르의 힙합-일렉트로닉 비트를 끌어와 그 위에 거의 발라드에 가까운 멜로디를 얹는다는 작곡의 발상도 신선했다"고 들었다. 특히 "가사와 함께 돌고래유괴단과의 조인트를 통한 뮤직비디오가 전해준 서사는 영상 속 시기를 거친 30대 이후 세대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해 이 곡의 대중적 폭발력을 더 끌어올렸다. 결국 대중적 히트를 노리고 제작되는 K팝 장르 안에서 창작자들이 더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 곡"이라고 해석했다.
'디토'의 이런 애틋함은 한국과 일본의 국경을 넘어 Z세대의 놀이 문화 중 하나로 번졌다. 최근 메이저리그(MLB) LA다저스와 계약하면서 전 세계 스포츠 단일 계약 역사상 최고액 기록을 경신한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의 유년시절 모습이 담긴 영상으로 '디토' 팬뮤직비디오가 만들어졌는데, 14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일본 작가 아다치 미츠루의 명작 야구만화 겸 첫사랑 만화 'H2'를 떠올리게 하는 이 팬 뮤직비디오에 댓글을 쓴 상당수는 일본인이다.
조혜림 프리즘(PRIZM) 음악콘텐츠 기획자(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해당 팬 뮤직비디오 댓글 내용은 10대 때 야구부에서 함께했던 오타니, 내가 몰래 짝사랑했던 야구부 주장 오타니 같은 식의 댓글놀이였다"면서 "이처럼 '디토'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내가 경험한 적 없었던 과거를 만들어내는, 혹은 신기루처럼 남아 있던 작은 추억을 촉발해 폭죽처럼 터트리는 힘이 있다"고 읽었다. "낭만과 아련한 감수성은 과거에만 멈춰있지 않고 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장르인 볼티모어 클럽, 저지 클럽 댄스 뮤직과 어우러져 Y2K의 노스탤지어와 Z세대의 트렌드를 모두 사로잡은 뉴진스 최고의 히트곡이 됐다"는 것이다. 또한 "반희수란 새로운 캐릭터를 뮤비에 등장시켜 버니즈와 뉴진스 사이의 친구 같은 유대감과 추억을 쌓아 올려 그들의 추억이 뉴진스만이 아닌, 버니즈와 함께 만든 추억임을 다시금 상기시키고 탄탄한 서사를 만든 곡"이라고 부연했다.
이진수 프리랜서 에디터(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도 "누구나 갖고 있는 노스탤지어, 혹은 누구에게 없는 판타지를 심어주는 노래의 역할과 힘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저지 클럽'이라는 장르를 한 발 앞서 도입해 K팝 트렌드를 선도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는 황선업 대중음악 평론가(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단순 퍼포먼스와 이미지에서 벗어난, 노스탤지어를 강조한 독특한 서사와 분위기의 뮤직비디오로 곡 단위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면서 "결과적으로, 독보적이면서도 어렵지 않게 풀어낸 이들의 콘텐츠가 대중들에게 있어 '새로움'을 재정의하는 계기가 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라고 짚었다.
뉴진스는 이날 오후 6시 '디토'의 리믹스 등이 담긴 리믹스 앨범 '뉴진스 윈터 믹스'(NewJeans Winter Mix·NJWMX)를 공개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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