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걷다, 시간의 풍경을 멈추다…금산갤러리, 6인 단체전

이윤정 2023. 12. 1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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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기: Take Your Time' 전
김나현·박현욱·이계진 작가 등 6인 참여
"일상적 장면 속에서 따스한 위로 얻길"
2024년 1월 11일까지 금산갤러리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진열장 위에 올려져 있는 자동차 모형과 액자, 한켠에 놓인 화분에서 고요한 적막이 느껴진다. 반쯤 열려있는 문, 캐비넷 위에 쌓여있는 서류 등 또 다른 창문으로 보이는 모습도 단조롭다. 박현욱 작가의 ‘두 개의 창 너머’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일상의 장소나 사물을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해왔던 작가는 린넨에 수묵으로 그린 창문 너머의 광경을 통해 누군가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

분주한 현대 사회 속에서 각자의 시선으로 포착한 장면을 화폭에 담아내는 작가 6인의 단체전이 열린다. 내년 1월 11일까지 서울 중구 소공로 금산갤러리에서 개최하는 ‘천천히 걷기: Take Your Time’ 전이다. 김나현, 김다운, 박현욱, 성소민, 이계진, 장현호 등 서울대학교 동양화과 석·박사 과정에 있는 6명이 뭉쳤다. 천천히 걷듯이 자신을 둘러싼 주변과 감정을 들여다본 작가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현대 동양화를 선보인다.

금산갤러리 관계자는 “저마다 다른 매력을 가진 6인의 작품을 통해 관람객들이 스스로 오늘의 속도를 낮춰보며 분주히 보냈던 한 해를 되돌아볼 수 있도록 전시를 마련했다”며 “작가들이 전하는 일상적인 장면들 속에서 따스한 위안을 얻고, 자신의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현욱 ‘두 개의 창 너머’(사진=금산갤러리).
6인의 작가, 분주한 현대사회를 각자의 시선으로 담아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김나현 작가의 작품들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부지’ ‘아무것도 아닌 날’ ‘약속된 과거 현재 오늘’ 등 작가는 사랑이라고 느낀 순간을 그린다. 사실적인 묘사보다 그때 받은 인상과 감정에 주목해 그리기 때문에 얼핏 보면 추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장지에 분채, 석채 등 전통 안료를 혼합해 옅게 수백 번 겹쳐 올리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이같은 다층적 색과 붓질은 사랑이라는 단어에 내포된 복합적인 심상의 표현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 ‘소금산수’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 이계진 작가의 작품들은 먹과 현대 인물들의 구성으로 눈길을 끈다. 작가는 먹과 소금을 활용해 현대사회 속 이상향을 표현했다. 이계진 작가는 “학창시절 추억부터 세계 각지로 여행을 떠났던 기억까지 다양한 경험들이 작품 속에 녹아있다”며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현대사회 속 소외된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김나현 ‘약속된 과거 현재 오늘’(사진=금산갤러리).
장현호 작가의 작품은 시간성이 사라진 검은색 배경이 특징이다. ‘매그놀리아 리듬’(Magnolia Rhythm)은 흑백 화면이지만 아름답게 자라난 목련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장현호 작가는 “누군가는 흘려보냈을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로 담아 나만의 시각과 순간의 감정을 그려낸다”며 “각자의 소중했던 순간과 각기 다른 시간대를 상상하도록 하기 위해 흑백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김다운 작가는 컵 안에 담긴 미니정원을 그린다. 컵 속에 피어난 아름다운 식물과 꽃을 보고 있자면 물질주의적인 사회의 이면을 잠시 잊는다. 작가는 성과를 내고 보상을 바라는 결과 지향적인 태도가 요즘의 세태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미니정원을 통해 ‘오늘’의 가치에 대해 환기하고, 내가 위치한 오늘이라는 시공간에 집중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김 작가는 “오늘은 내가 가장 첨예한 감각으로 임하는 순간이자 새로운 경험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라며 “오늘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상다반사에 대해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장현호 ‘Magnolia Rhythm’(사진=금산갤러리).
성소민 작가는 목판에 새기는 방식으로 기억 속 풍경을 소환한다. ‘네모난 가로수가 있는 거리’ ‘모네모네모네’ ‘정원으로 가는 길’ 등은 작가가 어딘가에서 마주한 풍경을 목판에 새긴 작품들이다. 성 작가는 “정신과 물리적 힘을 동반한 모든 집중력이 목판으로 향한다”며 “그 속에서 나의 기억과 자연의 발자취들이 겹쳐져 작품이 완성된다”고 했다.

금산갤러리 관계자는 “작가들의 작품 속에 있는 장면은 우리의 일상과 거리가 있거나 상상에만 의존해 만들어진 허황된 이미지가 아니”라며 “개성 넘치는 감각과 시선으로 그려낸 누군가의 순간이자 오늘을 각자의 시선으로 즐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다운 ‘A cup of Oasis’(사진=금산갤러리).
이계진 ‘소금산수’(사진=금산갤러리).
성소민 ‘모네모네모네’(사진=금산갤러리).

이윤정 (younsim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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