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셰일의 역습… 두 개의 전쟁·사우디 감산에도 유가 눌렀다

조재희 기자 2023. 12. 1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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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키워 증산, 퇴출 위기서 부활

미국 셰일 오일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의 감산 효과를 무력화하고 있다. 유럽과 중동에서 전쟁 두 개가 동시에 벌어지고, 산유국들이 감산까지 나섰지만, 유가는 70달러대에서 안정세다. 고유가였던 2010년대 초반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산유국들의 협공에 버티지 못하고 퇴출 직전까지 갔던 셰일 오일 업계가 일단 반격에 성공한 모습이다. 반면 1·2차 오일쇼크 이후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마다 원유를 무기로 전 세계를 좌우하던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거듭되는 감산에도 불구하고 굴욕을 맛보고 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지난달 산유국들이 밝힌 감산 규모는 하루 220만배럴, 하지만 2021년 이후 미국의 원유 증산은 1.5배인 하루 330만배럴에 달한다. 세계 7위 산유국인 아랍에미리트(UAE)의 하루 생산량과 맞먹는 원유를 미국 혼자 늘린 것이다. 셰일 시추공(rig) 하나에서 뽑아내는 원유량을 크게 늘리는 생산 기술 혁신이 반격의 원동력이 됐다.

그래픽=백형선

◇전쟁에도, 감산에도 꿈쩍 않는 유가

지난 15일(현지 시각)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날보다 15센트(0.21%) 하락한 배럴당 71.4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10월 초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며 한때 배럴당 90달러에 육박했지만, 한 달 만에 70달러대로 되돌아왔다. 지난달 말 산유국 연합체인 오펙 플러스(OPEC+)가 자발적 감산을 추가 시행하겠다고 밝혔지만, 당시 70달러대 중반이던 유가는 오히려 60달러대까지 밀리기도 했다. 원유 수출에 국가 재정이 달린 산유국들은 어떻게든 유가를 80달러 위로 밀어 올리려고 노력하지만, 급증하는 셰일 오일 생산량이 끌어내리는 것이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인 2021년 2월 하루 992만배럴까지 떨어졌던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지난 9월에는 332만배럴 늘어난 1324만배럴까지 증가했다.

셰일 오일 업계가 저유가 시기를 견뎌내며 생산 효율화에 나선 게 주효했다. 시추 기술이 발전하며 시추공 아래에서 옆으로 길게 뻗는 수평 시추관의 길이는 2010년대 중반 1.6km 수준에서 이제 2~3km까지 늘었고, 한 시추공에 4개 정도였던 파쇄용 구멍도 이젠 12개 이상이다. 이같이 생산성이 높아진 셰일 업계는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급등을 흡수하며 배럴당 40달러 선에서 이익을 거두고 있다. 미국 최대 셰일 오일 산지에서 시추 작업을 하는 다이아몬드백에너지는 최근 3년 사이 셰일 오일을 뽑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을 40% 줄였고, 엑손모빌은 신기술을 적용해 셰일 오일 생산량을 2배로 확대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철강 등 원자재 가격이 내리면서 내년에는 셰일 오일 생산 단가가 10%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산유국 공격에 빈사 상태까지 몰렸던 셰일 업계

셰일 오일은 2011년 배럴당 120달러까지 오르는 고유가 시기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과거엔 복잡한 생산 방식 등으로 수지가 맞지 않았지만, 고유가에 채산성이 생기자 미국 곳곳에 시추 현장이 늘었다.

하지만 오일머니를 앞세운 산유국들은 보고만 있지 않았다. OPEC 국가들이 증산 등을 통한 파상 공세를 퍼붓자 2014년 6월 초 100달러를 웃돌던 국제 유가는 그해 말 50달러, 2016년엔 30달러 아래까지 떨어졌다. 원가가 배럴당 30달러에 못 미치는 산유국과는 달리 당시 배럴당 60~70달러, 높게는 90달러까지 생산비가 들던 셰일 오일 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2020년 코로나 사태에 따른 수요 위축은 셰일 업계를 초토화했다. 화이팅페트롤리엄, 체사피크에너지 등 주요 셰일 업체들이 파산했고, 미국 내 시추공 수는 2013년 1757개에서 2020년 244개로 급감했다.

1년 전 미국 EIA(에너지정보청)가 전망한 올 4분기 원유 생산량은 하루 1251만배럴이었다. 그런데 미국 스스로 예상한 생산량보다 75만배럴 많은 1326만배럴이 된다. 이는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이자 20위권 생산국인 베네수엘라의 하루 생산량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셰일 업계의 개선된 생산 기술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셰일 오일(shale oil)

수평의 퇴적암(셰일)층의 미세한 틈에 갇혀 있는 원유. 일반 원유보다 깊은 곳에 있고, 암석층을 고압의 물과 화학물질로 파쇄하는 첨단 기술이 필요하다. 미국에 다량 매장돼 있는데 덕분에 미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에서 원유 수출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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