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하려 매일 3~4시간 폐품 모으는 前 교장 선생님
‘평범한 기부 천사’가 늘고 있다. 40여 년 교직 생활을 마무리한 김종태(75)씨는 폐품을 모아 고물상에 판 돈을 기부하고 있다. 앞으로 1억원을 더 기부하겠다고 약속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고액 기부자 모임)’ 회원이 됐다. 2008년 첫해 6명으로 시작한 아너 소사이어티 회원은 올해 12월 기준 3299명으로 늘었다. 누적 기부액(약정 포함)은 3741억원에 달한다. 국내 최대 규모다. 출발은 성공한 기업인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우리 주변 이웃들의 기부가 대폭 늘었다.
지난 14일 대구 달서구 다가구 주택에서 김종태(75)씨가 두툼한 노트 3권을 펼쳤다. 올해 1월 20일 신문 12㎏·1400원, 고철 20㎏·5600원, 알루미늄캔 2㎏·1400원, 합계 1만3520원... 주워 모은 폐품이 뭔지, 고물상에 판 가격이 얼마인지 2010년 11월부터 날짜별로 빼곡히 적혀 있었다. 고물상이 떼준 계산서도 붙어 있었다.
김씨는 대구교대를 졸업하고 1970년부터 교편을 잡았다. 2006년 교장으로 승진했고 2011년 퇴직하며 41년간 교직 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는 1990년대부터 종종 폐품을 모았다고 한다. 퇴직 후에도 12년 넘게 동네를 돌며 폐품을 줍고 있다. 요즘도 하루 3~4시간씩 집을 나선다. 집 1층 바깥에는 모은 폐품이 가득 쌓여 있다. 생계 때문이 아니다. 김씨는 이렇게 폐품을 판 돈과 용돈을 모은 기부 약속으로 지난 5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아너 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기부자 모임)’ 회원이 됐다.
김씨는 “요즘 관절이 점점 안 좋아 예전처럼 재활용품을 많이 모으지는 못한다”며 “여든 살이 되기 전에 1억원을 기부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14일에도 이틀 동안 모은 폐품을 전기차에 실어 집에서 4㎞쯤 떨어진 고물상에 가져다 줬다. 폐지 62㎏은 4300원, 백철(白鐵) 5.6㎏은 5600원 등이다. 고물상 사장은 “고물 팔 때 10원도 손해를 안 보려고 해서 ‘다음부터는 오지 마시라’고 한 적도 있다”며 “그 돈을 모아 기부를 하시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대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관계자는 “기부 약정을 위해 사무실에 들어오셨을 때 손이 너무 까맣고, 옷차림이 허름해 생활이 어려운 분으로 보였다”며 “도움을 요청하러 오신 줄 알았는데 교장 선생님을 지낸 고액 기부자여서 놀랐다”고 했다.
김씨가 폐품을 모으는 것은 기부용이다. 연금 등으로 생활하며 여유가 생기는 돈도 기부에 쓴다. 큰아들은 대기업 직장인, 둘째 아들은 의사가 됐다. 지금까지 무료 급식소 등을 도왔고 근무하던 학교에 장학금도 내놨다. 그렇게 3000만원을 이미 기부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는 이와 별도로 1억원을 더 내겠다고 약정한 것이다.
그는 기부를 결심한 배경으로 “가르치던 아이가 창문 밖으로 떨어진 사건이 인생을 바꿔놨다”고 했다. 1990년 김씨가 6학년 담임일 때 자신을 도와 창가 화분을 정리하던 한 학생이 창밖으로 떨어졌다. 교실은 3층이었다. 그는 “제발 무사해라, 무사하기만 하면 남은 인생을 남을 도우면서 살겠다”는 말을 반복하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다행히 학생은 화단과 잔디밭으로 떨어져 다친 곳이 없었다고 한다. 다음 날에도 멀쩡하게 등교했다. 기적 같았다. 김씨는 “그때 학생이 크게 다쳤더라면 교사 생활을 계속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하늘이 나를 도왔으니, 나도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폐품을 모아 남을 돕기 시작했다. 1990년대 말 외환 위기 당시 금전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는 “내가 다른 사람을 돕겠다고 하늘에 한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벌을 받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후 본격적인 기부에 나섰다”고 했다.
어려웠던 유년 시절에 절약하던 습관도 기부에 도움이 됐다. 김씨 아버지는 남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어머니는 집에서 숙주 나물을 키워 5남매를 뒷바라지했다. 김씨도 고등학교 때 신문 배달을 했고, 어머니의 숙주 나물 재배를 돕기 위해 멀리서 물을 길어 왔다. 부모님 일을 돕느라 고등학교는 야간반에 진학했다. 김씨는 “아버지가 폐품 줍던 것을 어깨너머로 보며 컸다”며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재활용품을 모았지만 나는 남을 돕기 위해 몸을 쓴다”고 했다.
부인 김몽미(67)씨는 처음엔 “집이 지저분해진다”며 폐품 수집을 반기지 않았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남편과 함께 폐품을 모으고 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훑는다. 부인 김씨는 “자식들이 ‘굳이 그렇게까지 하셔야 하느냐’고 (폐품 수집을) 말렸지만 ‘그게 아빠 낙이다’라고 하니 이제는 다들 이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폐품 모으는 게 소문이 나서 일부러 집 앞에 가져다주는 고마운 분들도 생겼다”고 했다. 남편 김씨는 “큰돈은 아니지만 계속 기부를 하니 내가 예전에 하늘에 했던 약속을 조금이라도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작은 기부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우리 사회를 위해 무언가 도리를 하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문의 080-890-1212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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