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으로 우울한 세계… 우리는 ‘지구인’이란 각성 새 음반에 담았어요
가수 김창완(69)은 올해 초부터 깊은 우울에 빠져 있었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난 그는 “코로나가 끝난다 싶더니 우크라이나에 이스라엘까지 실시간 전쟁 소식이 들리더라”고 했다. “현대인은 왜 이런 우울한 역사를 만성병처럼 수레바퀴처럼 반복하나. 이런 자괴감이 컸죠.” ‘나는 누구인가’란 원초적 질문도 이어졌다. “친구, 연인, 부부, 가족 다양한 관계가 있지만 결국 그 정체성들은 모래성처럼 느슨하고, 개인들은 결국 사회의 파편 쪼가리 아닌가.” 이런 생각에 “극심한 좌절이 밀려왔다”고 했다.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이런 마음속 외침이었다. “아! 난 지구인이었지!” 그는 “’지구인’이란 각성이 나를 하나의 존재로 깨닫게 했고,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희열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개개인이 저마다 다양한 삶의 동기와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결국은 모두 똑같은 ‘지구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어슬렁거릴 수 있다는 자체가 얼마나 어렵고 행복한 일인 건지”를 깨달으며 마음의 평안을 찾았다는 것이다.
김창완은 지난달 이런 깨달음을 담아 신보 ‘나는 지구인이다’를 발매했다. “’지구인의 소절’을 되뇔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까지 났다”며 “감히 노랫가락으로 ‘위로’를 담는 건 터무니없다 생각하지만, 이 깨달음이 어떤 희망의 메시지라도 되길 바랐다”고 했다.2020년 ‘문’ 이후 3년 만의 독집 음반이자 1983년 ‘어머니와 고등어’ 등을 담았던 첫 솔로 음반 ‘기타가 있는 수필’의 2편 격인 음반이기도 하다. 기타로 수필처럼 써내려 간 기존 곡 10곡과 신곡 3곡을 실었다. 타이틀 곡 ‘나는 지구인이다’에는 “되찾은 삶의 찬미”를 듬뿍 담았다. 우주와 교신하듯 전파 소리가 섞인 전자 음악 사운드에 “나는 지구인이다/라라 라라라 라라 라라라~”를 흥얼거린다.
김창완은 “요즘엔 K팝과 팬덤 안에서만 대중의 관심이 돌지 우리 같은 가수들에겐 희미한 무대 조명조차 잘 안 온다는 사실에도 뮤지션으로서 무력감과 나약함을 많이 느꼈다”고 고백했다. 1977년 산울림으로 데뷔해 ‘아니 벌써’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개구장이’ 등 수많은 명곡을 냈고, 2008년 ‘김창완 밴드’를 결성해 활발히 음악활동을 해온 그에게 후배 세대는 ‘전설’이란 수식어를 자주 붙인다. 정작 본인은 “가수 생활을 꽤 오래했는데 너무 동어반복만 하는 건 아닌가. 내가 만든 말에 갇혀 사는 게 아닌가란 반성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산울림’의 역사성은 인정하지만, 수십 년 전 산울림 형제들의 활동 자체를 소환하려는 건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그게 우리에 대한 예의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사실 산울림 음악은 이제 어느 공연장에서나 다 들을 수 있다. (그걸 되새기는 건) 별 의미 없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이번 앨범에 기존 곡들을 새로 실은 것도 “지구인으로서 곡을 새롭게 느끼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라고 했다. 그중 “영원히 옳은 말은 없듯이”를 핵심 주제로 썼던 ‘시간(2020년 발매)’은 “세대 간 갈등을 과장하는 듯한 요즘 언사들이 못마땅해서” 다시 실었다. 김창완은 “기성세대는 괴로워하는 젊은 세대의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하고, 젊은 세대는 어른들의 추태에만 집중하는 게 안타깝다”면서도 “세대 간 차이는 각자의 자아가 확립돼 가는 과정이라 비난할 일이 절대 아니다. 돌이켜보면 그 대립이 인류사의 발전 원동력이 돼 왔는데, 이를 만성병처럼 여기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각 세대가 서로 힘들다 비명을 지르는 현실’에 대해 “서로 처지를 객관적으로 비교해 보고 납득할 ‘진실의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신보의 유일한 연주곡 ‘월광’은 1978년 산울림 2집에 실었던 ‘둘이서’와 접붙이 곡처럼 흐르도록 기타의 키(Key)를 똑같이 맞춰 나란히 배치했다. 김창완은 인터뷰 중 두 곡을 직접 기타로 연이어 들려줬고, 월광 속 세 번의 시계 종소리로 연주를 끝맺으며 이렇게 말했다. “지구인이란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하루하루가 고마워졌고, 많은 사람이 흥얼거릴 만큼 흔한 곡인 ‘월광’이 참 고맙게 들리더군요. 그렇지 않았으면 저는 과거 ‘식어버린 차(1983년 발매곡)’ 같은 곡에만 만족하며 머물러 있었을 거예요. 우리는 결국 지구인을 거쳐 우주인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죠. 인류가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우리의 따뜻한 감성과 마음은 멈추지 말고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야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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