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직후 미군정 사령관의 포고문 “민주주의 위해 동란 자제를”

채민기 기자 2023. 12.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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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독자 박명종씨의 보물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하지 중장의 포고문 가운데 영문으로 된 부분. /박명종씨
1945년 미군정 사령관 하지 중장의 포고문 중 한국어 부분. /박명종씨

“미군은 일본군의 항복 조건을 집행하며 한국의 재건 급(及·그리고) 질서 있는 정치를 실시코저 근일(近日) 중 귀국에 상륙하게 되였음니다.”

포고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제목은 ‘한국민에게 고함’. 1945~1948년 미 군정 사령관을 지냈던 존 R. 하지(1893~1963) 중장의 서명이 있다. 본문에는 날짜가 없지만 서명 아래 ‘1945.9.’라는 메모가 있다. 한국인들에게 미군의 상륙을 알리고 질서 유지를 당부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미군정 법령집에 실려 있는 맥아더 장군 명의의 ‘태평양 미국 육군 총사령부 포고’ 제1호(1945년 9월 7일)의 제목은 ‘조선 주민에게 포고함’이다. 이와 달리 이 문서는 ‘한국민’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에 대해 심지연 경남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일제 시대부터 활동했기 때문에 당시에도 한국이라는 말이 쓰였다”면서 “등사로 급히 문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법령집의 용어와 다른 표현을 썼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해방 직후 한반도에선 좌우 대립이 격해지는 가운데 각종 치안 조직 등이 난립하고 있었다. 포고문은 “이 거사의 성불성(成不成) 또는 지속(遲速·더딤과 빠름)은 오로지 한국민 자체 여하에 있는 것”이라며 한국인들의 협조를 요청하고 있다. “국내에 동란을 발생할 행동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되겠습니다”라는 표현도 나온다. “이상 지시함을 충실히 직히며는 귀국은 급속히 재건되고 동시에 민주주의하에서 행복히 생활할 시기가 속히 도달될 것”이라며 재건과 민주주의라는 미래상을 제시했다.

한 장의 종이에 같은 내용이 영어·일본어·한국어로 반복된다. 영문은 전체가 대문자로만 적혀 있어 다소 딱딱한 느낌을 준다. 뛰어난 야전 지휘관으로 이름을 날렸던 하지 중장의 완고한 면모가 묻어난다. 하지는 9월 8일 병력을 이끌고 인천에 도착했다. 행정가로서는 서툴렀다. 총독부 수뇌부를 유임시켜 한국 통치를 맡기려다가 한국인들의 거센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이후 그는 아베 노부유키 총독을 해임하고 아널드 소장을 군정 장관에 임명했다.

포고문은 울산광역시 독자 박명종(70)씨가 경남도청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부친의 유품으로 소장하고 있다. 박명종씨는 “생전에 아버지께서 ‘우리 국민과 일본 국민들에게 보낸 하지 사령관의 포고문은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면서 귀하게 간직하셨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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