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말로만 ‘글로벌 허브 도시’ 안 된다

이은정 기자 2023. 12. 19.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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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 유치 실패에 대안…신공항·산은 이전은 당연
규제없애 도시 경쟁력 ↑…부산시 면밀한 전략 절실

올 한해 부산시민이 가장 염원한 일은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가 아니었을까. 부산 시정이 엑스포에 집중됐고 시민은 희망에 부풀었다. 정부는 국제박람회기구(BIE) 182개 회원국의 지지 동향을 수집하고 집계했다. 처음엔 열세였으나 유치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에 부산시민은 으싸으싸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30여 개국 정상과 양자회담을 하는 등 헌신적인 노력으로 격차가 좁아졌고 막판엔 ‘박빙’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막상 지난달 28일 BIE 회원국 투표함을 열자 부산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119표 대 29표의 현격한 차이로 패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로 위안을 삼기엔 버거운 숫자다. 그날 새벽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성공유치 응원전에서 눈물을 쏟아내던 시민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유치 실패는 둘째치고 확실한 근거도 없이 “대역전극” 운운하며 가능성을 지나치게 부풀렸던 정부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시민도 많았다. 윤 대통령은 “모든 것은 제 부족의 소치”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일 부산을 찾아 가덕신공항 개항 등 부산의 글로벌 거점화를 위한 개발 사업의 차질없는 추진을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부산이 물류와 금융, 디지털과 첨단산업의 거점도시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제도와 인프라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엑스포 부산 유치 불발로 상심한 부산 시민을 격려·위로하고 부산 중심 남부권 개발 약속을 재확인한 셈이다. 그는 부산을 글로벌 허브 도시로 만들겠다는 선물 보따리도 내놓았다.

가덕신공항, 산은 이전, 북항재개발 등은 엑스포 유치와 상관없이 추진된 부산의 3대 현안이다. 그런 측면에서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선물은 특별법을 만들어 부산을 ‘글로벌 허브 도시’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다. 이와 관련해 부산시는 부산연구원 한국지방세연구원 부산테크노파크 경제자유구역청 등 관련기관과 실무회의를 최근 열었다. 내년 상반기에는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기본계획 수립에 돌입한다. 정부는 전 부처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이를 추진할 방침이다. 2025년 부처 협의를 거쳐 법안을 마련해 국회 심사와 특별법 제정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특별법의 핵심은 부산 전역에 모든 규제를 없애고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부여, 기업 활동을 뒷받침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두바이 뉴욕 홍콩 같은 도시로 키운다는 의미다. 하지만 글로벌 허브 도시라는 개념은 너무 추상적이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규제 개혁을 외쳤으나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점을 떠올리면 불안하다. 지난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중부내륙특별법’도 중부내륙지역의 발전과 각종 규제완화를 담고 있다.

엑스포 유치 실패 일주일 만에 발표한 계획이다 보니 ‘글로벌 허브 도시’ 개념은 지나치게 러프하다.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이후 부산 언론 외엔 글로벌 허브 도시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함께 부산을 찾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이 함께 한 ‘떡볶이 먹방’만 화제가 됐다. 부산시민은 재벌 회장들이 시장 음식을 맛보는 것보다 부산에 구체적으로 어떤 투자를 해줄 것인지가 관심이었다.

무엇보다 산업은행 이전도 민주당 반대로 어려운 데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이 제대로 추진될 지 의문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제반 여건이 조성되지 않으면 한발짝도 나가지 못한다. 정부는 이번 선물 보따리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던져본 카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부산시가 알아서 내용을 채워 보고하라’는 방식은 안 된다. 정부와 시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

부산시는 글로벌 허브 도시 특별법에 무엇을 채울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기업 활동에 어떤 규제가 있는지, 어떻게 하면 부산으로 기업이 올지 조목조목 조사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면 정부가 2009년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지정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이를 금융특구로 지정해 규제 완화와 세제 감면 등을 추진하는 방안도 특별법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부산이 복합물류 산업 기지라고 하지만 항만배후단지는 여러 규제를 받고 있다. 지난해 국내 수입한 커피 원두의 90% 이상이 부산항으로 들어왔으나 원두는 가공업체가 몰려있는 수도권에서 가공 포장된다. 항만배후단지 내 원두 수입업체는 물류업으로 등록돼 제조업 업무인 원두를 로스팅하거나 가공해 수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현장에서 호소하는 규제가 많다. 2017년 중단된 오픈카지노(내국인 방문 가능)를 포함한 복합리조트 건설도 다시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시는 연구기관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기업인 시민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시민 공모전을 통해 특별법에 담을 내용을 살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은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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