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루이즈 글릭이 생전 냈던… 시집 전 13권, 첫 완역 출간
작고 사흘 전 출간 협의된 덕에 책 표지 등에 시인 의견 반영
지난 10월 별세한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1943~2023)의 시집 전권(13권·시공사)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2020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각국에서 글릭의 시집이 잇따라 출간됐지만, 전권 번역은 한국이 처음이다. 번역을 맡은 정은귀 한국외대 교수는 “글릭의 시는 단어가 쉽고 일상적이지만, 함의가 크고 모호한 구절이 많다. 상상의 여지를 주자는 글릭의 철학에 따라, 각주를 거의 달지 않은 게 특징”이라고 했다. 글릭이 세상을 떠나기 사흘 전, 출판사 측과 출간 협의가 마무리됐다. 그 덕분에 국내 번역본의 표지 색깔 등에 시인의 의견이 반영됐다.
개인적 고통에서 시를 길어올린 글릭은 시가 주는 치유의 힘을 증명했다. 퓰리처상·전미도서상 등을 받으며 미국을 대표해 온 시인. 국내엔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알려졌다. 거식증을 심하게 앓아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집이 화재로 전소된 경험 등이 유명하다. 정 교수는 “거식증 등 독특한 청년 시절이 강조되곤 하지만, 글릭은 상실과 상처 안에서도 끝까지 사랑을 선택한 시인”이라며 “독자들이 고통을 인내하고 넘어서는 경험을 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시적 실험을 거듭하며 쓴 서정시엔 각각의 매력이 있다. ‘아킬레우스의 승리’(1985)에선 신화적 주인공, ‘야생 붓꽃’(1993)에선 꽃·인간·신의 목소리를 빌려 노래한다. 정 교수는 “스물여덟 번 거절당한 뒤 출간된 첫 시집 ‘맏이’부터 순서대로 시집을 읽기를 권장한다”고 했다.
마지막 시집 ‘협동 농장의 겨울 요리법’(2021)엔 희망과 불안이 혼재된 상황에서 인내하는 자세가 두드러진다. 표제작은 매년 겨울 숲으로 향하는 노인들의 이야기. ‘지금껏 가장 어두운 날’에도 그들은 모여서 샌드위치를 포장하고, 숲에서 모은 이끼로 분재를 만든다. 카드에 쓰인 글자를 묘사하며 끝난다. ‘같은 순서로 같은 일을 할 것,/ 그리고 그 아래엔: 그것들의 기원을 우리는 지워 버렸다./ 이제 그들에겐 우리가 필요하다.’ 희망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타인과 함께 견뎌야 한다는 시인의 마지막 메시지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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