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경제 항산항심] 하드 파워가 필요하다

엄길청 국제투자전략가·전 경기대 대학원장 2023. 12.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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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길청 국제투자전략가·전 경기대 대학원장

코로나와 전쟁이 한 순간에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미국이 1980년대 이후에 소위 신경제의 기치를 들고나온 것은 당시의 정보화 물결과 금융시장의 발달에 취해 하드 파워를 경시하고 소프트 파워를 추구하던 시절 어리석음의 백미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로 미국의 롱비치 항구에서 바다를 건너온 화물을 내리지 못하게 되고, 유럽 초원에서 전쟁이 터지며 세상은 식량 연료 도시구조물 무기 상품 원자재 등의 하드 파워가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작금의 인플레이션도 인건비 이외에 주로 물자 등 하드웨어의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미국은 이제부터 자국인이 필요한 상품이나 물건은 미국 안에서 만든다는 리쇼어링 정책을 들고나와 자국이 수입하는 세계의 핵심 공장들을 신속히 미국 안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부산이 한국전쟁을 전후해 한국 경제의 젖줄 역할을 한 것도 물자 부족이 심각한 우리나라가 전 세계로부터 구해온 물자들이 부산을 통해 전국 각지에 공급된 힘에 기인한 바가 크다. 예나 지금이나 부산은 누가 뭐라고 해도 물산과 상품이 풍부한 곳이어야 한다. 엑스포 유치 실패의 아쉬움도 따지고 보면, 이번 기회에 세계무역박람회를 개최해 부산을 다시 세계인의 상품공급과 물산 배급의 중심지로 만들 기회를 놓친 것이 더 크기 때문이다.

최근 부산을 찾은 대통령이 부산의 발전을 더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언제나 부산은 부산 사람들의 힘으로 일어서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곳임은 틀림이 없다. 돈과 사람이 서울에 많이 쏠리는 현실에서, 부산이 상대적으로 미래로 가는 힘을 가지려면 부산은 세계적인 상품과 물산의 집합과 배분 기능이 높은 도시여야 한다. 대통령도 부산을 트라이포트 물류 플랫폼의 중심적 역할을 증강하는 데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했다. 그런데 관건은 부산이 트라이포트 물류 플랫폼 역할을 잘하려면 도시 안팎으로 화물이 원활히 이동하는 다양한 물류 이동 수단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부산의 교통망은 사람의 이동에 주안점을 두는 정책이 중심이 되었고, 아직도 이점은 더 보강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상품과 물건들이 공항 항구 철도 육로 시내 교통망 등과 잘 연결되고, 이동속도가 살아나고, 나아가 주민의 삶의 질이 향상되는 대안 마련이 시급한 시점이다.

지금 부산시 내외의 신 교통망이 입안되어 설계되고 건설되고 있지만, 도시를 관통하는 상품과 물건의 이동이 새로운 경로 속에서 신속하게 항구와 공항과 도로로 연결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이 경로는 그야말로 초고속의 기술과 최첨단의 경로를 만들어 부산 시내를 그물망처럼 오고 가야 한다. 그 공간은 지하를 잘 활용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요즘 학계에서는 메가시티의 지하를 활용하여 지하도시를 초 지능적이고 친환경적으로 관리하고 확충하자는 ‘어스라인(earth line)’을 논의하는 주장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도시 지상에는 ‘스카이라인’이 있어 용도 구분, 규격과 원칙, 이용의 기준 등이 만들어져 있듯이, 이제는 메가시티의 지하화를 본격적인 제2의 도시공간으로 보고 ‘어스라인’이란 개념을 만들어 지금부터 그 기준을 세우고 장기적인 건설계획을 정책화하자는 연구들이다. 세장형 도시이자 도시 내 주요 산악지형으로 인해 토막이 난 자투리 지형으로 도시 지상의 평면 사용이 지극히 제한적인 부산은, 지하도시의 건설로 이런 점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도시 내 지상 평면이 그래도 좀 살아있는 북항 도심 주변, 서면 범일 주변, 사상 사하 주변, 동래 연산 주변 등을 지상지하도시 중심지로 하고, 도시 내의 엄광산 구덕산 백양산 금정산 황령산 등 산악지형 아래로 지하도시를 만들어 트라이포트와 고속으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이중도시 전략을 중앙정부와 의논하는 기점을 지금으로 삼아보자.


엑스포 일을 돌아보자면 중앙정부가 도왔지만, 그래도 부산이 스스로의 힘이 있어야 했다. 앞으로는 부산이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돈의 탓으로 남에게 지지는 말자. 그러기 위해서는 부산이 국제적인 상품과 물산의 집합지로서의 도시 자존을 조속히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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