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죽음의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

정승규 약사 2023. 12. 19.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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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규 약사

붉은색의 어여쁜 양귀비꽃 열매에서 추출한 아편은 수천년 전부터 사용되어온 천연 진통제다.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통증을 줄이고 설사를 멈추게 하는 가정상비약으로 집 주변에 재배하곤 했다. 필요할 때 약간 사용하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투약 방식이 달라지면서 중국의 왕조가 무너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림= 이재민 기자


아편 파이프는 아편을 부드럽게 태우면서 연기를 폐로 흡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파이프로 인해 아편 사용량이 급증했고 중독은 19세기 중반‘아편전쟁’으로 대변되는 엄청난 사회문제를 파생시켰다. 지금도 약물 중독은 현재진행형이다.

아편에는 진통 수면 환각 작용이 강한 주성분 모르핀 외에도 기침을 멈추게 하는 코데인, 복통에 사용하는 파파베린 등 다양한 물질이 들어있다. 그 외 주요 성분으로 모르핀보다 효능이 약한 테바인이 있는데, 이 성분을 기초로 중독성은 낮고 진통 효과는 강한 약들이 개발되었다. 1920년대 독일에서 나온 약 옥시코돈이 대표적이다. 테바인을 개량한 옥시코돈은 모르핀보다 진통 효과가 배 정도 더 강하다. 그러나 이 약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모르핀을 변형한 강력한 헤로인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옥시코돈은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부활했다. 1995년 유대계 미국제약회사 퍼듀 파마가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을 출시한 것이다. 옥시콘틴은 옥시코돈과 같은 성분이지만, 제약 기술의 발달로 약이 일정 시간 서서히 방출되는 서방정으로 개발됐다. 이 약은 극심한 통증으로 고생하는 말기 암 환자를 집에서 편안하게 돌보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말기 암 환자 같은 중증질환이 아닌 관절통이나 근육통 같은 일반 통증에도 옥시콘틴이 남용되면서 큰 사회문제가 되었다.

영업력이 강한 퍼듀 파마는 옥시콘틴 판매를 늘리기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고급 호텔에 의사들을 불러 모아 극진히 대접하면서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 의심쩍은 논문을 인용해 만 명이 넘는 입원 환자를 대상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해도 중독자는 겨우 4명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옥시콘틴으로 인한 중독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득했다.

퍼듀 파마의 전략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중증 환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쓰던 옥시콘틴이 경증 환자, 청소년, 심지어는 임산부에게까지 마구잡이로 처방되었다. 미국식품의약국에 옥시콘틴의 중독성 등급을 낮춰달라고 로비하고 안전한 약이라고 광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의 허점으로 옥시콘틴에 중독된 사람이 여러 군데 병원을 돌아다니며 쇼핑하듯 약을 처방받아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을 먹으면 통증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용법대로 복용하면 유용하지만, 중독된 사람은 약을 삼키지 않고 깨물어 부셔서 높은 용량의 약을 한 번에 복용했다. 황홀감을 맛본 사람들은 더 강한 자극을 위해 비싸더라도 더 많은 약을 구하기 위해 재산을 탕진했다.

중독자가 속출했다. 식은땀이 흐르고 구역질하며 성격이 과격하게 변했다. 마지막에는 과량 복용으로 호흡정지를 일으켜 죽음을 맞이했다. 미국에서 옥시콘틴으로 사망한 사람이 무려 64만 명이나 되었다. 반면 퍼듀 파마는 옥시콘틴으로 46조 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었다. 피해가 눈덩이 같이 커지자 퍼듀 파마는 수천 건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그러자 2019년 퍼듀 파마는 파산 신청을 하고 경영권과 지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피해자들에게는 8조 원 상당의 합의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미국에서 벌어진 황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마약사범 증가가 속도가 심상치 않다. 한해 2만 명 넘게 검거되고 있다. 편리만 쫓지 말고 약물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약은 올바르게 사용할 때만 제대로 힘을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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