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10] ‘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전보
전보(電報)를 받으면 열어보기도 전에 일단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유선전화조차 귀하던 시절에 먼 곳으로 가장 빠르게 소식을 전해주던 전보는 생사를 오가는 일에 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1970년 어느 날, 일본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하던 개념 미술가 온 카와라(On Kawara·1932~2014)는 동료 작가 솔 르윗에게 전보를 쳤다. 갑작스러운 전보에 르윗은 처음에 놀랐다가 곧 안도감과 함께 황당함을 느꼈을 것이다. 전보에는 밑도 끝도 없이 ‘나는 아직 살아있다’라고 찍혀 있었으니 말이다. 안 물어봤고 안 궁금했을 소식이니 황당하기는 해도 어쨌든 이 험한 세상에 친구가 살아 있다니 안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용지에 찍힌 스탬프를 보니 근 한 시간 전 소식이다. 카와라가 그사이에도 별 탈 없이 정말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영원히 사는 사람은 없으니 이 세상 누구든 산 사람이면 ‘아직’ 살아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렇게 ‘나는 아직 살아있다’라는 짧은 문장이 전보라는 특수한 통신 수단으로 전해지면 수신인은 생사의 돌연한 갈림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 후로도 카와라는 지인들 여남은 명에게 시시때때 전보를 쳤다. 모두 똑같이 ‘나는 아직 살아있다’는 내용이었는데, 무려 30여 년 동안 900통을 보냈다. 이쯤 되면 집착이다. 군국주의 일본에서 태어나 전쟁 중 성장해 원폭을 목격했던 그에게 오래 남은 전쟁의 공포는 문득 살아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했던 것이다.
온 카와라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전보 서비스가 종료됐다. 통신 기술의 눈부신 발전 속에서 138살 된 전보는 살아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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