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는 새로운 시작”… 獨현대미술 거장 키퍼의 16점 ‘회화 선물’

대전=김민 기자 2023. 12. 1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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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출신 현대미술 거장 안젤름 키퍼(78)의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이 대전에서 열리고 있다.

대전 문화예술공간 '헤레디움'의 '가을(Herbst)'전이다.

'가을'전에서 키퍼의 회화는 추운 겨울을 버티려 분발하는 나무들의 모습을 담았다.

식민지 수탈의 역사가 담긴 아픈 장소가 예술적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에 키퍼가 공감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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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개인전 대전에서 열려
‘헤레디움’으로 새롭게 바뀐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
아픔의 장소가 예술적 공간으로
키퍼, 의미 공감하며 신작 보내와…황인규 회장 “문화공간으로 운영”

독일 출신 현대미술 거장 안젤름 키퍼(78)의 국내 첫 미술관 개인전이 대전에서 열리고 있다. 대전 문화예술공간 ‘헤레디움’의 ‘가을(Herbst)’전이다. 키퍼가 이 공간을 위해 만든 신작 회화 16점과 설치 작품 1점을 선보인다.

● 폐허는 새로운 시작

국내 첫 안젤름 키퍼(오른쪽 작은 사진)의 개인전 ‘가을’의 전시 전경. 헤레디움 개관전으로,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와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의 가을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사진 속 두 작품의 제목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는 릴케의 시 ‘가을날’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헤레디움 제공
‘가을’전에서 키퍼의 회화는 추운 겨울을 버티려 분발하는 나무들의 모습을 담았다. 볕이 좋았던 가을 어느 날 단풍과 낙엽으로 가득한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의 풍경에 매료된 키퍼는 이 장면을 사진으로 남겨 두었다. 이 사진과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의 시에서 얻은 영감으로 이번 작품들이 탄생했다.

전시장에는 작품 제목과 연도를 설명하는 캡션 대신 릴케의 시가 적혀 있다. 키퍼의 요청으로 캡션을 부착하지 않았다. 그 대신 릴케의 ‘가을날’ ‘가을’ ‘가을의 마지막’ 등 세 편이 자리한다. 키퍼는 가을이 되면 잎에 있던 영양분을 뿌리로 거둬들이며 생겨나는 찬란한 단풍을 생명력 넘치게 그린다. 흙과 벽돌, 밧줄, 납으로 만든 나뭇잎 등 다양한 오브제를 활용해 입체적으로 가을의 심상을 표현했다. 낙엽이 비추는 빛을 금박으로 표현한 대표작 ‘가을(Herbst, Fur R. M. Rilke), 2022’ 등이 대표적이다. 이 회화들은 ‘죽음의 계절’로 여겨지는 겨울이 쇠락이나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임을 은유한다.

‘폐허’는 키퍼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키워드다. “폐허는 새로운 시작이기에 아름답다”고 말하는 키퍼는 개개인을 짓누르는 과거의 이념을 버릴 때 나타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예술로 보여준다. 지난해 이탈리아 베네치아 건국 1600주년 기념행사로 두칼레 궁전에서 최초로 선보인 개인전 역시 이런 맥락을 담아 찬사를 받았다.

전시가 열리는 헤레디움도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은 1922년 지어진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전지점을 리모델링한 문화 공간이다. 식민지 수탈의 역사가 담긴 아픈 장소가 예술적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에 키퍼가 공감했다는 후문이다. 키퍼는 사진을 비롯한 여러 자료로 공간을 파악한 뒤 이곳을 위한 작품을 준비했다.

● “정답 아닌 각자 본질 찾는 사회로”

1922년 세워진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건물을 리모델링한 문화공간 헤레디움 외경. 광복 후 체신청과 대전 전신전화국 등으로 사용됐다. 고증을 거쳐 과거 모습을 복원하고 전시와 음악 공연이 가능하게 했다. 황인규 CNCITY에너지 회장(오른쪽 작은 사진)은 “예술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상상하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헤레디움 제공
헤레디움을 인수해 새롭게 개관한 곳은 대전 에너지기업인 CNCITY에너지다. 전시장에서 만난 황인규 CNCITY에너지 회장은 “향후 미술 전시와 공연, 강연 등 여러 문화 활동을 하는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 공간을 운영하는 이유가 대전이 ‘노잼 도시’로 불리기 때문이냐고 묻자 황 회장은 웃으며 “‘노잼 한국’이 더 걱정”이라고 답했다. “주거 공간인 아파트가 삶의 척도가 되고, 그 ‘정답’을 맞히기 위해 숙제처럼 사는 것이 맞을까요? 예술가들은 정해진 답이 아닌 자신만의 이야기와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죠. 우리 사회도 그런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황 회장은 24년간 검사로 일하다 가업을 물려받았다. 정작 본인은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삶을 살았지만, 오히려 헤레디움을 준비하며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건물을 시가 얼마, 평당 얼마로 환산한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겠어요? 남이 하지 않은 것을 하니 비교 대상이 없고, 그러니 일 자체에 보람을 느낍니다. 정답이 아니라 각자의 본질을 찾는 것, 문화와 예술을 통해 한국도 충분히 그런 사회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을’전은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린다. 9000∼1만5000원.

대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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