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마약 못 잡고 지드래곤만 잡은 경찰
여전히 ‘제보 구체성’ 강조
‘혐의’ 여운 2차 피해 걱정
쇠파이프, 망치, 빠루…. 범죄자에 어울리는 장비다. 조폭 영화에 자주 등장한다. 경찰이 이걸 휘두른다면 어때 보일까. 쇠파이프·망치 휘두르는 경찰, 빠루 쑤셔 넣는 경찰…. 어색하기 짝 없는 모습이다. 이 어색함이 통용(?)되는 영역이 있다. 경찰이 차에 올라 타서 싸운다. 경찰이 차 유리창을 박살낸다. 경찰이 차문을 강제로 열고 진입한다. 차도 사람도 너덜너덜해진다. 곧이어 끌려 나오는 용의자가 있다. 마약 거래상 혹은 마약 투약자다.
90년대 수사에서 자주 봤다. 왜 이런 말도 안되는 수사가 용납됐을까. 마약 수사가 갖는 특수성 때문이다. 그 하나는 마약 사범의 환각성이다. 자해, 공격 등의 위험이 상존한다. 용의자를 위해서도 일거에 제압할 필요가 있다. 그 다른 하나는 범행 현장 확보다. 거래 현장, 투약 현장을 채증해야 한다. 증거 확보가 그만큼 어렵다. 그래서 마약 수사는 기다림과 인내심의 산물이다. 오랜 시간 내사는 마약 수사의 필수다. 내사가 길고, 체포는 순간이다.
하물며 대상이 연예인이라면 더하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직업이다. 마약 혐의 자체가 치명타다. 치밀한 내사와 증명이 필요하다. 이쯤에서 소개할 짧은 조언이 있다. 마약 수사 권위자인 A변호사다. -내사든 수사든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다만 마약 수사의 생명은 보안이다. 나도 연예인 마약 사건을 많이 했다. 기소 또는 구속 전까지 단 한번도 언론에 노출시킨 적 없다-. 나도 아는 사건이 있다. 방송국에서 체포해 그날 구속시킨 S씨다.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이 누군가. 최고 인기 연예인이다. 해외 팬을 보유한 K팝 스타다. 그에 대한 공개적인 마약 수사였다. ‘투약 의혹’, ‘술집 마담’, ‘동료 연예인’…. 경찰발(發)도 있고, 언론발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권씨를 소환했다. 범죄자들이 서는 포토라인에 섰다. 그런데 수사가 이상하게 갔다. 간이시약검사, 국과수 정밀감정에서 음성이 나왔다. 흡입·투약에 대한 다른 증거 얘기도 안 들렸다. 결국 ‘혐의 없음’ 처리 얘기까지 왔다.
무리한 수사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왜 안 그렇겠나. 연예인에 마약은 거론만으로 타격이다. 무혐의 처리되더라도 원상 회복 불능이다. 더구나 내사가 아니라 공개수사였다. 경찰에 나와 포토라인에까지 섰다. 그런데 그 결과가 ‘알아보니 아니다’다. 책임이 논의되는 건 당연하다. 보장돼야 하는 건 경찰의 정당한 수사고, 이때 정당함이란 목적과 절차를 다 포함한다. 권씨 수사에는 절차의 과했음이 분명하다.
충만했던 수사 의욕을 욕할 순 없다. 문제는 무혐의를 설명하는 경찰의 인식이다. 해당 지방 경찰청장이 출입기자단과 만났다. 혐의 없음을 전제로 입장을 말했다. “내사 단계였던 권씨를 정식수사로 전환한 이유는 제보가 구체적이었기 때문이다…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말할 수 없다…구체적 제보가 나왔다면 수사에 착수하는 것이 경찰의 의무다…관련자 등에 대해 수사를 했지만 범죄사실은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동의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제보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제보는 틀렸다. 그래서 혐의 없음으로 가고 있다. 제보의 신빙성을 강조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건가. 수사 착수가 경찰의 권한인가? 피조사자 인권이 침해됐다. 유무형의 피해를 안겼다. 이런 것까지 경찰의 의무인가. 범죄사실은 발견 못한 것이다? 혐의 없음은 경찰이 내릴 결론이다. 그런데 ‘혐의 없음’이 아니라 ‘수사 미진’으로 설명하고 있다. ‘더 팠으면 범죄가 나왔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수사기관이 버려야 할 나쁜 미련이 있다. 증거로 못한 수사, 여운으로 덮으려는 미련이다.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원래는 범인이야’라는 미련…. ‘증거가 없어서 그렇지 원래는 마약했어’라는 미련…. 이런 미련이 누군가를 두 번 죽인다. 지금은 그게 지드래곤이다.
김종구 주필 1964kjk@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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