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오 사설] 사진 기자에게 껄끄러운 사진이란

미디어오늘 2023. 12. 19.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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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1431호 사설

[미디어오늘 미디어오늘]

사진 기자들이 취재하기 껄끄러운 대상은 1번 정치인, 2번 연예인, 3번 기업인, 4번 시민 중 누구일까. 불리한 처지에서 언론에 노출되길 꺼려하는 상황이 동일했을 때를 전제로 해서다.

최근 국회의원이 본회의장 등 공개된 자리에서 메시지를 보내고 받는 휴대폰 창이 찍히는 경우가 많았다. 휴대폰 주인인 정치인은 종종 매체에 항의한다. 사생활 침해라고 둘러대지만 메시지 내용을 보면 혈세를 받는 국회의원이 일은 하지 않고 엉뚱한 일을 벌이거나 부적절한 '거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항의가 거세지만 공적 보도의 가치가 크다고 판단해 사진을 내보낸다.

▲ 2010년 12월8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의원들을 취재중인 사진기자들.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건에 휘말려 법정에 출석하는 연예인은 한 장의 사진이라도 찍히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엔터테인먼트사는 비우호적 언론을 관리하지만 연예인 사진 한 장은 기사 한 줄 보다 파급력이 크다는 걸 매체는 잘 알고 있다.

기자들은 사진 한장을 얻기 위해 철저히 동선을 파악하고 사진을 담는다. 집회 시위 참여 시민의 경우 초상권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 일명 풀사진으로 담아 처리한다. 클로즈업한 사진이 노출되면 동의를 받지 않았다며 항의를 하거나 고소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시민 인터뷰 사진이나 집회 시위 사진 중 사람이 특정되면 동의를 받는 쪽으로 현장 메뉴얼을 정하기도 한다. 정치인, 연예인, 시민을 대상으로 한 사진은 각각 애로점이 있지만 껄끄러울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기업인이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업인이 수사당국에 출석하는 사진이나 국회 국정감사에서 증언하는 사진은 촬영을 했더라도 최종 노출까진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기업 홍보팀은 오너가 좋지 않은 일로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최대 '오너리스크'로 분류한다. 노출을 막기 위해 평소 관리했던 언론인들을 총동원한다. 정면으로 찍힌 오너의 사진이 올라오면 어떻게든 다른 사진으로 교체하기 위해 회유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언론이 알아서 사진을 걸러 주는 것이지만 노출 이후라도 다른 사진으로 대체해달라고 강하게 요청하는 것이다.

취재일선에 있는 사진 기자는 힘들게 찍은 기업인 사진이 올라오지 않거나, 애초 다른 사진으로 올라간 경우를 숱하게 본다. 오너리스크를 막기 위한 홍보팀의 요청이 실제로 수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매체는 광고주가 껄끄러워하는 오너의 사진을 실었다간 매출에 악영향을 끼친다. 되도록 기업인 이름과 사진은 미담 기사를 제외하곤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이유다. 간혹 기업인 이름과 사진을 실은 뒤 삭제하는 경우엔 '거래' 결과물일 수 있다. 사진기자를 붙잡고 한번 물어보라. 가장 껄끄러운 사진 대상은 기업인이라고 답하는 빈도가 월등할 것이다.

12월 초 두 기업인이 국회 청문회에 섰을 때도 사진 기자들 사이에선 뒷얘기가 흘러나왔다. 기업인 두 사람은 해외 출장 중이라며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지만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야당이 청문회 실시 계획을 의결하면서 출석이 이뤄졌다.

산업재해가 빈번히 발생하는 건설업계와 제빵업계 회장은 청문회장에서 고개를 숙이고 사과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문제와 맞물려 두 기업인의 출석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해당 제빵업계 사업장은 노조 탈퇴 강요 혐의와 수사 정보를 얻기 위해 수사관에게 뇌물을 줬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하지만 두 기업인의 사진은 몇몇 매체에 그쳤다.

▲ 12월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허영인 SPC그룹 회장과 이해욱 DL 회장이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 매체 보도 제목에 두 기업인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데 사진은 상임위원장을 뒷모습으로 찍은 맹탕 사진이다. 사진기자들은 기업 홍보팀이나 데스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기업 홍보 기사가 쏟아지면서 검색 순위에도 밀려났다. 해외 점포가 신규 오픈했다는 소식, 연탄 나눔 행사를 했다는 소식,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캠페인 소식 등이다. 뜬금없이 두 달 전 해외 유명 축구 구단과의 계약 체결이 최근 뉴스로 나오기도 했다. 청문회에선 산업재해발생에 대국민 사과를 내놓고 뒤에선 관련 비판 보도를 막지 못했다고 분노했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일선 취재 현장에서 아무리 산업재해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더라도 기업인 이름 한 줄 못쓰고 사진 한 장 못 실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이게 한국 언론의 현실이라고 체념했을 때 언론의 역할을 방기하는 것이다. 국민알권리에 어떤 오너리스크도 끼어들 틈이 없어야 한다. 사진기자들에게 껄끄러운 사진이라는 건 없어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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