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형공원보다 공간 잇는 보행로… 연결 지점 늘려야 제 역할 [스페이스도슨트 방승환의 건축진담]

2023. 12. 1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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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걷기를 통한 소생’ 서울로7017
보행길 수목원 형상화한 공원으로 설계
개장 당시 주변 도시 조직간 접점은 17곳
6년간 신설 접점 단 두 곳… 파급 효과 미미
2023년 들어 국가상징공간 조성 위한 철거설
보행로에 방점 둔다면 타협안 모색 가능
연결 지점 늘려 ‘걷기를 중시하는 서울’로
서울로7025나 7027로… 재출발할 수도
“서울역 고가도로를 뉴욕의 하이라인(High Line)처럼 만든다고?”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서울역 고가도로와 뉴욕 하이라인 사이의 다른 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과연 가능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하이라인은 뉴욕 맨해튼 서쪽, 첼시 지역에 쓸모가 다한 고가 철로를 선형공원으로 탈바꿈한 프로젝트다. 2009년 1단계 개장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33㎞에 이르는 구간이 완성돼 매해 800만명 이상이 찾는 뉴욕의 명소다. 무엇보다 하이라인은 시민 단체가 주도하여 상향식(Bottom-up)으로 진행된 사업으로 전형적인 미국식 시민 참여를 보여 준다.
선형공원을 의도했지만 서울로7017의 본질은 철도와 도로로 조각난 서울역 일대의 공간을 연결하는 ‘보행로’다. 그렇기에 주변 도시 조직이 만나는 기존 ‘17’개의 접점이 두 배, 세 배로 늘어날 때 서울로7017은 더 온전히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서울역 고가도로는 1970년 8월15일에 개통돼 서울역의 동서 영역을 연결하는 간선 도로망 중 하나였다. 2012년 시설물안전등급 D를 받았지만 2015년까지 고가도로로 계속 쓰였다. 심지어 철거 직전에도 시간당 통행량은 1000대가 넘었다(2014년 국감에서 당시 새누리당 윤영석 의원이 중구청 자료를 활용). 무엇보다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는 재선에 성공한 서울시장이 하향식(Top-down)으로 추진한 전형적인 관 주도 사업이다.

사업을 발표하기 전부터 서울역 고가도로를 하이라인처럼 만들겠다는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의 선택은 확고했던 것 같다. 심지어 박 시장은 사업 발표를 서울역 고가도로가 아닌 뉴욕 하이라인에서 했다. 그 자리에는 ‘하이라인의 친구들(FHL: Friend of the High Line)’의 두 대표, 데이비드 조슈아와 로버트 해먼드 그리고 설계자까지 동행했다.

서울역 고가도로의 미래가 하이라인과 같은 선형공원이라는 박 시장의 일방적인 믿음에 비추어 보면 2015년 5월에 발표된 ‘서울역 고가 기본계획 국제지명 현상설계’ 당선작이 선정된 이유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2, 3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제출작이 새로운 구조물 설치를 최소화했는데 당선작만 꽃과 나무를 심은 645개의 원형 화분 설치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역 고가도로를 폐쇄한 이유가 시설 노후화로 인한 안전 문제라는 점을 고려하면 흙과 물이 담긴 수백 개의 화분을 설치함으로써 구조물에 항시적으로 하중이 가해질 계획안이 당선작으로 선정된 건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당선작은 네덜란드 건축·도시설계사무소 MVRDV의 공동대표 중 한 명인 비니 마스와 국내 건축사사무소 dmp가 함께 만들었다. 보행길을 수목원으로 형상화한 ‘서울수목원’을 개념으로 제시한 마스는 서울역 고가도로를 살아있는 식재 도서관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서울에 공원녹지를 조성하려는 사람들이 식물도감에서 적당한 꽃과 나무를 찾듯이 이곳에 와서 살아 있는 식물을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랐다. 이를 위해 설계자는 서울에서 생장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수목을 화분에 심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고 싶은 수목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남대문(동쪽)에서 만리동(서쪽)으로 수목 이름을 기준으로 ‘가나다’ 순서대로 배치했다.

당선작에 대해 서울시는 “자연을 매개로 콘크리트 구조물을 생명의 장소로 전환하는 비전과 전략이 미래 지향적이고 혁신적”이라고 평가했다. 심사위원장이었던 승효상은 당선작이 “서울역 일대를 녹색공간화하는 확장 가능성을 제시했고 다양한 시민 및 주체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과정을 중시”했기 때문에 심사위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퇴계로 가운데에서 배치된 서울로7017의 동쪽 시작점.
사람이 다니는 길로 재탄생한 서울역 고가도로에는 19‘70’년에 준공된 고가도로가 20‘17’년에 재생됐다는 의미를 담아 ‘서울로7017’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개장 효과는 확실했다. 100일 만에 380만명이 방문했고 첫해 방문객은 741만명을 넘겼다. 2019년에는 가장 많은 815만명이 찾았고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이 제한됐던 2020년에도 681만명이 다녀갔다(‘서울로7017, 조촐한 4주년… 지난달 방문객은 역대 최고’, 헤럴드경제 2021년 5월25일).

박 시장은 서울로7017이 선형공원이 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서울로7017의 기본적인 역할은 철도와 도로로 조각난 서울역 일대의 공간을 연결하는 ‘보행로’다. 이 본질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서울역 인근에 다양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서울로7017과 주변 도시 조직 간의 접점이 새롭게 늘어나 보행의 밀도가 높아져야 했다.

개장 당시 접점은 ‘17’개였다. 그중 서울로7017과 직접 연결되는 건물은 호텔마누와 그 맞은편 서울로타워가 유이했다. 이후 2020년에 메트로타워가 추가됐고 2년 뒤 공공미술 플랫폼으로 재탄생한 옛 서울역 주차램프(현 도킹서울)와도 이어졌다. 개장 이후 6년간 서울로7017과 주변 조직 간의 연결 지점은 두 곳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은 서울로7017의 파급효과를 강하게 느낄 수 없었다. 결국 올 4월 서울시가 서울역 일대를 ‘국가상징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서울로7017을 철거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현재 서울시는 ‘서울역 일대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한 사전 구상 연구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이용자가 급감했고 유지 관리를 위해 몇십억원의 예산이 쓰인다는 철거 논리는 만들면 더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서울로7017이라는 공공공간이 서울 한복판에서 작동한 7년 동안 이곳을 이용한 시민들 각자가 품은 체험과 기억은 철거할 수 없다. 서울시가 서울로7017을 없애겠다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서울로7017과 직접 연결되는 건물 중 하나인 서울로타워.
사실 철거와 존치의 주장 사이에 타협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현재 서울로7017이 선형공원으로서 갖는 한계를 개선하고 보행로의 역할에 방점을 두어 두 번째 버전을 만드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서울로7017’은 두 번째 버전이 시작되는 시점을 반영해 ‘서울로7025’나 ‘서울로7027’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중을 가로지르며 지나가는 서울로7017이 국가상징공간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일부를 잘라내되 주변 도시 조직과 연결되는 접점을 늘리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면 ‘서울로7017’은 초기 17개의 연결 지점이 두 배, 세 배 늘어난 ‘서울로7034’나 ‘서울로7051’이 될 수 있다.

‘국가상징공간’이 무엇을 상징해야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국가상징공간이 서울 내 여러 개 생긴다면 광화문광장이 역사성과 시민참여를 상징하듯 다른 곳에 있는 국가상징공간은 다른 상징을 보여 주는 게 맞다. 하나의 상징이 현재의 대한민국과 서울을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만약 ‘국가상징’에 ‘현재 대한민국과 서울이 지향하는 가치’가 포함될 수 있다면 서울로7017은 “걷기를 중시하는 서울”, 그래서 “걷기를 통해 도시를 다시 살리고자 하는” 서울의 모토를 전달하는 확실한 상징이 될 수 있다.

방승환 도시건축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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