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 필수의료, 무엇을 바라야 할 것인가
대한의사협회(의협)가 17일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총궐기대회’를 열었다. 의협이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집단 진료 거부에 나선 2020년과 달리 큰 열기는 없어 보인다. ‘총파업 찬반 투표’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단 2020년 집단 휴진의 주축이었던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적극적이지 않다. 필수의료를 추진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을 내놔야지, 의사 증원만으로는 대책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 정도를 보인다. 개별 의대들 가운데는 의대 증원 자체를 반기기도 하니 통일된 집단행동은 어려울 거라고들 한다. 무엇보다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의사 증원을 반기는 상황에서 실제 파업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사실 한국인들의 의사에 대한 태도는 매우 복잡하다. 올해 5월 간호법 통과를 둘러싸고 다양한 직능단체들이 반대 파업에 들어갔을 때도, 의사들이 반대한다고 하니 많은 시민은 간호법의 내용을 자세히 몰라도 좋은 법안인 모양이라 짐작하기도 했다. 그만큼 한국 사회에서 의사들에 대한 불신은 골이 깊고, 그건 오랜 기간 의사들이 누적해온 업보의 결과이다. 그러면서도 의사들이 나오는 건강 프로는 인기이고, 그들이 판매하는 건강식품은 홈쇼핑을 뒤덮을 정도로 잘나간다. 성적이 가장 좋은 학생들은 모두 의대로 몰려가게 되었고, 자녀가 의대를 가는 게 많은 부모의 꿈이다. 의사는 문제지만 내 자식은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물론 공공을 위해 지역의료나 필수의료를 하고 살라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그래도 의사가 안정되게 잘 먹고 잘사는 직업 아니겠느냐는 마음이 더 두드러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필수의료는 어떻게 보장될 수 있고 지역의료는 어떻게 소생할 수 있을까. 아니 다른 거보다 한국의 일반인들이 원하는 다른 의료, 좋은 의료란 무엇일까. 의사나 병원에서 겪은 끔찍한 경험담 하나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현재의 한국 의료에 불만은 만연해 있지만, 그렇다고 대안적인 의료의 상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코로나19로 공공의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높아졌지만, 공공의료를 어떻게 실현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공공의료를 요청하는 시민의 목소리 속에 싼값에 아무 때나 내가 원하는 의료의 혜택을 누리고 싶다는 불가능한 꿈이 섞여드는 장면도 종종 보게 된다. 사람의 목숨이 중하지 돈이 중하냐고들 하지만, 현실의 공공의료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과 인력의 문턱을 넘지 못하며, 공공병원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감염병에 걸리기 전까지 시민들이 선호하는 병원은 공공병원이 아니다.
그 결과 코로나19로 적어도 의료분야에서는 공공성이 크게 강화될 줄 알았던 희망 섞인 예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당시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어 일반 진료를 하지 못하던 공공병원이 적자에 시달리고 있지만, 정부는 예산을 삭감했다. 감염병 위기가 다시 온다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나빠진 상황에서 대응하게 될 가능성도 크다.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여론은 공공병원이 정상화될 때까지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거의 모든 분야의 예산을 삭감하는 과정에서 과연 공공병원 지원 예산이 확대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실제로 기존 의대 정원의 확대를 통한 의사 확보는 정부가 특별히 예산을 투여하지 않으면서도 뭔가를 하는 듯 눈가림할 수단인 면도 있다.
사실 많은 시민이 ‘빅5’라 불리는 초대형종합병원의 불친절에 치를 떨면서도 아프면 큰 병원을 찾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해 첨단의료를 원하며, 모두가 장벽 없이 빅5에 갈 수 있도록 전국 곳곳에 ‘빅5’ 못잖은 병원이 세워져야 한다고 믿는 모순적 태도를 갖는다. 낮은 급여 수준에서도 동료 시민들을 헌신적으로 돌본다며 부러워하지만, 평등한 가난이나 시민적 연대를 원리로 한 쿠바식 의료보다는 빅5의 의료가 앞선 의료라 생각하는 것이다. 좋은 의료라 할 때 먼저 떠올리는 게 필수의료도, 공공의료도 아닌 게 한국의 문제다.
각 개인이 환자로서 원하는 것, 시민으로서 지향하는 바가 다른 경우가 많고, 의료를 하나의 생태계로 생각하기보다는 의사 개인의 품성이나 인도주의 문제 차원에서 한국 의료의 문제를 찾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식인 중에서도, 아니 지식인일수록 국가적 차원에서 의료산업을 진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의사나 병원이 이윤을 추구하는 것만이 문제라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좋은 삶, 특히 좋은 죽음에 대한 고민 없이 필수의료를 이야기하게 되면 의사를 증원한다고 해도, 현재로서는 초대형종합병원의 확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백영경 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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