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김기현을 위한 변명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물어야 되는 것이지, 그냥 막연하게 다 책임져라,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후인 지난해 11일7일 격노하며 한 발언이다. 이상민 장관 책임론에 대한 반박 성격이었지만 ‘책임’에 대한 대통령의 지론을 알려준 말이기도 하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사퇴한 날 대통령의 이 발언이 떠올랐다. 윤 대통령의 ‘딱딱 책임론’과 김 대표의 떠밀린 듯한 사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대표는 사퇴의 변에서 “당이 지금 처한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은 당대표인 저의 몫”이라 했다.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이반 책임을 온전히 뒤집어쓰고 쓸쓸히 퇴장한 그림이 됐다. 총선 공천도 불투명하다. 대통령 순방 기간 그는 출마와 대표직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듯했다. 이것이 집권여당 대표에게 책임을 ‘딱딱’ 묻는 합당한 방식이었을까.
최근 정부·여당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사건을 보자. 방북 경력이 있는 재미목사에게 명품 가방을 받은 이는 윤 대통령의 배우자다. 김건희 여사의 불법 혐의가 드러났지만 모르쇠 하는 이도 대통령이다. 특별감찰관 임명과 제2부속실 설치 요구를 거부하고, ‘조용한 내조를 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어긴 사람 또한 김 대표가 아니다.
부산 엑스포 유치에 대한 국민 기대를 한껏 올려놓고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사건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영업사원 1호’를 자처하며 엑스포에 올인해 전 세계를 누빈 사람은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예측이 많이 빗나간 것 같다”고 했지만, 정부 외교력과 정보력 부족을 논하기 전에 인터넷 검색만 해봐도 판세를 알 수 있었다. 정상적인 기능이 마비된 행정부의 수반도 김 대표가 아니다.
해병대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받는 인물은 또 누구인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 이 문제에 침묵해온 김 대표인가. 애초 ‘귀책 사유가 있는 후보’를 사면복권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를 정권심판 전초전으로 만든 장본인도, 무공천을 주장한 김 대표는 아니다.
김 대표의 잘못이라면 국정 최고책임자에게 직언하며 그의 독주를 제지하지 못한 것이다. 이준석 전 대표, 유승민·나경원 전 의원이 쓸려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한 채 권력에 의탁한 예정된 결말이다.
그럼에도 김 대표가 쫓겨나는 듯한 모습은 대통령의 ‘딱딱 책임론’과 거리가 있다. 진짜 책임을 져야 할 사람, 쇄신 최우선 대상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광역단체장을 지냈고 4선 국회의원이다. 20년 정치를 했다. 그런 여당 대표조차 자신의 정치적 진로를 선택하려는 일말의 자율성마저 박탈당하며 궁지에 내몰리자 깊은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김 대표는 사라졌지만 집권세력의 본질적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민심은 경고를 보냈지만 윤 대통령은 ‘무섭게도’ 변하지 않았다. “계몽군주” “무정치” “무소통”이라는 한탄이 여권에서 나온다. 대통령이 변하지 않는 한 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누가 되든 ‘제2의 김기현’일 뿐이다. 한 사람만 변하면 되는 일을, 모두가 복잡하게 풀고 있다. “It’s the President, stupid!(바보야, 문제는 대통령이야!)”
강병한 정치부 차장 silverm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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