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화성 대리인 관점으로 말하면
인류는 정말로 화성에 살게 될까? 100년 안에는 모르지만 어쩌면 200년, 늦어도 500년 안에는 반드시 그럴 것이다. SF 작가 배명훈의 답이다. 그는 2년간 한국 외교부의 의뢰로 화성 연구를 진행했다. ‘인류가 화성에 진출한다면 그때의 거버넌스는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연구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SF 작가는 간혹 이런 일을 한다. 미국 국방부는 우주개발 시대를 맞이했을 적 SF 작가들로 자문위원회를 꾸렸다. 프랑스 국방부도 몇년 전 미래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SF 작가 팀을 결성했다. 우주와 미래, 딱 SF의 오래된 영토다. 더군다나 배명훈은 외교부의 의뢰를 수행하기에 제격이었다. 국제정치학을 공부했고, SF를 쓰면서 미래 사회를 구체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에는 과학자도 공무원도 아닌 위치의 ‘화성 연구자’가 생겼다.
배명훈의 연구에는 ‘행성정치’라는 말이 등장한다. 이는 국제정치의 반대말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지구와 달리 화성의 정치 체제는 ‘국가’ 중심이기가 힘들다. 화성에 이주하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행성 규모로 공동체를 형성할 확률이 높다. 지구에서는 인간이 처음부터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지역별로 뭉쳤지만, 화성에 가는 사람들은 도착해서 살아남는 일부터 해야 한다. 공기와 물과 전기를 확보하고, 방사능과 온도 변화에서 몸을 보호하며, 건축물과 제반 시설을 건설해야 한다. 화성에서의 생존은 행성 단위로 움직여야 하는 문제다. 지구의 삶은 특수한 경우에 불과하다. 국가는 필수가 아니다. ‘화성인’은 지구를 모방하거나 지향하지 않고, 새 체제를 형성할 수 있다.
이는 새로 나온 배명훈의 연작소설 <화성과 나>의 배경 설정이기도 하다. 소설은 뒤로 갈수록 화성인다운 사회를 분명히 보여준다. 특히 모래폭풍으로 보이는 처음과 끝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첫 수록작의 모래폭풍은 사람들을 힘겹게 만드는 재해다. 화성의 폭풍이 뿌리는 모래는 태양광 발전판의 기능을 저해하는 등 각종 문제를 야기한다. 하지만 마지막 수록작의 주인공 ‘정반음’은 언덕에 앉아 모래폭풍이 부는 풍경을 감상한다. 화성살이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모래폭풍이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더군다나 작중의 모래폭풍은 지구에서와 달리 부드러운 바람을 선사한다. 화성의 대기 밀도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화성에 맞서 분투하기보다 ‘붉은 행성의 방식’에 물들어간다.
작중 정반음의 직책은 ‘행성대리인’이다. 그는 개발을 허가할지 말지, 특정 지역의 ‘레드벨트’를 해제할지 유지할지 결정하는 일을 한다. 인간 사이에서 화성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이다. 그는 행성의 관점으로 본다. 마지막에 정반음은 결정을 내리고도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는데,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행성의 언어로 말해야 할 것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려니 말문이 막힌 거라고.
문득 ‘인간 안보’가 떠올랐다. 국가 안보가 아니라, 국경을 넘어 인간 전체의 안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미래의 화성에서 정반음이 하려고 했던 말은 이토록 큰 규모이지 않았을까.
심완선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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