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재활소년원 신설하면 ‘소년원에도 아침이 와요’
13세 소녀의 죄명은 ‘공무집행방해’. 경찰이 소녀를 정신병원에 행정 입원시키는 과정에서 밀치고 저항했다. 우울증과 충동조절장애, 경계선 지능 진단을 받아 치료가 필요했지만, 폐쇄병동과 약물치료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는 난치병으로 거동을 할 수 없었다. 낮엔 구청에서 지원받은 요양보호사가 간병했지만, 저녁엔 소녀가 어머니 곁을 지켜야 했다. 소년부 판사는 장기 보호관찰(2년) 처분을 결정했고, 특별준수사항으로 ‘정신과 진료를 지속적으로 받을 것’을 부과했다.
소녀는 중학교 3학년 때 특수반에 편성되자 거부감에 무단결석을 반복하다 학업유예됐다. 학교를 그만둔 후 생활비를 벌려고 자전거로 배달을 시작했다. 하루 2만원을 받았다. 기초생활수급비는 식비와 단칸방 월세로 지출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무면허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하다 결국 교통사고를 냈다. 발목 등이 골절됐고, 경찰조사를 받았다.
이후 우울증 커뮤니티에서 만난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과 어울리며 가출해 무면허운전, 절도 등의 재범을 저질렀다. 결국 9호 처분(소년원 6개월)을 받았다. 법정에서 소녀에게 수갑이 채워질 때, 가녀린 손목에는 자해했던 상처들이 선명했다.
최근 한 소년원이 원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자해 경험이 있었다. 자해 시작 연령은 초등 고학년·중학생이 83%였다. 13~15세 청소년에게서 가장 높은 빈도로 발생한 건데, 시작 연령이 어릴수록 심각한 수준의 자해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고 자살 시도 위험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초기 개입이 중요한 것이다. 또한 자해를 지속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정서적 고통을 줄이기 위해’(46.5%)서였다.
2023년 6월 기준, 가정법원 소년부의 보호관찰 처분 결정으로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을 받고 있는 청소년 중 정신질환자는 15.8%이다. 또한 비행성이 심화·상습화되어 소년원에 재원 중인 보호소년 중 32%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아동·청소년기 정신질환은 조기 치료에 실패하면 중증화·만성화되고, 범죄로 이어지기 쉬워 시기적절한 치료·재활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치료를 못 받거나 중단하고 재범을 거듭하다 결국 소년원 처분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의료재활소년원이 없다. 그동안 소년범죄 예방과 재범방지를 위한 인프라 확충을 추진해왔지만,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정신질환 청소년들이 보호처분의 마지막 단계인 소년원에서도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회로 복귀하는 것이다.
이들은 장기 입원, 치료가 필요하지만, 가정환경이 어렵고 보호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정서적 고통 치유와 자존감을 높이는 관심과 교육이 절실하지만, 갈 곳이 없어 거리를 배회하며 비행 위험에 노출된다. 가정과 학교, 병원의 기능을 할 수 있는 의료처우 기관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최원훈 법무부 인천보호관찰소 소년과 책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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