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이육사·장진홍 기념물…독립운동사 곳곳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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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곳곳에 독립운동의 역사를 새기는 기념물이 들어서고 있다.
지난 12일 대구시 중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4번 출구 인근 케이이비(KEB)하나스테이 앞에 독립운동가 장진홍(1895~1930)의 흉상이 세워졌다.
대구시 중구는 지난달부터 삼덕동 옛 대구형무소 사형장 터에 사업비 4억원을 들여 115㎡ 규모로 역사관 조성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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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곳곳에 독립운동의 역사를 새기는 기념물이 들어서고 있다.
지난 12일 대구시 중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4번 출구 인근 케이이비(KEB)하나스테이 앞에 독립운동가 장진홍(1895~1930)의 흉상이 세워졌다. 이곳은 옛 조선은행 대구지점이 있던 자리다. 경북 칠곡 출신인 장 의사는 1927년 10월18일 일제의 경제적 수탈이 심해지자 대구 덕흥여관에서 폭탄을 만들어 조선은행 대구지점으로 배달시켜 건물을 폭파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 의거’는 의열단 3대 의거 중 하나다. 1929년 일본에서 붙잡힌 장 의사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됐고, 이듬해 옥중에서 자결했다.
같은 의열단원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던 이육사(본명 이원록, 1904~1944)도 폭탄 의거의 배후로 지목돼 붙잡혔다. 대구형무소에 붙잡혀 2년7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때 수감번호가 264번이다. 경북 안동 출신인 그는 고교 때 대구 중구 남산동으로 왔다. 장 의사 흉상이 세워진 곳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인 이육사의 옛집 터에 지난달 이육사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그는 대구에 머무는 동안 중외일보,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이들 두 독립운동가가 수감됐던 옛 대구형무소도 내년 5월 ‘대구형무소 역사관’으로 탈바꿈한다. 대구시 중구는 지난달부터 삼덕동 옛 대구형무소 사형장 터에 사업비 4억원을 들여 115㎡ 규모로 역사관 조성을 시작했다. 대구형무소는 일제강점기 서울, 평양과 함께 전국 3대 감옥이다 . 1919년 3·1운동 당시 5000여명이 수감되기도 했다.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순국한 것으로 알려진 애국지사만 206명이다. 중구는 지난해 사형장 터 앞에 순국 지사의 이름을 새긴 ‘206인 추모의 벽’ 을 세우기도 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을 보면, 대구·경북권 독립유공자는 2482명에 이른다. 경북 안동에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이 있지만, 대구에는 기념관이 없어 2020년부터 독립운동가 단체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 추진 운동이 이어졌다. 이에 대구시는 2029년 완공을 목표로 대구 구국운동기념관 건립을 추진한다. 독립운동뿐 아니라 민주화운동 등 근현대사를 아우르는 다양한 주제를 담겠다는 구상이다.
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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