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악당국가에서 벗어나자

한겨레 2023. 12. 1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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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한국사회][cop28]

지난 6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한국이 ‘오늘의 화석상’을 수상하고 있다. 두바이/기민도 기자 key@hani.co.kr

[똑똑! 한국사회]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출판인

집 근처에 아름다운 개울이 있다. 산꼭대기에서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흘러내린다. 물길 따라 걷는 산책로가 6㎞ 이상 이어지는데, 주변으로 숲이 울창해 모든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지난여름, 여느 때처럼 개와 함께 그곳을 찾았다. 산책로 입구로 이어지는 다리 위에서 노인 한분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아래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일까? 다가서다 얼어붙고 말았다. 아름답던 개울은 물이 말라 거대한 진흙탕처럼 보였고, 악취마저 풍겼다. 날벌레들이 잉잉거렸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을 깨고 목쉰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태어나 70년 넘게 살았소만, 이런 꼴은 처음 보는구려.”

난생처음 보는 모습에 익숙해진다. 100년 만의 폭우가 내리고, 역대급 태풍이 줄지어 찾아오며, 여름 기온은 매년 사상 최고를 경신한다. 우리나라 넓이만 한 산불이 나서 숲과 야생동물을 집어삼키고, 빙산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는 바람에 작은 섬나라들이 아예 없어지게 생겼다. 기후변화로 지구가 몸살을 앓는 줄 모르는 사람은 없으나, 지금 겪는 대재앙조차 시작에 불과하다. 현재 지구 기온은 1880년 대비 1℃ 올랐다. 온도 상승폭을 1.5℃로 묶자는 목표를 절박하게 추구하는 이유다. 여러가지 설이 난무하지만 그 이상 오르면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사실 아무도 모른다. 지구가 점차 사람 살 수 없는 환경이 되고, 그때까지 수많은 목숨이 희생될 것만은 분명하다.

지난 13일 198개국이 참여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막을 내렸다. 당사국총회는 거의 모든 나라가 머리를 맞대고 기후위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하는 자리이니, 사실상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다. 28차 총회의 가장 큰 결실은 ‘정의롭고 질서정연하며 공평한 방식으로 화석연료에서 전환하기(transition away)’에 합의한 것이다. 화석연료 사용이 기후위기를 유발했으며, 인류의 미래는 청정에너지에 있다는 데 사상 처음으로 전세계가 뜻을 같이했다.

28차 총회 의장 아흐마드 자비르가 자평한 대로 “역사적 패러다임의 전환”인 것은 사실이지만, 세부사항은 물론 대원칙조차 너무 늦고 너무 부족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레타 툰베리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등에 칼을 꽂은 것”이라고 비난했듯, 기온 상승을 1.5℃로 제한한다는 목표는 물 건너갔다. 빌 게이츠나 버락 오바마의 예상대로 금세기 말 지구 온도는 2℃에서 3℃ 상승할 것이다. 국토가 물에 잠기고 있는 섬나라 대표단이 눈물을 터뜨리는 모습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최선이라면 그나마 실행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서너명만 모여도 뜻이 맞기 어려운데, 전세계가 합의하기 쉬우랴. 일각에서 석탄 감축을 밀어붙이지 못했다고 비판하지만, 사실 여기에 반대한 것은 파키스탄 등 저개발국가였다. 스스로 기후위기 때문에 가장 큰 희생을 치를 것을 알면서도, 주에너지원을 석탄에 의존하는 저개발국가는 재정과 기술 지원 없이 석탄 사용을 줄일 수 없다. ‘화석연료에서 전환’만큼 ‘정의롭고 질서정연하며 공평한 방식’도 중요한 것이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이 마당에도 돈벌이에 여념이 없다. 일방적으로 석탄 감축을 주장할 뿐, 재정지원은 하지 않는다. 자국산 천연가스를 청정연료라고 마케팅하지만, 천연가스 역시 메탄을 발생시켜 강력한 온실효과를 일으킨다. 결국 화석연료를 완전히 버리는 것만이 답이다.

우리나라 역시 천연가스에 활발히 투자한 탓에 기후행동네트워크(CAN) 선정 ‘오늘의 화석상’ 3위에 올랐다. 세계에서 세번째 가는 기후악당국가라는 뜻이다. 경제로는 세계 10위권이요, 비티에스(BTS)와 봉준호와 손흥민을 자랑하는 우리는 어느 모로 보나 선진국이다. 대통령까지 ‘영업 뛰는 것’을 내세우는 경제동물보다는 모두 함께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듬직하게 해내는 ‘모범 세계시민’이 더 자랑스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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