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기능 못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절대 선은 아니다

한겨레 2023. 12. 1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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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남인순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왜냐면] 송백석 | 영국 뉴캐슬대 정치학박사·정치평론가

선거법과 선거제도는 한 나라의 정치적 환경과 특성을 잘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년 22대 총선거를 앞두고 병립형 비례대표제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사이에서 시간에 쫒기며 고심하고 있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이러한 점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거대정당이 주도한 위성정당 창당은 왜 일어났을까? 수십 년간 연동형을 유지해온 독일, 뉴질랜드에서 없었던 위성정당 창당이 왜 한국에서는 연동형을 도입하자마자 생겨났을까? 이것을 설명할 만한 계량적이고 실증적 자료는 존재하지 않지만 한국 정치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에서 대선과 총선은 죽고 사는 문제다. 대선이 끝나면 전직 대통령은 여차하면 감옥에 가고 패배자는 정치보복을 당한다. 따라서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은 생사가 걸린 일이다. 지면 죽기 때문에 위성정당 창당이 이기는 길이라면 그것을 해야 한다.총선 직전 신당을 창당하는 것도 한국적 특성이다. 한국의 유권자는 급조된 신당에 크게 저항감이 없다. 그러려니 한다. 한국 정당은 분당을 감행하고 신당 창당을 수시로 해왔다. 번개처럼 창당하고 선거에 나가 표를 받는 것은 지극히 익숙한 모습이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다수 의석 확보에 사활을 건 한국의 거대정당들은 연동형을 재분석하고 이용했다. 병립형은 253개 지역구 의석과 상관없이 정당득표율을 비례의석 47석에만 적용해 그 득표율에 비례하게 47석을 정당에 배분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연동형은 민심을 폭넓게 반영한다는 취지에서 정당득표율을 47석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구를 포함하는 전체 의석에 적용한다. 그리고 각 정당의 정당득표율에 비례하는 의석수가 전체 의석에서 몇 석인지를 계산한 뒤 이 결과에 맞도록 47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즉, 지역구 의석 선거결과에 연동해 47석을 배분하는 방식이다. 정당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을 많이 차지한 정당에는 47석에서 배분하는 의석이 적고 정당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을 적게 차지한 정당에는 47석에서 배분 받는 숫자가 늘어나게 설계했다(단 공직선거법 부칙으로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연동형 상한을 두어 30석만 연동형으로 하고 17석은 병립형으로 함).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이 보기에 연동형은 그들에게 불리했다. 정당득표율이 높지 않으면 47석에서 배분 받는 의석수가 없거나 줄어드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반면 지역구 당선자는 거의 없지만 정당득표율은 높은 소수정당이 47석에서 많은 의석을 배분 받을 수 있는 것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최대 의석 확보에 목숨을 건 두 거대정당은 비례 전용 위성정당을 선거에 내보내 47석에서 가급적 많은 의석을 배분 받은 뒤 모정당과 통합시켜 최종 의석을 극대화시켰다. 이 치사한 전략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미래한국당과 더불어시민당이라는 위성정당이었다. 미래한국당은 총선에서 33.8%의 득표율로 19석, 더불어시민당은 33.3%의 득표율로 17석의 의석을 배분받았다. 이후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이들을 통합시켜 각각 103석과 180석의 의석을 확보했다.

시간이 흘러 4년이 지났고 이제 22대 총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증오의 한국정치 문화는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대선 뒤 단 한번의 공식 만남도 없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는 죽느냐 사느냐의 2차 대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연동형이 있는 한, 두 거대정당이 위성정당 창당을 불사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군소 정치세력의 신당 창당 유혹도 더욱 더 커지고 있다. 지난번에는 연동형 캡(상한)이 있어 30석을 나누었지만 이번에는 오롯이 47석을 나눠먹기 때문에 ‘묻지마 창당’이 일어날 수 있다.

위성정당방지법을 통과시키고 연동형을 유지시키는 방안은 현실적인가? 아쉽게도 지금까지 나온 위성정당 방지 법안들은 모두 완성도가 낮아서 현실성에 의문이 있다. 김상희·민형배·심상정·이탄희 의원 등 주로 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들 법안의 주요 내용은 위성정당에 대한 보조금 삭감, 거대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추천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국고보조금 삭감 위협이 위성정당 창당을 선제적으로 막는 것에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다. 거대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세우게 만드는 것도 위성정당을 막는 확실한 방법은 아니다. 거대정당이 위성정당에 비례대표를 함께 배치한 뒤 전략적으로 위성정당 비례후보에 대한 투표를 유도하는 전략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그 어느 법안도 위성정당의 출현을 안정적으로 막을 완성도 높은 작품이 아니다.

연동형이 마치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절대 선인 것처럼 선전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숨어있는 정치 이기주의가 엿보인다. 이 제도는 한국 정치 문화와 특성에 순기능하지 못했다. 총선용 위성정당 출현, 이른바 ‘떴다방’식 신당 창당이라는 충격적인 정치 경험을 한 이상 이 제도에 대한 평가는 냉정해야 한다. 비례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많지만, 연동형을 실시하고 있는 선진국은 독일, 뉴질랜드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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