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고통에 손 내미는 날로 삼자
[왜냐면] 강수택 | 경상국립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12월10일이 ‘세계 인권의 날’임을 아는 사람은 많은데 12월20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 두 날은 세계 시민이 꼭 기억해야 할 유엔의 기념일로 12월20일은 ‘세계 인간 연대의 날’이다. 유엔의 기념일에는 세계라는 수식어가 붙는 경우가 많으므로 간단히 ‘인간 연대의 날’로 부를 수 있다.
세계 인권의 날은 1948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채택을 기념하려고 1950년 유엔이 공식 제정했기에 많이 친숙한 편이다. 세계 인간 연대의 날은 유엔이 2000년 총회에서 밀레니엄 선언을 통해 제시한 새로운 시대 정신인 ‘연대’를 증진하기 위해 2005년 총회에서 제정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직은 많이 낯선 날이다.
약자에 대한 지원, 협력, 결속 등을 뜻하는 연대는 박애를 계승한 관념으로 자유, 평등과 함께 근대 시민 정신의 핵심적인 세 축을 이룬다. 유엔은 이 연대 정신이 21세기 인류에 특별히 소중하다고 여겨 자유, 평등, 자연존중 등과 함께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선언했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여러 구체적 노력을 행해 왔다. 유엔 활동을 연대의 관점에서 새롭게 규정하고, 세계 인간 연대의 날을 제정하고, 세계연대기금을 설립한 것 등이 그 대표적 예다. 유엔은 세계 인간 연대의 날을 계기로 인류가 하나라는 점을 기억하고, 각국 정부는 국제협약을 존중하며, 세계 시민은 연대의 중요성을 더욱 인식하기를 희망한다. 빈곤 퇴치 같은 지속가능발전목표의 달성을 위해 연대를 증진할 방법에 대해 보다 활발히 논의하고, 나아가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한 시민의 노력에 행동으로 힘을 보태자고 제안한다.
한국 사회는 내년 봄에 있을 총선을 앞두고 많은 관심이 정치권의 움직임에 쏠려 있다. 이런 분위기는 정치인과 언론이 주도하고 있다. 일반 시민에게 총선이 큰 관심사인 것은 분명하지만 벌써부터 모든 관심사를 빨아들일 사안은 결코 아니다. 그보다는 지금 당장 전쟁으로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시민에 대한 관심이 훨씬 더 절실한 때다. 위축된 경제 여건으로 활동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많은 국제 빈곤퇴치 구호단체의 활동에 더 큰 관심이 필요한 때다.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과, 그들을 위해 공익 활동을 행하는 선한 이웃 같은 단체가 많다. 그래서 요즘 같은 연말이 되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구세군 자선냄비 같은 통로를 통해 시민의 자발적인 기부와 후원이 많이 이뤄진다. 하지만 우리의 따뜻한 관심이 더해져야 할 곳이 물질적 지원을 필요로하는 곳만은 아니다. 재난이나 참사로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이들과, 여러 이유로 큰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는 함께하는 마음이 무엇보다 큰 힘이 된다.
세계 인간 연대의 날은 이처럼 국내외에서 커다란 고통과 깊은 슬픔 속에 있는 이들에게 세계 시민이 하루만이라도 따뜻한 관심과 손길을 내미는 실천의 경험을 갖자고 만든 날이다. 그런데 한국은 이제 세계에서 매우 부유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 만큼 이 날만이라도 해외 빈곤국 사람들의 빈곤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이들을 위한 단체들의 활동에 조금이라도 동참한다면 더욱 빛난 날이 될 것이다.
물론 이 날은 세계 시민 개개인이, 특히 시민사회단체와 정부가 특별히 새겨야 하는 날이다. 글로벌 시민단체들은 서로 협력해 이 날을 세계 빈곤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고취하고 빈곤국 지원 활동에 시민들이 쉽게 동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특별한 날로 만들어갈 것을 제안한다. 그러면서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에 대해 공적개발원조 규모를 국가 경제력에 걸맞게 키울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한편, 시민사회 내부의 사회적 연대와 글로벌 연대에 대한 관심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연대 문화, 특히 글로벌 연대 문화를 증진하는 날로 삼기를 바란다.
세계 인권의 날은 다행히 국가인권위원회가 있어 국가기관과 시민사회가 함께 인권문화 증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세계 인간 연대의 날은 관련 국가기관이 없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 특히 관련성이 큰 글로벌 시민사회단체들이 큰 관심을 갖고 나서지 않으면 시민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서 잊혀지는 날이 될 수밖에 없다. 올해는 늦어서 어쩔 수 없더라도 내년도 활동 계획을 한창 수립하는 요즈음 이를 적극 고려해 2024년 12월20일을 사회적 연대와 글로벌 연대의 정신과 문화를 증진하는 특별한 날의 시작으로 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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