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글로벌 금융 산업 전망 ③] IB, 사업 모델 재편과 첨단기술 투자로 효율성과 생산성 강화
글로벌 투자은행(IB) 및 자본시장 업계는 실망스러운 한 해를 보낸 후 2024년 완만한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하지만 새해에는 디지털 인프라 현대화, 신중한 자본 배치, 생성 AI(Generative AI) 도입 등 새로운 도전 과제도 풀어야 한다.
수년간 IB의 주 수익원은 거래 부문이었다. 시장 변동성이 높아 고객이 환율, 금리, 에너지 가격 등락에 대한 헤징에 나서면서, 2022년까지 3년간 글로벌 IB의 주식과 채권·외환·상품(FICC) 거래 수익이 연평균 1500억달러(약 194조25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변동성이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전 수준으로 줄자, 2023년 상반기 FICC 및 주식 거래 수익이 급감했다. 반면 언더라이팅(증권 인수)과 자문 사업이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자문 서비스 수요 부활
언더라이팅과 자문 사업은 우호적 시장 분위기, 낮은 변동성, 기업 가치 매력도 상승 등으로 2024년 성장 모멘텀이 강화될 전망이다. 또 자본 조달 비용 상승에 대한 반대급부로 기업공개(IPO)와 증권 발행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진행 단계에 있는 인수합병(M&A) 건수도 계속 늘고 있다. 기업들의 보유 현금과 사모펀드의 미집행 자금이 넘쳐나는 만큼, IB의 M&A 수수료 수익이 적지 않게 증가할 전망이다. 반면 상당수 지역에서 통화정책이 안정화되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줄어들면서 거래 수익 증가세는 억제될 것이다. 따라서 발행과 자문 서비스 부문의 수익이 거래 부문을 능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래프). 단기적으로 IB 업계의 전반적 수익은 2021년 고점을 회복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금리 안정화, 신규 자금에 대한 수요, 첨단기술·소비자·의료 산업 등 딜 수주 잔고 누적 등으로 밸류에이션의 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딜 및 발행 서비스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태평양 지역도 첨단기술·핀테크 부문의 경쟁이 가열되면서 언더라이팅과 자문 서비스 성장세가 강화될 전망이다. 중동도 몇몇 기업의 상장 작업이 개시되는 등 관련 부문 전망이 밝다. 반면 유럽은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가운데 경제 회복세마저 미국에 뒤처져 단기적으로 침체된 분위기가 예상된다.
변화하는 경쟁 역학
글로벌 자문 서비스 수수료 중 대형 IB가 가져가는 비중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계속 증가했고, 특히 미국 IB가 이를 주도했다. 하지만 최근 글로벌 톱10 IB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2020년 41%→2022년 35%). 대형 딜 물량이 없었던 데다 글로벌 M&A 시장 자체가 활기를 잃은 탓이다. 앞으로 대형 IB가 시장점유율을 회복할 수 있을지, 혹은 유럽 IB가 부활할지, 아니면 전문 부티크 은행들이 대형 딜을 차지할지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 초대형 IB가 계속해서 시장을 주도할 전망이다. 이들은 규모를 앞세워 시장점유율을 확대하고 있으며, 자본력도 막강해 마진 압박이 지속돼도 버틸 수 있고, 첨단기술 투자를 지속하면서 고성과를 내는 인재를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글로벌 특화 서비스에 집중하는 유럽 은행들이 두각을 드러낼 수도 있다. 일부 유럽 은행은 딜 흐름이 회복될 것으로 보고 소규모 부티크 은행, 특히 첨단기술 및 에너지 부문에서 활약하는 은행 인수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시장에서 유럽 IB의 전망은 밝지 않다. 자본과 규모에 한계가 있고 서비스 차별화도 약해 성장 잠재력이 크지 않다. 전략적 파트너십과 특정 부문의 스타 인재를 영입하면 돌파구가 될 수도 있으나, 그러려면 상당한 비용이 든다. 아시아·태평양 IB는 중국과 인도 등에서 M&A와 자본시장 기회가 증대하는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 수수료 점유율을 계속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부 부티크 은행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양호한 성과를 내고 있으며, 특히 경쟁이 치열한 중견기업 M&A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들은 부족한 자본을 반복 거래, 전문 서비스, 능력 있는 인재로 상쇄하고 있다. M&A 시장이 침체한 상황에서도 이들은 계속해서 인력 구조를 쇄신하고, 일부는 새로운 서비스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를 오히려 이점으로 활용해, 비용을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대형 IB가 미처 소화하지 못하는 부문을 공략해 짭짤한 수익을 챙기고 있다.
생성 AI로 대고객 부문의 생산성 강화
IB 업계는 이미 수년간 인공지능(AI) 기술을 거래 자동화, 리스크 관리 현대화, 투자 리서치 수행 등에 활용해 왔다. 이제 다수의 IB가 생성 AI를 실전에 도입하고 있다. 딜로이트는 생성 AI 도입 시 IB 대고객 부문 인력의 생산성이 2026년까지 최대 27~35% 증가(인플레이션 조정값)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인력 한 명당 300만~400만달러(약 38억~51억원)의 추가 수익이 발생한다는 의미다.
생성 AI는 바이사이드 고객사들의 역학도 변모시킬 것이다. 고객사들이 생성 AI를 도입하면, 매수 대상에 대해 더욱 효율적으로 분석할 수 있어 셀사이드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들 것이다. AI는 금융의 민주화를 한층 촉발시키고 진입 장벽을 허물어 시장 비효율성을 제거해, 시장 내 격차를 좁혀줄 것이다. 다만 이 대목에서 생성 AI 모델을 어떤 데이터로 훈련하느냐가 관건인데, 그러한 데이터 모델과 대규모 언어 모델(LLM)을 구축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만큼, 시장 격차가 오히려 벌어지고 부티크 은행들이 뒤처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규모 확대와 자본 배치 최적화가 IB 업계에 한층 중요한 과업이 될 것이다. IB는 생성형 전환 잠재력이 가장 큰 부문에 AI 투자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기술 인력 유치 및 테크 스킬 증강에 투자
2021년만 해도 닥치는 대로 인력을 채용하던 IB가 2023년 인력 감축으로 전략을 바꿔야 했다. 하지만 인력 감축이 전반적인 추세는 아니다. 대형 은행들이 인력과 보상을 줄이는 틈을 타 부티크 및 소형 은행들이 인력을 쟁취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 IB들도 딜 시장의 강력한 반등을 기대하고 인력을 늘릴 계획이다. 또 금융 산업에서 첨단기술 부문 인력 쟁탈전은 여전히 치열하다. 시장 수요에 발맞추고 경쟁 차별화를 위해 첨단기술 도입을 게을리할 수 없는 IB는 막대한 비용이 들더라도 유능한 데이터 과학자와 AI 전문가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다.
AI를 중심으로 기술 혁신이 가팔라지면서 IB 뱅커 스스로가 첨단기술에 대한 전문지식을 쌓을 필요가 있다. 기업과 바이사이드 고객사들은 이러한 첨단기술이 자사와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확한 분석을 요구한다. 또한 산업 간 융합도 가속화되면서 M&A 시장에서도 전례 없는 시너지가 창출되고 있다. 따라서 딜메이커 역할을 하는 IB 뱅커는 첨단기술과 융합 산업에 대한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자본 요건 강화에 대응한 혁신 추구
자본 및 유동성 규제가 강화되면서 IB는 자본 집약적 거래 부문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제약을 받게 될 전망이다. 바젤Ⅲ 규제 최종 개정안에 따라 자산 규모가 1000억달러(약 129조5000억원)를 넘는 은행들은 자기자본 거래, 첨단기술 투자, 시장 확대 계획 등에 자본을 배치할 때 새로운 규제를 받게 된다.
또한 미국 등 몇 개국에서 익일 결제를 요구하는 ‘T+1’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인 만큼, IB는 결제 리스크가 증대할 것에 대비해 리스크 관리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암호화 자산에 대한 규제 변화도 대비해야 한다. 최근 미국 금융안정위원회(FSB)는 동일 활동, 동일 위험, 동일 규제 원칙에 기반해, 암호화 자산 활동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위한 글로벌 프레임워크를 개시했다.
이와 동시에 IB는 기후 혁신을 위한 자금 조달 및 자문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녹색 금융과 탄소 시장이 성숙기에 진입해 IB가 활약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IB 업계는 유동성 제공 외에도 관련 정보와 시장 데이터, 효율적인 결제 플랫폼으로 무장한 거래 인프라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탄소 배출권을 증권화하고 여타 기관에 가격 지표를 제공할 수 있는 거래 가능 수단을 개발하는 데도 힘을 쏟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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