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부영의 브랜드 & 트렌드 <41>] 투팍부터 매릴린 맨슨까지…가수와 밴드 이름으로 보는 브랜딩

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 2023. 12. 18.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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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부영 브랜다임앤 파트너즈 대표 컨설턴트현 부산 도시 브랜드 총괄디렉터, 현 아시아 브랜드 프라이즈(ABP) 심사위원, 전 제일기획 마케팅연구소 브랜드팀장

브랜드 확장은 브랜드 자산을 활용한 대표적인 마케팅 전략의 한 방법이다. 성공한 브랜드의 이름을 다른 제품에도 확장해서 쓰는 것이다. 동일한 제품군에서 확장하면 라인 확장, 다른 제품군으로 확장하면 카테고리 확장이 된다. ‘맥심’ 커피에서 ‘맥심’ 커피믹스를 내는 것은 라인 확장이다. 자동차 브랜드 ‘제네시스’를 자전거에 쓴다면 그것은 카테고리 확장이다. 브랜드 확장은 사실상 브랜드 네임의 확장이다. 브랜드 네임이 바로 브랜드는 아니지만, 이름이 브랜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어떤 요소보다도 크다. 이름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강력한 무기가 된다. 그래서 이름은 브랜드의 이야기를 만든다.

KTX가 등장하기 전, 속도를 기준으로 우리나라 열차 종류에는 비둘기호·통일호·무궁화호·새마을호가 있었다. 비둘기호가 가장 느린 열차다.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 예전 우리나라에서는 평화(비둘기)가 가장 낮은 가치였고 통일이 애국주의(무궁화)보다 낮은 가치였다고.

힙합의 전설 투팍의 앨범들. 사진 셔터스톡

투팍 아마루와 2Pac

올해 10월 힙합의 전설, 투팍 샤커(Tupac Amaru Shakur) 살인 사건 용의자가 체포됐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10월 29일(현지시각) CNN 등에 따르면, 미국 라스베이거스 경찰은 이날 오전 투팍 살인 용의자로 전 갱단 두목 듀언 키스 케프 D 데이비스를 검거했다고 했다. 용의자가 잡힌 건 1996년 9월 7일 괴한이 쏜 총에 맞고 투팍이 세상을 떠난 뒤 27년 만이다.

투팍은 래퍼 겸 배우였다. 그는 서부 힙합의 왕이라고도 불렸다. 힙합계에서 에미넘(Eminem)과 더불어 가장 많은 앨범을 팔았다. 2Pac이라고도 표기하는 투팍의 본명은 레잔 패리시 크룩스(Lesane Parish Crooks)다. 혁명가다운 이름을 주고 싶었던 그의 어머니가 개명했다는 설도 있고, 예명으로 그가 스스로 붙였다는 설도 있다. ‘투팍’은 페루의 독립투사 ‘투팍 아마루’에서 따온 이름이다. 잉카제국 마지막 왕의 손자인 투팍 아마루 2세는 1780년 11월 4일, 쿠스코 지방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켜 스페인 총독을 처형했다. 11월 16일에는 자유 선언문을 발표해 모든 노예가 자유가 됐음을 선포했다. 인디언, 메스티소(중남미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언과 에스파냐계·포르투갈계 백인과 혼혈 인종), 크리올(신대륙 발견 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에스파냐인과 프랑스인의 자손을 일컫는 말) 등 인종 간 화합을 미래상으로 제시했고 수천 명이 그의 반란에 가담했다. 그는 1781년 1월에 쿠스코를 포위했지만, 4월에 배반당해 붙잡혔고 처형당했다.

사이먼 앤드 가펑클의 노래로 잘 알려진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는 과거 뜬금없이 ‘철새는 날아가고’로 번역됐던 노래다. 원래 이 노래는 페루의 민속음악이다. 노래에 담긴 내용은 비장하다. 신라의 문무왕이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듯, 투팍 아마루는 죽어서도 콘도르가 되어 나라를 지킨다는 비원이 담겨 있다. 2Pac은 이 이름을 계승했다. 저항 정신을 잃지 않겠다는 본인의 지향점(즉 브랜드 아이덴티티)을 명확히 밝히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인종 간 화합을 미래상으로 제시했던 투팍 아마루의 정신도 담으려 했을 것이다.

미국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 매릴린 맨슨의 리더 매릴린 맨슨. 사진 셔터스톡

미국의 두 얼굴, 매릴린 맨슨

2019년 가을 개봉한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웃’은 대체 역사 드라마다. 대체 역사물은 ‘지난 역사가 현재와는 다르게 전개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예를 들어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지 않고 요동 정벌에 나섰다면 그 이후 역사는 어땠을까를 주제로 드라마를 만든다면 대체 역사 드라마가 된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웃은 1969년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의 결말을 뒤집는다. 영화에서는 한물간 액션 스타 ‘릭 달튼’과 그의 스턴트 배우 겸 매니저인 ‘클리프 부스’가 릭의 옆집으로 이사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배우 ‘샤론 테이트’ 부부를 찾아온 침입자를 죽이는 것으로 나온다. 실제 역사는 다르다. 1969년 8월, 샤론 테이트와 친구 그리고 가정부까지 무려 여섯 명이 처참하게 살해당했다. 폴란스키 감독은 영국에 있어서 화를 면한다. 미국의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이 사주한 참극이었다. 찰스 맨슨은 히피 문화를 추종하던 패거리를 장악해서 맨슨 패밀리라고 불리는 범죄 집단을 이끌었다. 샤론 테이트와 그 친구들을 살해하도록 사주했다. 찰스 맨슨은 히피 문화의 화두였던 사랑을 교묘히 이용해 자신을 신격화했다. 사건 이후 히피 문화는 급격히 몰락하기 시작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웃은 관객이 다 아는 결말을 뒤집어서 보여주기에 통쾌한 코미디로 사랑받고 있다.

‘매릴린 맨슨(Marilyn Manson)’은 미국 인더스트리얼 록 밴드 이름이자 리더의 예명이다. 1994년부터 2004년까지 10여 년간 충격적인 콘셉트와 음악으로 많은 논란을 낳으면서 ‘쇼크록의 대부’로 군림했다. 전 세계적으로 5000만 장 이상의 앨범을 판 대형 밴드다. 리더 매릴린 맨슨의 본명은 브라이언 휴 워너(Brian Hugh Warner)다. 매릴린 맨슨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모로 추앙받는 매릴린 먼로에서 매릴린을 따고 연쇄살인범 찰스 맨슨의 이름에서 맨슨을 딴 후 그 둘을 합쳐 지은 이름이다. 미국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과 제일 끔찍한 모습을 하나의 이름에 담았다. 매릴린의 아름다움과 맨슨의 추악함이 보여주는 인간의 양면성 그리고 미국과 미국 문화의 양면성을 상징하려는 의도로 이름을 만들었다. 밴드의 앨범 제목을 살펴보면 쉽게 이해된다. ‘Portrait of an American Family(미국 가정의 초상화)’ ‘Antichrist Superstar(적그리스도 슈퍼스타)’ ‘Holy Wood,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죽음의 계곡에 드리운 그늘, 할리우드)’ 등.

두 번째 앨범 ‘Antichrist Superstar’는 1971년부터 공전의 히트를 친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를 비꼰 것이다. 미국의 양면성을 보여준다고 했으나 사실은 어두운 부분만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평을 받기도 한다.

스위스 축구 클럽 BSC 영 보이스. 사진 셔터스톡

포지셔닝 네이밍, BSC 영 보이스

‘우리는 문민정부입니다’라고 하면 이전 정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군사정부’라고 인식된다. ‘망리단길’이라고 하면 ‘경리단길’이 떠오른다. ‘열라면’은 ‘신라면’과 붙겠다는 뜻이 된다. 브랜드의 고유성은 조금 포기하더라도 강력한 경쟁자와 인식상 연계되게 하려는 포지셔닝 네이밍 사례다.

스위스의 축구 클럽 ‘BSC 영 보이스(Young Boys)’의 이름도 경쟁자를 의식한 네이밍이다. 몇 년 전 유럽 챔피언스리그 조별 예선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어 화제가 되기도 했던 BSC 영 보이스는 스위스 베른에 연고를 두고 있는 전통의 명문 구단이다. 스위스는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로망슈어 네 개 언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그런데 팀 이름은 영어로 ‘영 보이스’다. 사연이 있다. 스위스는 19세기 말부터 잉글랜드에서 전 세계로 축구가 전파될 때, 잉글랜드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근대 축구 초창기 잉글랜드에서는 학교 졸업생이 팀을 이뤄 대회에 출전하는 경우가 많아 졸업생을 뜻하는 ‘올드 보이스’ 혹은 ‘올드’를 팀 이름에 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올드 에토니언스(Old Etonians)’는 이튼스쿨 졸업생으로 이뤄진 팀이 된다.

스위스의 또 다른 명문 구단 ‘바젤 올드 보이스’도 같은 학교 졸업생이 만든 팀이다. 바젤과 라이벌 관계인 BSC 영 보이스는 바젤 올드 보이스와 확실한 차별화를 위해 팀 이름에 영 보이스를 붙였다. 1894년에 창립된 바젤 올드 보이스보다 4년 늦게 만들어진 BSC 영 보이스는 상대적으로 자신이 ‘젊고 혁신적인’ 팀임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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