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글이 되는 음악] 한국을 사랑한 노엘 갤러거의 아홉 번째 내한 공연
11월 28일 잠실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 별다른 멘트 없이 몇 곡의 노래를 부르던 그가 펜스를 잡은 여성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이 네 생일이니?” 그녀는 자신의 생일을 축하해달라는 메시지 보드를 들고 있었던 것 같다. 맞다고 하자 그는 나이를 물어봤다. “스물여섯!” 그의 표정이 묘했다. 곧 “이 노래는 너를 위한 노래야”라며 다음 노래를 불렀다. 즉석에서 스물여섯 여성 팬에게 서비스한 그는 1967년생, 56세의 노엘 갤러거다. 원로라 불러도 이상할 게 없는 뮤지션의 무대 가장 가까이에 서른 살 차이가 나는 팬이 있는 장면은 분명 흔한 건 아니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리더였던 노엘은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다. 오아시스 시절인 2006년 첫 내한을 시작으로 총 3회, 오아시스 해체 후 하이 플라잉 버즈를 결성한 이래 이번 내한이 여섯 번째다. 팝 스타 전체를 통틀어서 아홉 번이나 내한한 이는 손에 꼽을 만하다. 그것도 원히트 원더 뮤지션이나 한국에서만 인기 있는 뮤지션이 아니라 말 그대로 록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 중에서는 유일무이하다.
지난 6월 발매한 하이 플라잉 버즈의 네 번째 앨범 ‘Council Skies’ 투어의 일환으로 진행된 이번 공연은 본래 11월 28일 하루만 잠실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티켓은 금방 나갔고, 추가 공연이 발표됐으며, 그 티켓 또한 매진됐다.
결국 영등포구 명화라이브홀에서 또 한 번의 공연을 추가했다. 물론 이 또한 매진이었다. 2019년 이후 4년 만의 내한이고,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이후 내한 공연 및 페스티벌 시장이 급격히 커진 걸 감안하더라도 노엘의 공연은 언제나 그랬다. 그만큼 한국 팬은 열정적이고 노엘 또한 한국 팬의 열정을 잘 알고 있다. 그는 3회차 공연 추가를 발표하며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한국어로 이렇게 남겼다. “서울 특별공연 추가, 너네 나라에 오는 건 끝내주는 일이야” 물론 누군가 번역을 해줬겠지만, 스페인어권을 제외하면 다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서비스다.
약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공연에서 노엘은 전반부에는 하이 플라잉 버즈의 곡들을, 후반부에는 오아시스의 곡들을 들려줬다. ‘The Importance of Being Idle’ ‘The Masterplan’ 같은 노래는 물론, 과거에는 잘 하지 않던 대표곡 ‘LIve Forever’도 정식 세트리스트에 포함됐다. 오아시스 시절부터 공연의 시그니처이자 세계 어느 곳에서나 가장 큰 떼창을 이끌어내는 ‘Don’t Look Back in Anger’는 앵콜 마지막 곡으로 선보였다. 오아시스 곡을 연주할 때 어쿠스틱 기타로 베킹만 하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에는 일렉트릭 기타를 들고 멋진 솔로 파트까지 들려주기도 했다.
‘Don’t Look Back In Anger’의 진한 여운과 함께 추운 거리로 나오며 주변을 둘러봤다. 대부분의 관객이 20·30대였다. 10대도 종종 눈에 띄었다. 찰리 푸스, 해리 스타일스 같은 요즘 인기 팝 스타라면 당연한 구성이다. 하지만 1994년 데뷔, 곧 30주년을 앞두고 있는 20세기 록스타의 공연이라면 분명히 흔한 풍경은 아니다. 심지어 ‘첫 내한 프리미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최근 앨범에서 큰 히트곡이 나온 것도 아니다. 이번 공연에서도 하이 플라잉 버즈 곡과 오아시스 곡의 온도 차가 꽤 컸음을 감안한다면, 노엘 역시 여느 뮤지션과 마찬가지로 과거의 영광으로 오늘의 활동을 이어가는 상황임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2006년부터 그의 내한 대부분의 현장에 있었다. 헤아려보니 2018년만 빼고는 전부 봤다. 그때마다 관객은 젊었다.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들이 노엘 공연장에 모였다. 노엘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10년대 중반 그는 영국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국 팬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항에서부터 공연장까지 자신을 쫓아다니는 젊은 여성 팬이 엄청나게 많다는 게 신기하다는 내용이었다. 요컨대 오아시스를 포함해 노엘은 한국에서 계속 새로운 팬을 유입시키는 존재라 할 수 있다.
왜 그럴까. 우선 당연히 오아시스 음악의 힘이다. ‘Wonderwall’ ‘Live Forever’ ‘Don’t Look Back In Anger’ ‘Stand By Me’ 같은 노래는 시대를 타지 않는다. 요즘 들어도 세련됐다는 상투적인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비틀스가 그랬듯 장르와 트렌드 그리고 사운드를 초월하는 보편적 감정을 자극한다. 그런 노래가 한두 곡이 아니라 앨범 몇 장은 능히 만들 수 있을 만큼 많다. 힙합과 EDM이 주류인 최근 음악계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니, 1990년대에도 오아시스 같은 음악은 많지 않았다. 듣고 있으면 부르고 싶어지고, 부르다 보면 연주하고 싶어지는, 혼자 들어도 같이 들어도 좋은 그런 음악 말이다. 슬픔과 기쁨, 추억과 희망의 경계를 뛰어넘어 그 어느 순간에나 적용되는 음악 말이다.
거기에 더해 노엘이 쌓아온 캐릭터와 입담도 한 요인이다. 그는 데뷔할 때부터 독설과 거만을 달고 살았다. 거기에 독보적 유머 감각도 겸비했다. 동생이자 오아시스 보컬이었던 리엄 갤러거와 노엘의 입담은 한 마디 한 마디가 타블로이드지의 헤드라인급이었다. 잡지와 방송을 가리지 않고 토해내는 그의 언변은 한국어로도 찰지게 번역돼 텍스트와 짤방, 영상으로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검색 엔진에 ‘노엘 갤러거 레전드’ 같은 말을 치면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곳곳에 퍼져있는 독설과 명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JTBC와 가진 인터뷰에서도 입담은 여전했다. 앵커가 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호텔 방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가득 찼다. 그걸 전부 영국으로 가져가려면 5000달러를 내야 하니, 앞으로는 영국으로 직접 보내달라”며 “앨범 뒷면에 매니지먼트 주소가 있으니, 거기로 보내달라”는 농담을 던졌다. 2006년 첫 내한 때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오면서 던진 첫 마디는 “안녕, 난 콜드플레이의 크리스마틴이야”였다. 오아시스, 노엘 갤러거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의 언행을 보면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독보적 캐릭터인 것이다. 특히 ‘프로 불편러’들의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해진 한국 엔터테인먼트계에서는 더욱 만나기 힘든 록스타의 태도이기도 하다. 독보적 음악과 비범한 캐릭터가 계속 새로운 세대를 유혹하고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레전드’란 호칭이 어울리는 나이가 됐음에도, 노엘은 한국에선 여전히 유쾌한 록스타다.
한국 일정을 마친 후 그는 인스타그램에 “이 아름다운 놈들! 너넨 정말 최고야”라며 “내년에 보자”고 했다. 영국 팟 캐스트에 출연해서 한국 관객을 찬양하며 내년 여름 록 페스티벌에 나간다고도 했다. 인천펜타포트록페스티벌과 부산국제록페스티벌 중, 노엘이 서는 무대는 어디일까. 참고로, 노엘이 마지막으로 섰던 한국 록 페스티벌은 2015년 안산밸리록페스티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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