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수용성은 혁신 이끄는 동력이다

2023. 12. 18.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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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영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나노기술 등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다양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데 신기술을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증가하고 있다.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나 장애인을 위한 돌봄 로봇, 만성질환을 예방·관리하기 위한 디지털 치료기기, 태양광을 이용한 전기 생산과 농지 이용을 겸할 수 있는 영농형 태양광 등 무수히 많은 기술적 도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기술들이 우리 생활에 쓰이기까지 거쳐야 하는 과정에 부딪히게 되는 거대한 장벽 중의 하나는 '수용성' 이다. 예를 들어 만성질환자 개개인의 생활 패턴과 식습관을 고려해 맞춤 건강관리 컨설팅을 제공하는 디지털 치료기기가 실생활에 활용된다면 개인적으로는 건강수명 증진의 효과, 사회적으로는 의료비 지출 경감이라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발자는 신기술을 적용한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기만 하면 큰 호응이 뒤따를 것으로 기대하지만 현실에서는 시장에 진입하는 것 조차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대책은 주로 '규제 해소', '사용자의 인식 개선' 이었으며, 보다 적극적인 대책으로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사회적 수요를 만들어내기에 역부족이다. 앞서 언급한 디지털치료기기의 경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사용자의 의구심을 해소시키기에는 아직까지 축적된 임상 결과가 부족한 실정이다. 또한 얼마나 의료비를 절감할 수 있을지 경제적 효과도 불투명하다. 게다가 개인정보 유출의 위험까지 있다면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망설이게 될 것이 뻔하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를 뚫고 나가지 않으면 기업의 영속 자체가 어려울 수 있고,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신뢰할 수 없는 제품을 쓰면서까지 신기술에 열광할 이유가 없다. 이 둘 간의 긴장이 지속된다면 정부는 관련 기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갈 명분이 사라지고, 제품이 시장에 나올 길은 더 요원해진다. 신기술의 사회적 수용을 저해하는 '신기술에 대한 우려'는 혁신의 방향, 속도, 확산을 좌우할 수 있으며, 혁신의 진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

이는 수용성 문제를 다루는 정부의 전략이 고도화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술이 미처 성숙하지도 않았는데 정부가 앞서서 신기술이 적용된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하는 경우 사용되지 않는 무용지물을 만드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정부가 변화하는 사회적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제품 및 서비스의 개발과 확산에 소홀하다면 신기술의 잠재력은 사장되고 자칫 해외 기술에 대한 종속성이 심화될 수 있다. 수용성을 제고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 전략은 '수요' 측면의 이해 증진이나 보조금 지급뿐만 아니라, '공급' 측면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개발 기획, 예산 배정, 사업 관리, 사업추진 결과분석을 통한 새로운 사업기획의 과정에서 '수용성' 은 판단의 근거로 작용해야 한다.

우선 기술 개발을 본격적으로 기획하기 이전에 관련 기술의 가치를 다면적으로 탐색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기술적 가치, 경제적 가치뿐만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탐색이 필수적이다. 신기술의 사회적 가치는 기술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긍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교환되는 과정에서 드러나게 되며, 이는 기술개발자의 개발전략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정책환경에서 이러한 과정은 쉽게 간과되고 있다. 그 외에 기술의 신뢰도를 높여 수용성을 높이는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이의 밑바탕이 되는 것은 신기술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검증할 수 있는 기준을 정립하는 일일 것이다. 또한 시험·검증체계의 고도화하고, 관련 전문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아쉽게도 이러한 산업화 기초연구는 경제적 성과로 바로 이어지지 않아 정부의 관심사에서 멀어진 듯 하다.

또한 다양한 규모와 목적의 실증사업을 통해 사용자에게 믿을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 시범사업을 통해 사용자 경험을 축적하고 기업에게 다양한 사업모델을 시험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떤 길이 사용자에게 쉽게 다가가는 길인지, 그리고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불이익을 주지 않는 길인지 기업 스스로 다양한 선택지들을 만들어 내고, 그 선택을 사용자의 관점에서 평가하여 우수한 성과를 확산시키는 일이 정부가 할 일이다. 하지만 여러 지역의 시범사업들은 마치 지자체의 선진 행정을 홍보하는 수단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후발추격자로서 선진국의 제품을 모방하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노력이 불필요했을 수도 있다. 해외 국가의 시장창출 경험을 답습해 어떤 부문에서 사용자의 우려와 저항이 발생할지, 어떤 전략이 소비를 확대하는데 유용한지 파악할 수 있었다.그러나 이제 한국은 혁신의 최전선에서 길을 개척해 가야만 한다. 그렇게 된다면 수용성의 문제는 이제 혁신전략의 핵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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