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ICBM 5달 만에 또 발사…한반도 힘겨루기 위험 수위
[북 핵실험·미사일 발사]
북한이 18일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한국과 미국이 핵협의그룹(NCG) 2차 회의(15일·워싱턴디시)에서 ‘핵 작전 시나리오’를 한-미 연합훈련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힌 데 이어 미국의 전략핵잠수함 ‘미주리함’(SSN-780)이 지난 17일 부산해군기지에 입항한 데 대한 반발의 성격이 짙다. 북쪽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지난 7월12일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로 고체연료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포-18’형 2차 시험발사 이후 다섯달여 만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북쪽의 미사일 발사 직후 소집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 참석해 “우리 영토와 국민에 대한 북한의 어떠한 도발도 즉시, 압도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연말 소집이 예고된 북한 노동당 중앙위 8기9차 전원회의를 앞두고 남과 북 사이의 ‘힘겨루기’에 한반도 정세의 위기 지수가 한껏 높아지는 흐름이다. 북쪽의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 성공(11월21일)을 둘러싼 남과 북의 갈등 와중에 9·19 군사분야 합의서가 무력화된 터라, 우발적 군사 충돌의 위험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합동참모본부(합참)는 “군은 오늘(18일) 8시24분께 북한이 평양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한 장거리탄도미사일 1발을 포착했다”며 “고각으로 발사돼 약 1000km 비행 후 동해상에 탄착했다”고 밝혔다.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는 “고체연료 사용 장거리 탄도미사일”이라고 밝혔다. 고체연료 탄도미사일은 액체연료보다 연료 주입 시간이 짧아 기습 발사 능력이 강점으로 꼽혀, 유사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낌새를 파악해 발사 전에 파괴하려는 한국의 ‘킬 체인’ 작동을 어렵게 만든다.
일본 정부는 “발사된 미사일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이고 최고고도 6000㎞를 넘었으며, 비행거리는 1000㎞ 정도, 비행시간은 약 73분”이라며 “홋카이도 오쿠시리토(奥尻島)에서 서쪽으로 약 250㎞ 떨어진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 바깥 동해로 9시37분께 낙하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발표했다. 비행거리를 단축하려고 일부러 직각에 가깝게 쏘는 고각 발사의 경우에는 최고 고도의 2~3배를 정상 비행거리로 추정하므로, 최고고도가 6000㎞가 넘었던 이날 탄도미사일을 정상 각도(30~45도)로 발사했을 경우 1만5000㎞가량 비행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서 쏘면 미국 본토까지 미사일이 날아간다는 의미다.
이에 앞서 북쪽이 17일 밤 10시38분 평양 일대에서 발사한 단거리탄도미사일 1발이 “약 570km 비행 후 동해상에 탄착했다”고 합참이 밝혔다. 미국의 핵추진잠수함 미주리함이 정박한 부산해군기지가 평양에서 550km 거리라 이 발사는 미주리함을 염두에 둔 위력시위라는 평가가 나온다.
북쪽은 단거리탄도미사일 발사 직전 조선중앙통신으로 발표한 ‘국방성 대변인 담화’에서 “15일 워싱톤(워싱턴)에서 ‘핵협의그루빠’(핵협의그룹) 모의판(회의)을 벌려놓은 미국과 대한민국 호전광들은 다음해 8월 ‘을지 프리덤 쉴드’ 대규모 합동군사연습 기간에 핵작전연습을 시행한다는 것을 공개했다”며 “워싱톤에 모여앉아 핵전쟁 궁리를 하자마자 핵동력 잠수함 ‘미주리’호를 조선반도에 출현시킨 미국의 의도는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미국과 대한민국의 무분별한 군사적 위협 행위로 조선반도의 안전환경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조선반도 지역에서 핵충돌 위기는 가능성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시점에 관한 문제로 변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곤 “적대세력들의 그 어떤 무력 사용 기도도 선제적이고 괴멸적인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아울러 노동신문은 “허세성 객기로도 날벼락을 맞을 수 있다”라는 제목의 ‘조선중앙통신사 논평’을 실어, 9·19 군사합의를 둘러싼 남과 북 사이의 갈등과 관련해 “최근 괴뢰 군부 호전광들이 반공화국(반북) 대결 소동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다”며 “겁먹은 개가 더 요란하게 짖는다”라고 남쪽을 비난했다.
북쪽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군사기술적 필요, 대외 신호 발신, 내부 정치적 수요 등 3개 요인의 함수 풀이에 따라 이뤄진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북쪽이 국방성 대변인 담화를 일반 인민도 접할 수 있는 노동신문에 싣는 등 한·미 비난과 적대감 고취에 열을 올리고 있어, 북쪽의 이틀에 걸친 탄도미사일 발사엔 내부 결속 목적의 정치적 고려도 작용한 듯하다. 실제 노동신문은 ‘화성포-18’형 시험발사와 “핵무력의 지위와 핵무력 건설에 관한 국가활동원칙”을 사회주의 헌법에 명시한 사실 따위를 상기시키며 “주체112(2023)년은 주체조선의 국력과 국위가 빛나게 과시된 의의 깊은 해”라고 자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 체계를 활용해 한·미·일의 공동 대응을 적극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아울러 “북한의 연말연시 추가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 대응태세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이날 오후 이승오 합참 작전부장(육군 소장)이 나서 “이후 발생하는 모든 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북한에 있음을 다시 한번 엄중히 경고한다”는 내용의 ‘대북 경고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정부는 강경 대응 방침을 거듭 강조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한·미·일 미사일 경보정보(발사 원점과 비행 방향·속도, 탄착 예상 지점) 실시간 공유체계 구축은 최종 검증 단계에 있다. 수일 내에 정상 가동시키기 위해서 3국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조태용 한국 안보실장, 아키바 다케오 일본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해 논의했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노골적으로 위반한 시험 발사를 규탄했다”고 밝혔다.
반면,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이날 중국을 방문 중인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을 만나 “분쟁이 교차하는 국제 정세에 직면해 중국과 조선(북한)은 항상 서로를 지지하고 신뢰했으며 우호 협력의 전략적 의미를 분명히 했다”며 양국 간 협력 확대를 약속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남과 북이 ‘주먹엔 주먹’ 식의 옹졸한 자존심 싸움으로 8천만 한반도 주민의 삶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위태로운 한반도 정세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려는 주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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