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O '무늬만 기관' 2000곳 난립…공모주 '쏠림 베팅'

최석철 2023. 12. 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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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참여 기관, 해외의 10배
공모주 자문에 의존해 눈치작전
단타 수익 노리고 '묻지마 투자'
흥행기업 절반 상장 직후 급락
추격 매수한 개인, 손실 되풀이

마켓인사이트 12월 13일 오후 3시 5분

신규 상장 기업의 공모가가 실제 기업가치와 다르게 책정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공모가를 결정하는 수요예측 과정에서 가격 왜곡 현상이 벌어진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모가 결정에 참여하는 기관투자가가 2000곳에 달하지만 대다수가 기업가치를 산출할 역량이 없는 ‘무늬만 기관’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결과적으로 공모주가 상장 이후 극심한 주가 변동성을 보이는 원인이기도 하다. 시장 전문가들은 공모가 왜곡 현상으로 구조적으로 일반투자자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도 넘은 공모가 양극화


공모가 왜곡 현상은 통계가 말해준다. 18일 한국경제신문 마켓인사이트 분석에 따르면 공모주 수요예측 결과는 상단 아니면 하단으로 양극화되고 있다. 최근 3년(2021~2023년)간 기업공개(IPO) 수요예측을 진행한 기업 241곳 중 공모가가 희망범위 중간에서 결정된 곳은 2곳(0.8%)에 불과했다. 239곳은 공모가 희망범위 상단 이상 또는 하단 이하에서 결정됐다. 업종이나 성장성 등과 무관하게 모든 IPO 기업 수요예측에서 극단적인 결과값이 나왔다. 수요예측 참여 기관들이 단기 이익이 날 것 같은 기업에는 상단 이상에 베팅하고, 그렇지 않은 기업엔 최대한 기업가치를 깎아서 주문을 넣는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IPO 참여 기관이 수년 사이 급증하면서 양극화가 더 심화됐다. 올해 코스닥 IPO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 수는 평균 1527곳으로 집계됐다. 2019년 평균 852곳에서 4년 사이 두 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LS머트리얼즈 수요예측엔 올해 가장 많은 2039곳이 참여했다.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IPO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은 200~300곳 정도로 추산된다. 상대적으로 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에서 현재 IPO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 수가 해외보다 10배 가까이 많은 셈이다.

 ○대형사 전략 베끼기 작전

2020년부터 공모주 시장이 이상 급등 현상을 보이자 공모주를 통한 단타 매매를 일삼는 무늬만 기관인 곳이 급증했다는 평가다. 투자은행(IB)업계에선 현재 IPO 수요예측에 참여하는 기관 2000여 곳 중 실제 자체 밸류에이션 관련 조직을 운영하는 곳은 50여 곳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다.

다수의 중소형 운용사는 IPO 수요예측을 앞두고 일부 대형 운용사에 일정 금액을 내고 공모주 자문 서비스를 받고 있다. 한 대형 자산운용사의 공모주 자문 서비스를 받는 곳만 수백 곳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리포트에는 간략한 기업 개요 및 전망과 함께 수요예측 참여 여부, 신청 가격, 신청 수량, 적정 매도 시기 등 이른바 ‘수요예측 참여 전략’이 기재된다. 중소형 기관은 이를 토대로 수요예측에 참여한다. 사실상 밸류에이션 대행을 맡기는 행태다.

이들이 모두 동일한 전략으로 수요예측에 참여하며 일종의 세력화가 됐다는 게 IB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원하는 가격대에서 많은 공모주 물량을 받아내기 위해 같은 가격에 대거 주문을 넣는 방식이다. 다수가 동일한 전략을 취하면 손실을 볼 가능성이 그만큼 낮아진다.

밸류에이션 역량이 없는 운용사는 공모주 영업에 더 적극적이다. 운용사들이 특정 고액자산가 전용 펀드를 조성해 운용하는 식이다. 청약증거금을 내지 않고도 더 많은 공모주 물량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애꿎은 개미들만 손실 보는 구조

IPO 기업 주가는 상장 이후 큰 변동성을 보이기 일쑤다. 상장 첫날 오버슈팅한 뒤 시간을 두고 제 가격을 찾아가는 사례가 많다. 하반기 수요예측에서 흥행해 상단 이상에 공모가를 확정한 IPO 기업 41곳 가운데 절반은 주가가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상당수가 상장 첫날 100% 넘는 주가 상승률을 보인 뒤 급락했다. 무늬만 기관들은 대부분 상장 첫날 팔아 차익을 내고, 일반투자자들이 뒤늦게 물린다. 지난 6월부터 공모주 가격 제한폭을 기존 90~200%에서 60~400%로 확대하면서 이런 부작용이 더 커졌다는 지적이다.

IPO 기업도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수요예측에서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면서 상장 이후 기업 홍보(IR) 전략에 애를 먹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신규 상장사의 조기 가격 안정화를 위해 상장 직후 주가 상·하한폭을 넓혔지만, 가격 발견 기능을 맡는 수요예측 단계부터 정상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석철 기자 dols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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