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문턱만 네 번… DJ는 왜 “죽음과 경쟁하는 사람”이 됐나

라제기 2023. 12. 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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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청년 사업가였다.

소유한 선박만 열네 척가량이었다.

수완 좋은 청년은 정치에 뛰어들었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네 번 내리 낙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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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영화 ‘길위에 김대중’ 내달 10일 개봉
1987년까지 김대중의 민주화 투쟁 다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제5공화국 당시 가택연금 상태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명필름 제공

잘나가는 청년 사업가였다. 소유한 선박만 열네 척가량이었다. 1940년대 후반 전국에서 가장 큰 지방신문을 인수할 정도로 재력이 만만치 않았다. 수완 좋은 청년은 정치에 뛰어들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에도 제 역할을 못하는 정치를 바꾸고 싶었다.

정치는 사업과 달랐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네 번 내리 낙선했다. 역경을 이겨내며 야당 기수로 거듭났고 대통령 후보가 됐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건 혹독한 시련이었다. 그는 왜 죽음을 불사하고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을까.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은 한국 현대사에 굵은 글씨로 남은 김대중(1923~2009) 전 대통령의 삶을 돌아보며 20세기 후반 한국으로 관객을 데려간다.


"죽음과 경쟁하는 사람"...DJ의 치열했던 젊은 날

김 전 대통령의 생애라고 하나 영화는 제13대 대선을 3개월 앞둔 1987년 9월까지의 삶을 보여준다. 1945년 해방 직후 시작한 해운 사업, 6·25전쟁 중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연, 정치 입문 계기, 신진 정치가로서의 맹활약, 박정희(1917~1979) 당시 대통령과의 악연, 유신 치하 민주화 투쟁, 5·18민주화운동과 미국 망명, 직선제 개헌 투쟁 등이 화면을 채운다. 김 전 대통령을 화면 중심에 두고 있으나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대한민국 역사나 다름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의 마지막은 1987년 대선을 앞두고 호남지역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으로 장식된다. 명필름 제공

격동의 1960~1980년대를 조금이라도 경험한 세대라면 감회가 남다를 장면들이 적지 않다. “죽음과 경쟁하는 사람“(전 비서 이근용씨)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졌던 김 전 대통령의 굴곡진 삶은 마음을 진동시키기 충분하다. 김 전 대통령이 당시 야당 대다수 인사들과 달리 1965년 한일협정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던 일,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요원이 수감 중인 김 전 대통령에게 미국 망명 조건으로 정계 은퇴 서약서 서명을 종용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 등이 눈길을 잡기도 한다. 논쟁과 대화, 타협을 강조했던 의회주의자의 면모는 지금 한국 정치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 김 전 대통령의 삶과 활동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자세히 살피지 않은 점은 아쉽다. 김 전 대통령의 삶이 입체적으로 그려지기보다 단편적으로 묘사된다.


'DJ 탄생 100주년' 내년 1월 개봉...87년 대선 이전의 삶 조명

이은 명필름 대표(왼쪽부터)와 민환기 감독, 최낙용 시네마6411 대표가 18일 오후 서울 CGV 용산점에서 열린 영화 '길위에 김대중' 언론시사회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뉴시스

영화는 김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내년 1월 10일 개봉한다. 제작사 명필름의 이은 대표는 18일 오후 서울 CGV 용산점에서 열린 시사회 이후 기자 간담회에서 “100주년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다큐멘터리는 아니다“라고 영화를 소개했다. 그는 “김 전 대통령의 삶을 다 돌아보려면 4시간 정도는 필요했다“며 ”탄생 100주년에 맞춰 개봉하려니 시간이 촉박해 1987년까지의 생애를 우선 보여주자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민환기 감독은 “1987년 대선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들을 (개인적으로) 잘 이해하지 못했다“며 ”1987년 이전 삶을 되짚으면 김 전 대통령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길위에 김대중‘에 대한 관객 반응에 따라 후속편 제작 가능성이 열려 있기도 하다. 이 대표는 “수평적 정권 교체의 의미가 크다는 생각에 (제15대 대선이 열린) 1997년 1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별도 기획이 원래 같이 있었다“고 말했다. 민 감독은 “1987년 이전까지 삶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후 김 전 대통령의 공과 과를 좀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기대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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