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 안에서 20년 넘게 산 웅담용 곰, 자유 얻어도 도망치지 못했다

지난 17일 충남 당진의 사육곰 농가 철창에서 탈출한 반달가슴곰이 농장주의 요청에 사살됐다./ 당진소방서

충남 당진의 곰 사육 농장에서 철창 밖을 나온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탈출 2시간 만에 총 두발을 맞고 사살됐다.

18일 금강환경유역청과 당진소방서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7시7분쯤 충남 당진 송악읍의 한 곰 사육농장에서 곰 한 마리가 탈출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몸무게가 100㎏이 넘는 성체 곰이 탈출했다는 소식에 경찰은 소방당국에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당진시는 “곰이 탈출했으니 인근 주민들은 외출을 삼가기를 바란다”고 긴급 안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소방당국은 수색에 나선 지 1시간 50여분 만에 곰을 찾았다. 발견된 장소는 농장 내부였다. 평생을 농장에서 살아온 이 곰은, 멀리 나가지도 못하고 농장 안에 있는 철창 밑을 배회하고 있었다고 한다.

농장 주인은 이 곰을 사살해달라고 했다. 이 요청에 따라 유해조수 구제단 소속 엽사는 곰을 향해 총 두 발을 발사했다. 금강환경유역청 관계자는 조선닷컴에 “당시 날이 어두워 곰이 민가로 내려갈 경우 인명 피해가 우려됐고, 농장 주인도 요청해서 곰을 사살하게 됐다”고 말했다. 곰의 공격을 받고 다친 사람은 없었다.

이날 곰이 탈출한 농가는 웅담 채취용 곰 사육을 허가받은 곳이다. 총 92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한 마리가 사살되면서 91마리 남았다.

현행법은 10살 이상의 곰을 도축해 웅담을 채취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에 따라 농가에선 좁은 철창에 곰을 가두고 키우다 10살이 넘으면 도축한다. 이번에 농장에서 죽은 곰은 2001년생 수컷이었다.

탈출한 곰이 사육장에서 사살 당한 사진은 당진소방서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네티즌들은 “요새도 곰 사육장이” “탈출했다가 사살당했네 불쌍하다” “도망도 제대로 못간 건가 숨어 있었던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현재 농가들이 키우는 곰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반달가슴곰이다. 다만 우리나라가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 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가입하기 전부터 웅담 채취 등을 목적으로 곰을 길러온 농가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 농가들에 한해서만 사육을 제한적으로 허가해준 상황이다.

사육곰 구조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 한국에 남은 사육곰은 290여마리다. 환경부는 지난해 해 사육곰 농가, 시민사회와 협약을 체결하고 2026년까지 곰 사육을 종식하겠다고 선언했다. 곰 사육과 웅담 채취를 금지하고, 남아 있는 사육곰 보호 방안을 담은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야생생물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한편 금강환경유역청 등 관계기관은 곰 탈출 경위와 사육환경 등 종합적인 점검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