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 실수로 ‘옆 동’ 잘못 입주… 20년 넘게 산 주민들
집을 사서 20년 넘게 살았는데, 알고 보니 옆 동으로 잘못 입주한 것이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도 단지 주민 전체가 엉뚱한 곳에 입주한 것이었다면, 바로잡을 방도가 있을까?
2001년 경기 부천시 도당동에 지어진 다세대주택 2개 동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건축주가 실수로 1동에는 ‘2동’, 2동에는 ‘1동’이라는 간판을 달았던 것이다. 1동 분양을 받은 9가구는 2동을 1동으로 알고 입주했고, 2동으로 갔어야 할 다른 9가구도 1동을 2동으로 알고 입주했다. 그렇게 18가구가 20여년을 살았다.
주민들이 문제를 알아차린 것은 2021년의 일이었다. 한 세대주가 금융기관에 자기 집을 담보로 대출을 신청했고, 처음에는 대출 심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그러다 곧 금융기관에서 실사를 나온 관계자가 확인해 보니, 이 세대주가 살고 있는 집은 등기상 소유하고 있어야 할 집이 아닌 ‘옆 동’ 집이었다. 공문서상 물건과 점유 물건이 달랐으므로 이 세대주는 대출을 받지 못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18가구가 옆 동의 같은 호수 집으로, 문서상 각자의 집으로 이사해야 했다. 그러나 20여년 동안 각 집의 상태가 제각각이 됐고, 내부 공사를 한 집도 있었다. 집을 맞바꾸면 분쟁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각 가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옆 동에 있는 문서상 집주인으로부터 사들이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자면 취득세를 내야 했다. 그렇다고 살아온 대로 살자니, 긴급 상황에서 경찰·소방이 신고자 위치를 추적해 출동하면 옆 동으로 갈 판이었고, 주택 담보 대출도 받을 수 없었다. 옆 동 같은 호수에 사는 집이 경매로 제3자에게 넘어가기라도 하면 내가 쫓겨나게 되는 일도 벌어질 수 있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었다. 다행히 두 동은 설계부터 쌍둥이처럼 같은 구조로 지어져 있었고, 각 호의 공시가격도 똑같았다. 그러니 두 동의 ‘번지수’, 즉 지번(地番)을 맞바꿀 수도 있었다. 그러면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과, 문서상 집이 일치하게 된다. 서로 집을 맞바꿔 취득하거나 이사하지 않아도 됐다.
주민들은 부천시의 지적(地籍) 담당 부서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이어진 법률 검토 끝에, 시가 지번을 직권으로 맞바꿔줄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시를 비롯한 정부 어느 기관도 잘못을 하지 않았고, 지번을 맞바꿔줄 수 있다는 근거 규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근거도 없이 임의로 지번을 바꿔줬다가는 담당 공무원들이 감사에서 지적을 받거나 징계를 받게 될 수도 있었다.
주민들은 지난 9월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현장 조사를 거친 권익위도 지번을 맞바꾸는 것이 최선이라는 데 동의했다. 권익위는 최근 부천시에 “다세대주택의 지번을 각각 정정해, 주민들의 실제 거주 현황에 맞게 소유권을 인정해주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부천시도 이번에는 지번을 정정해주기로 했다. 권익위의 공식 의견 표명으로, 지번을 맞바꿀 수 있는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권익위는 국토교통부에는 앞으로 건축물 사용 승인을 하기 전에 동 표시가 실제와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라는 의견을 냈다.
김태규 권익위 고충처리 담당 부위원장은 “20년 이상 ‘내 집’이라고 믿고 살아온 다세대주택 주민들의 혼란을 지적도상 지번 변경이라는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한 사안”이라며, “앞으로도 권익위는 기존 법 규정이나 법리에 따라서가 아니라 보다 창의적으로 민원을 해결할 방안이 없는지 고민해 나가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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