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암 연구 '선두' 지켜라... "대통령 기구 등 적극 지원 필요"
국내 암 치료와 연구 발전을 위해 대통령 직속 '암 정책' 자문위원회를 설치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암은 전세계적으로도 치료·연구 경쟁이 치열한 분야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효율적이며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암학회는 15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대한암학회 암연구동향 보고서 2023' 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어 암 연구 동향을 살피고 향후 발전을 모색하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대한암학회 김태유 이사장(서울대병원)은 "(보고서 발행은) 미국암학회(AACL)와 교류하며 10년 전부터 품고 있던 꿈"이었다면서 "암 환자 현황 파악에 중점을 뒀던 기존 보고서와 달리 이번 보고서는 암 연구 현황까지 파악한 중요한 길라잡이로 정부와 정책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AACL의 연례보고서(AACR Cancer Progress Report)를 참고한 보고서는 각종 통계는 물론 암 분야 연구와 정책 현황을 총망라했다.
높은 수준 이어가기 위해선 정책 결정 과정 '개혁' 필요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에서 암 진단과 치료 기술, 암환자의 생존비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만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암 연구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2021년 기준 정부가 집행한 암 분야 연구개발비는 한 해 8558억 원이다. 이 중 50.2%는 비임상 분야인 기초연구가 차지한다. 환자 치료와 직결된 임상과 관련한 응용과 개발 분야에 투자되는 비용은 각각 17.2%와 26.6%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을 차지한다.
암 연구에서 임상연구는 특히 중요하다. 신규 항암제가 개발되면 국내 허가나 건강보험 급여 등재 이전에라도 시급한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연구(응용) 목적에서 처방해 국내에 빠르게 적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국내 신약 물량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학계 역시 적극적으로 암 임상시험을 도입하고 있다. 2020년 이후 국내에서 진행한 암 임상시험 규모는 전 세계에서 8번째로 많을 정도다. 그렇지만, 복잡한 행정 신청절차와 관련 지원 부족으로 학술연구 목적에서 연구자가 독자적으로 시행하는 연구자 주도 암 임상시험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데다, 해외와 비교했을 때 절대적인 국가 연구비 규모에서도 부족하다.
미국 정부는 과학·기술 연구·개발(R&D) 비용 전체의 30%를 바이오 분야에 투입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에선 전체의 2%에 불과하다. 암 연구 역시 바이오 분야 연구의 일부로 집계되기에, 암 연구비 집행 분포를 고려하면 암 임상 연구는 전체에서 극히 작은 비중에 불과하다.
대한암학회 김태용 학술이사(서울대병원)는 "최근 들어 많은 나라들이 암 연구비를 크게 늘리고 임상시험 참여를 확대하는 등 암 연구 분야는 도전적 상황을 맞고 있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제약사가 새로운 암 치료제의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시행하는 '의뢰자 주도 임상시험'이 83%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연구-치료환경이 부족한 지역 의료기관이 국가연구사업의 문턱을 넘기 어려운 탓이다.
이같은 상황 타개를 위해서는 국가 행정력을 결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국의 경우 1970년대에 이미 보건부와 국립암연구소(NCL)가 연구주제와 비용을 직접 백악관(대통령실)과 논의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미국 정부와 학계는 국가 주도 대형 암연구과제인 '캔서 문샷'(Cancer Moonshot) 사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암 연구와 치료 분야에 지대한 혁신을 불러왔다.
국립암센터 김염우 암정복추진기획단장은 "현재로선 암에 대한 국가 행정력을 결집하고 연구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면서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당시 한미일 3국이 '캔서문샷 2.0' 사업을 함께 진행하기로 한 만큼 국내 암 연구 거버넌스도 개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은 '캔서문샷 2.0' 사업 준비 단계로 AACL과 NCL을 중심으로 20개 관련 부처를 포함한 암 내각(Cancer Cabinet·캔서 캐비닛)을 설치했다. 백악관 직속으로 암 정책 최고 조정 의결기관을 구축한 것이다.
김 단장은 이어 "캔서문샷 2.0 수행 과정을 통해 향후 국내에서도 전임상과 1상 임상시험에 대한 역할이 강조될 것"이라며 "암 연구와 치료 현장의 필요를 담은 연구과제를 조직하기 위해선 대한암학회와 국립암센터가 대통령실과의 직통 채널로 활동해 전문적인 '연구 기획 조직' 역할을 담당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전체 국민 20% 암관련 경험..."20년간 빠르게 발전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선 매년 25만 명의 암 환자가 새로 발생하고 이 중 8만 명이 암으로 사망한다. 국내 암 생존자는 누적 250만 명에 달하며 암 유병자 규모도 1300만 명을 넘어섰다. 암 환자의 가족이나 친지까지 포함하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20% 이상이 직간접적으로 암이라는 질환을 경험한다는 의미다.
국내 암 학계의 활발한 연구에 힘입어 치료 성과 역시 지난 20여 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국내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24.2%P(포인트)가 증가했고 암 사망자 규모는 37.4%가 감소했다. 치료 최상위 성적을 내는 4개 암종의 경우, 위암과 결장암의 5년 생존율은 전 세계 1위이며 대장암과 폐암도 전 세계 3위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국립암센터 서홍관 원장은 "이러한 비약적인 발전에도 여전히 국내 사망 원인 1위인 암은 30%의 환자가 사망해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건강, 일상의 행복을 잃고 있다"면서 "암을 해결하지 않고는 국민의 건강과 삶의질을 개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국립암센터 암정복추진연구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대한암학회를 주축으로 20여명의 국내 암 연구 전문가들이 참여한 이번 보고서는 향후 전자책도 대한암학회(https://www.cancer.or.kr/)와 국립암센터 암정복추진기획단(https://ncc.ncc.re.kr/)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최지현 기자 (jh@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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