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업계 ‘아픈 손가락’ 낸드, 마침내 AI 덕 본다
올해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아픈 손가락’인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시장도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고가 소진되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고 수요도 살아났다. 올해 글로벌 빅테크들이 단행한 대대적인 생성형 인공지능(AI) 투자의 온기가 D램에 이어 낸드에까지 미치는 양상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11월 낸드 범용제품(128Gb 16Gx8 MLC)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4.09달러로 전월 대비 5.41% 올랐다. 이 제품의 가격은 2021년 7월(4.81달러) 이후 줄곧 내리막을 걷다 지난 10월 1.59% 오르며 2년 3개월 만에 상승세로 전환한 바 있다.
이수림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4분기까지 강도 높은 낸드 감산이 지속되면서 가격 반등이 나타나는 것”이라며 “중국 화웨이 신제품 스마트폰(메이트60 시리즈) 증산에 따른 단기 수요 급증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메모리 기업들이 지난해 연말부터 시행한 낸드 감산이 이제서야 빛을 보고 있다고 평가된다. 이에 더해 올 연말 들어 PC·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 수요가 되살아날 조짐을 보이면서 낸드 수요 증가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전원이 꺼지면 저장된 자료가 사라지는 D램과 달리 낸드는 데이터가 계속 저장되는 플래시 메모리의 하나다. 지난해 낸드 시장은 줄곧 차가웠다. 스마트폰·PC 등에 들어가는 낸드 수요가 경기침체 탓에 급감한 데 이어 데이터센터 기업들도 서버용 낸드 투자를 줄였다.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낸드 적자만 20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경쟁이 치열한 업계의 특성 또한 가격 하락을 부추겼다. D램 시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강 구도인 반면, 기술장벽이 낮은 편인 낸드는 3강 외에도 키옥시아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다수 업체가 포진해 있다. 낸드는 D램처럼 10나노미터급 초미세공정까지 필요하지 않아서다. 셀을 수직으로 쌓아 저장 용량을 늘리는 3차원(D) 적층 경쟁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업체 간 기술 격차는 크지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수요처의 재고 소진이 진행되면서 차츰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는 내년 세계 낸드 매출이 526억 달러로, 올해보다 31%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WD는 최근 고객사들에 제품 가격 인상계획까지 통보했다. 향후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다른 제조사들도 가격 인상에 동참할 수 있다고 전망된다.
특히 생성형 AI의 파급력이 낸드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앙처리장치(CPU), 그래픽처리장치(GPU), D램 등 AI 연산에 필수적인 제품과 달리 데이터를 ‘저장’만 하는 낸드는 당초 AI 시장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받지 못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스마트폰·PC에 ‘온디바이스 AI’ 기능을 넣으려는 시도가 이어지면서 256기가바이트(GB) 이상 낸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온디바이스 AI는 네트워크 연결 없이도 스마트폰 등에 장착해 구동되는 생성형 AI를 뜻한다. 클라우드컴퓨팅 등에 의존하지 않고도 기기 자체에서 AI 모델을 작동시키려면 그만큼 고용량의 저장장치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낸드 용량이 수년 내 500GB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다만 고대역폭메모리(HBM) 같은 AI 반도체 핵심 부품과 달리 낸드 회복세는 느리게 이뤄지고 있어 업계는 아직 신중한 모습이다. 수요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 섣불리 감산을 종료했다가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메모리업계 관계자는 “기대감은 있지만 낸드 매출의 핵심을 차지하는 일반 서버·데이터센터 수요 회복이 아직 확실하게 확인된 것은 아니다”라며 “낸드가 D램처럼 흑자전환이 급속히 이뤄질 수 있는 성격의 제품은 아니기 때문에 예전 같은 높은 가동률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상범 기자 ksb123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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